여성은 '가족'의 미래다?

한국노총, 6일 ‘저출산 고령화 정책과 여성 노동정책의 향방과 대응’ 좌담회

여성의 경제활동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취업자의 14%가 무급가족종사자이며 65%는 비정규직이다. 또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남성노동자에 4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경제활동인구 1,000만명 시대라는 말의 허구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최근 이와 함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다. ‘출산율이 1.19명’이라는 둥, ‘2026년에는 노년인구 구성비가 무려 20%에 달할 것’이라는 둥, 언제는 ‘하나만 낳아 잘 살아보세~’하더니만 이제는 ‘많이 낳고 광명 찾자’ 식으로 정부의 정책이 출산장려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통계에 따라 여성의 출산권을 통제하려는 저급한 발상에서 기인한다.

이 시점에서 그간의 여성노동정책이 노동시장 내 성별직종을 강화시키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임금차별과 저임금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임금과 교용불안 속에서 국공립 보육서비스의 미비, 육아의 여성전담, 높은 사교육비에 따른 교육비 부담 등 노동시장 내의 여성의 노동은 온전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출산, 육아와 함께 병행해야 할 필수조건이 되어버린 것.

한편 ‘일-가족 양립지원정책’으로 불리는 정부의 저출산, 고령화 관련 정책에서도 역시 한계는 드러난다. 심지어 지난 1월 26일에는 범국민협의기구인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발족, 이 사안을 핵심의제로 삼는 정부 직속의 ‘국민 대통합 연석회의’가 출범하기도 했다.

성별분화체계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 ‘가족사회’라고 볼 때 가족 안에서의 성별분화체계의 완화 및 해체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 또한 노동력 감소와 경제성장 둔화, 사회부담 가중 등 국가발전의 기반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도 관건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제299호 사회화와 노동,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사회의 위기를 가족과 여성에게 전가한다’ 편에서 “정부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사회 위기를 파편화, 분절화하여 각각의 지원 대책으로 사고하는 가운데 분배의 재원마련을 위한 성장잠재력의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오히려 세계화로 인한 불안정성과 위험의 완충지대로 가족의 기능이 강조하고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 또한 사회진보연대는 “가족의 위기와 사회의 위기는 여성에 책임 전가되고 있다”며 “‘가족’에 대한 강조는 여성을 변화된 조건에 대해 적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킬 따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력단절현상 여전히 존재

지난 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여성노동운동을 위한 정책대응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의 주제는 쟁점이 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정책과 여성 노동정책의 향방과 대응’이었다.


김선희 한국노총 여성국장은 “이번 좌담회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의 여성노동정책과 여성 노동현장에서 나타나는 괴리에 대해 살펴보고 향후 괴리의 간격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함께 논의해보고자 한다”며 “노동운동 내 여성노동정책과 관련한 역할은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등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이 될 것”이라고 좌담회 기획 취지를 밝혔다.

이날 좌담자로 나온 권혜자 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여성 노동시장의 실태에 대해 설명했다. 권혜자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25~34세 사이에 다른 연령대보다 낮아지는 경력단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출산, 육아로 인한 노동시장의 퇴장과 재진입시의 경력단절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자 내부의 계층화 심화

뿐만 아니라 권혜자 전 연구위원에 따르면 3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여성임시일고, 즉 여성비정규직이 무려 80.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혜자 전 연구위원은 “여성 상용고(정규직)의 경우 중간임금 계층은 변동이 없는 반면, 저임금고용이 줄어들고 고임금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고학력화 및 전문직 진출에 따라 정규직 부문에서 저임금 비중이 줄어들고 고임금 비중이 확대된 결과”라고 밝혔다.

  저임금 비중=임금이 국가 전체 중위 임금의 2/3 미만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 비중
고임금 비중=임금이 국가 전체 중위 임금의 3/2이상인 노동자 비중
중간임금 비중=고임금 계층과 저임금 계층 사이에 존재하는 노동자 비중 [출처: 노동부,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원자료]

권혜자 전 연구원은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거나, 여성 비정규직으로 출발한 경우에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다”며 “여성 노동시장이 대기업 전문직종의 정규직 여성노동시장과 소기업 저임금 직종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양극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권혜자 연구위원은 현재의 여성노동시장에서 성별 직업분리가 여전히 뚜렷하고 여성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5.2%로 현저히 낮다고 덧붙였다.

성별분업을 완화, 해체하는 방향으로

다음 좌담자로 나선 박선영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고령화와 관련 여성노동정책방향에 대한 시론을 밝혔다. 이는 최근 정부의 일-가족 양립지원정책과 관련, 실효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보완 또는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조주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선영 연구위원은 권혜자 전 연구위원과 마찬가지로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의 둔화와 출산, 양육으로 인한 여성 경력 단절을 여성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고 “정부의 일-가족 양립을 위한 지원정책은 개인의 소득활동과 가사노동이 서로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선영 연구위원은 “일-가족 양립지원 정책이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가족지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여성에게 일과 양육의 이중부담 △가족의 범위와 가족적 책임의 범위를 협소하게 이해 △일시적인 휴직의 권리를 보장 △가족적 책임을 위한 다양한 휴직제도 미비 등 일-가족 양립지원 정책의 한계를 밝혔다. 박선영 연구위원은 “이 정책이 거족구성 여부와 자녀 유무라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차별이라는 형평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출산장려’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저출산 원인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다”며 “성별분업을 완화하거나 해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조주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저출산이 도대체 왜 문제인지, 도대체 누구에게 문제인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재의 저출산은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 해나가야 할 자본가 지배계급과 가부장적 국가에게는 문제일지 모르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근심거리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또한 조주은 연구원은 “논의되는 ‘일-가족 양립지원정책’은 유배우 기혼 노동자들 즉, 정상가족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성별분업을 해체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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