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비정규직 긴급증언대회, 법안이 미칠 여파 폭로

“법안 통과에 차별시정은커녕 대량해고 예고”

"지금 있는 법이나 제대로 지켜 노동기본권 보장을“

정부와 여, 야당이 “4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 관련 법안 반드시 처리”할 것을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 관련 법안이 미칠 여파에 대해 폭로하고 나섰다. 5일,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긴급 증언대회’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의 비정규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있는 법이나 제대로 지켜서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 날 증언대회에는 금융권 비정규직 노동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학습지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나섰으며,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제(CPE) 투쟁과 한국에서의 청년실업문제에 대해서도 학생단위에서 나서서 이후 투쟁과제를 밝히기도 했다.

금융권, 2년 이상 근무 계약직 주기적 해고 시작

  권혜영 금융노조비정규직지부 위원장

권혜영 금융산업노조 비정규직지부 위원장은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절반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며 “이렇게 인건비를 낮추면서 금융권은 초유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산업노조 비정규직지부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공동 조사한 ‘정규직 대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2005년 6월 현재 대부분의 은행들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40%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45.66%, 대구은행의 경우 56.47%에 이른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은행 창구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는 텔러나 후선업부 또는 콜센터 등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리고 이들의 60% 이상은 3년 이상 근무하고 있으며 5년 이상이라고 답한 사람도 24.6%에 이른다. 대부분 자동계약 갱신으로 재계약되고 있으나,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비정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약직의 주기적 해고가 우려된다. 실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경우에는 11개월씩 계약하는 새로운 형태의 계약직이 나타나고, 조흥은행 콜센터의 경우 관리직원인 정규직까지 강제적으로 사직서를 요구하고 있으며 결국 모든 직원이 파견업체로 전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섭 상대조차 없는 사내하청, 위탁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지선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대변인

사내하청과 위탁고용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 위탁 업체에서는 원청 탓, 원청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우리는 교섭할 상대조차 없다. 노조가 인정되면 뭐하나”고 성토했다. 정지선 전국철도노조 KTX서울승무지부 대변인은 “위탁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철도공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책임 없음만 이야기하고 있어 대화상대도 없다”며 “생리휴가 쓰겠다고 하면 솜으로라도 막고 일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사용자에 맞서 노조를 만들고 싸우고 있지만 지금의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철도공사와 철도유통본부의 태도가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정기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사내하청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더라도 실질 사용자인 원청 사용주와의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런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이 막혀있다”고 설명했다.

“산재신청도 못하는데 누가 몇 년씩 걸려 차별시정 요구 하겠는가“

  하정기 현대차비정규노조 조합원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비정규 법안에서 ‘차별처우금지’ 조항을 가지고 있지만 “시정요구 절차의 복잡함과 이로 인한 시정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차별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정기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은 “사측의 해고위협 때문에 산재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누가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고 노동위원회를 찾아가겠는가”라고 말했다. 권혜영 금융산업노조비정규직지부 위원장은 “지노위, 중노위까지만 해도 2년의 시간에 걸쳐 5심을 거쳐야 하고 설령 부당해고와 차별에 대한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비정규직은 단협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복직이 이행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되어도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사용자는 책임 회피하려 특수고용노동자 늘리고,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

  서훈배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

이번 비정규 관련 법안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대표해 서훈배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노동부에서 설사 노동자성을 인정해도 사법부에서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를 만들고, 단결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후퇴시키는 법안이 통과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에 관한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 비정규 관련 법안 통과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정부기관, 사법부 등에서 계속 부정되어 왔다. 2004년 4월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로 갑자기 사망한 이정연 구몬학습 동울산지국 교사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신청을 했으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회사 내 부정 업무 강요 실태 고발한 권미현 대교 평택시정지점 교사 등 16명은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설령 강제적인 업무 강요가 있었다거나 공금 횡령 등의 사실관계 여부와 상관없이 위탁계약을 맺고 있는 당사자 간의 계약해지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의해 일방적 계약해지라 해도 위법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서훈배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는 사용자가 져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고 전하고, “학습지 교사의 경우 1년 단위 재계약 위탁사업자로 회사 측의 일방적인 계약거부 위협에 항시적인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으며, 4대 보험에서도 소외되어 있어 불의의 사고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비정규 관련 법안에 대해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은 “얼마 전 노동부가 은폐하려했던 보고서에서도 나오듯이 차별시정효과는 물론 정규직과 효과도 0.12%로 나와 유의미한 효과가 거의 없다”며 “현재 법안에서 다루지 않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 다방면의 규제가 동시에 실시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국학생행진, “한국의 기간제법은 프랑스 CPE보다 더 심한 것"

한편, 이 날 증언대회에서는 프랑스 최초고용계약제(CPE)와 한국의 청년실업실태에 대한 발제도 이어졌다. 남궁석 전국학생행진(건) 정치사업국장은 “프랑스는 이미 사용사유제한을 시행중이며,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도입하려는 CPE는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할 시 2년의 기간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법안 내용만으로는 프랑스의 CPE와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기간제법의 ‘2년 후 고용의제’와 거의 같다”라며 “그러나 프랑스는 26세 미만 고용으로 한정한 반면 우리는 연령제한 없이 기간제를 쓰겠다는 것이고 한국의 법안이 더욱 심각한 법안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 반CPE 투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 미래의 노동자를 비롯한 전 국민에게 노예로 살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과 저항이 가능하다라는 것”이라며 “정치권이나 제도 세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학생, 모든 민중들 스스로 투쟁에 나서고 행동으로 요구를 말하는 것이 정치적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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