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좌파 코미디? 한국 상륙!

[문화활동가를만나다](1) - 좌파 코미디 연출가 단 첨리(DAN CHUMLEY)


‘코믹노동뮤지컬을 한다고?’

노동현장에서 20년 가까이 문화활동을 해왔던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일터)’에서 코미디를 한다는 말을 듣고 좀 어이가 없었다.

고공에서 단식을 하고, 손목을 끊고, ‘차라리 죽여라’를 외치는 2006년 노동현실을 어떻게 보고 ‘위험한 변절’을 하려는 거야.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하에 있는 소극장을 찾았다. 한참 공연연습 중이다. 그때다.

  좌파 코미디 연출가 단 첨리

위험한 변절

“How are you?"
어, 웬 영어. 입이 굳고 얼굴이 긴장된다. 누구지? 아, 작년 부산 APEC 반대 시위 때 만났던 단 첨리(Dan Chumley)가 아닌가.

“Ah, Dan. Long time, no see."
경찰들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는 거센 물줄기를 맞으며 컨테이너에 밧줄을 묶고, 끌어내릴 때, 취재하던 내 눈길을 끌었던 이국인이 아닌가.

단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 가운데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마임 투룹 극단(SFMT)에서 34년간 일을 했다. SFMT는 폭 넓은 코미디 양식을 가지고 날카로운 정치풍자를 하는 극단이다.

“우리 극단은 빠른 스토리와 재치 있는 대화를 풍성하게 하려고 음악, 춤, 노래를 사용하죠. 1959년 이후로는 미국 민중들에게 정부와 국내외의 정책을 바뀌고,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하는 역할을 우리 극단에서 해왔어요.”

단은 보통 극단들이 예술 감독에 좌지우지 되는 것에 반해, SFMT는 모든 것을 단원들이 함께 결정하는 공동체 성격을 지닌 좌파 극단이라고 한다.

미국 좌파 극단

인터뷰를 요청하자 단은 손을 젓는다. 공연을 하는 일터 단원들과 하라고 한다. 좌파극단 연출자답게 인터뷰도 단원들에게 돌린다. 리허설을 보려고 단 옆에 앉았다.

단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리허설을 하는 단원들보다 더 리얼하게 표정을 지으며 손짓과 몸짓을 한다.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두두두두, 삐루삐루삐루. 효과음을 넣는다. 연출자인지, 배우인지, 음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단이 무대로 나간다. 개다리 춤을 추듯 다리를 흔들고, 얼굴은 도리도리를 치고, 두 손의 검지를 눈썹 끝에 대고 빙글빙글 돌린다. 순간 코미디언 배삼룡이 떠오른다.


개다리 춤추는 연출가

리허설이 끝나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밥을 먹는다. 밥을 먹다가도 질문을 하면, 숟가락을 놓고 열심히 답을 해준다. 대화를 할 때도 단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고, 손짓을 멈추지 않는다. 단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삶과 말은 퍼포먼스다.

노동문화와 민중문화, 또한 투쟁현장을 그리는 공연에서 코미디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마당극에도 해학과 풍자가 주를 이루지만, 웃음보다는 눈물이 익숙한 한국의 노동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따졌다.

“코미디는 미국에서 정치나 민중을 다루는 연극을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런 선택이에요. 코미디를 연극이나 영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형식이죠. 미국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는데, 자기 나름의 코미디 양식을 가지고 있어요. 소수의 분노,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코미디로 나타내는 배우가 있어요.”

SFMT는 코미디를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으로 늘 느끼고 있다고 한다. 웃음은 관객을 뜻하지 않은 반응을 나타나게 해준다. 관객이 웃는 것은 배우가 보여준 풍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풍자는 문제점이나 갈등, 정치적 이슈를 찍어서 밝혀주는 밝은 빛과 같아요. 그 빛은 민중에게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고, 변혁에 나설 겁니다. 코미디는 가슴을 열고 머리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죠.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생각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코미디가 혁명을 한다

코미디에는 영웅과 악당이 있고, 희생과 죽음이 있다. 그리고 우정과 사랑이 있다. 멜로디라마 또한 코미디양식에 강력한 요소다. 코미디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시선을 모으고,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접착제와 같다.

“코미디는 메시지를 설교 투로 전하지 않아요. 교조적으로 받으라고 하지도 않죠. 관객을 흥미로 이끌어주고,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죠. 그래서 관객이 감동을 받는 순간, 더블 펀치를 날리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악과 코미디로.”

코미디를 바보상자 속에 사람의 눈을 빼앗아 웃게 만드는 것으로 알았다. 단은 내게 이중 펀치가 아닌 삼중 사중 연타를 날렸다. 좌파 코미디 극단의 연출가가 말하는 코미디는 낫이고, 망치고, 죽창이다.

죽창이 된 코미디

단이 연출을 맡고 일터가 공연하는 코믹노동뮤직컬의 제목은 “팔칠전(傳)”이다. 팔칠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은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던 87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다고 2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고공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나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을 볼 수 있고, 투쟁현장에 찾아든 다양한 정파들이 나온다. 87년을 2006년에 코믹노동뮤직컬에서 깨운다.

“나는 87년 한국에 대해 조금 밖에 모른다. 하지만 전 세계 좌파 민중들은 87년 한국의 영웅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노동자와 학생 활동가들이 기계를 멈추고, 공장을 접수하고, 독재자를 끌어내렸을 때, 전 세계 좌파 민중은 한국의 힘과 용기가 전 지구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했어요.”

이번 공연은 87년 노동자투쟁을 이끌게 했던 단결과 지금은 잊혀진 그 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87을 깨웠는가, 20년간 잠자던 87이 깨어나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단은 우리에게 묻는다. “IMF, WTO, APEC의 시대에 떨쳐 일어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미국 좌파의 질문

좌파의 눈으로, 한국의 좌파에게 질문을 던진 거다. 단은 일터와 함께하는 코믹노동뮤직컬로 반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을 한국노동자에게 찾고 싶어 하는 소망이 꿈 트는 것은 아닐까? 좀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머리에 스친다.

“코미디는 가슴을 열고 머리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죠.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생각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아직 공연의 대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며 쓰고 고치고 한다.

“매일 대본은 바뀌지요. 그리고 다시 익히고, 다시 바꾸고를 반복해요. 미국에서는 공연을 앞두고 공원에 나가요. 무료로 공연을 하죠.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고치며 작품을 완성하죠. 무료지만 모자를 돌리죠. 한 천이백 명 정도 모이는데, 2달러도 주고, 5달러도 주죠. 공연보다 저녁에 돌아와 모자에 걷힌 돈을 세는 게 일이죠.”

실제로 돈을 액수대로 고르고, 세는 표정을 하며 활짝 웃는다.


오늘도 대본에 대해 문제를 던진다.

“비정규가 고공 농성할 때 팔칠이가 올라가잖아. 올라가서 ‘동지’하고 부르잖아. 팔칠이가 50미터 철탑에 진짜로 올라갔으면 ‘동지’라고 할까? (두 팔로 자신을 감싸며 떤다) ‘아이, 추워’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이, 추워

그 말에 배우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는다.

“막상 올라갔어. 비정규노동자랑 함께 철탑에서 내려올 때, 내려가려고 아래를 보니 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팔칠이랑 비정규랑 서로 먼저 내려가라고 권하는 거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런 식으로”

두 팔을 상대에게 펴며 내려가기를 권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 먼저 가라고 두려운 얼굴로 권하는 단의 포즈에 또 한 번 웃었다.

박수를 쳤다. 이제야 코믹이 뭔지를 알 수 있다. 코믹보다 먼저 내 눈이 돌아왔다. 진실을 보는 눈.

요즘 일터 단원들은 공연연습보다 쉬는 시간이 두렵다고 한다. 단이 말을 걸어올까 봐. 영어 콤플렉스에 단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슬 피해 다닌다고 한다.

영어 콤플렉스

“안 피던 담배를 피니까 고민이 있냐고 해요. 쉬는 시간만 되면 나만 남겨두고 다 나가 담배를 피우는 거야. 그래서 나도 따라가 담배를 피우지. 그럼 다 들 먼 산을 바라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울리고 싶어 하는, 공연만이 아니라 배우에게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단의 마음을 영어 콤플렉스로 배우들은 문을 걸고 있는 거다. 이것도 코미디네.
  몸빼 아지매 윤순심

지난 광주에서 화물연대 총파업을 앞두고 있었던 전야제 사회를 받던 윤순심 씨도 일터의 단원이다. 부산에서는 몸빼 아지매로 불리며 펜클럽이 있을 정도다. 오직 윤순심 씨만 단을 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단 선생과 그냥 이야기해요. 말은 안 되니 몸으로 하지. 단 선생과는 퍼포먼스로 이야기 하면 돼.”

몸으로 말하라

단은 언어보다는 문화의 차이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민족이 섞인 극단과도 작업을 많이 해봤다고 한다. 요즘은 ‘아시아 마당’이라는 연대활동을 하느라 아시아에 자주 온다고 한다. 이 날도 대만을 가기 위한 비자 때문에 이곳저곳에 전화를 한다.

“같은 말을 써도 문화적인 차이에 오해가 생기지요. 통역을 통해 호흡을 맞추자니 약간의 불편함은 있어요. 하지만 나는 몸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정서와 몸짓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비정규노동자다. 한국의 비정규노동자를 그는 알고 있을까.

“한국의 비정규노동자는 미국의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과는 어떤 면에서 다르다. 미국에서 노동조합은 보다 좋은 일자리를 지키면서 비정규에게는 보다 분리된 특정한 일을 주죠. 하지만 한국은 다른 것 같다. 정규직 노동자와 바로 옆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그들에 비해 더 위험하고, 더 오래 일을 한다. 그런데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미국인이 본 한국 비정규노동자

하지만 미국과 작은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처한 상황은 같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경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비용을 낮추고 이윤을 높이는 데만 눈을 붉히게 한다. 자본가는 이윤을 올리는데 사용가능한 모든 조건을 이용한다.

“막스는 자본가들이 경쟁을 물리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노동자에게 찾고 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자본가는 이익이 주된 관심사이다. 사회적 가치나 욕망보다는 시장논리만을 따진다. 노동자의 급여와 노동착취는 자본의 주된 관리 대상이다.”


국은 식고, 밥은 굳어가고 있다.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단과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로 더 이상 인터뷰 요청은 필요가 없어졌다. 허겁지겁 숟가락을 든다. 단이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다.

밥 먹는 것도 퍼포먼스

이미 단 첨리의 작품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다. 98년 과천 마당극제에서 “DAMAGE CARE(망가진 의료)”를 연출했고, 작년 광주에서는 극단 SILENCE가 제작한 “MY RED DRESS(내 붉은 옷)”을 연출하여 공연을 했다. 그리고 “노동문화예술단 일터”의 “코믹노동뮤직컬 팔칠전” 연출을 맡아 5월 2일부터 14일까지 부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또 그를 보고 싶다. 천 가지 표정으로 바뀌는 그의 얼굴만 봐도 삶이 재밌고, 행복해 질 것 같다.
덧붙이는 말

틈틈이 '문화예술활동가'를 만나 수다를 떱니다. 문화예술활동가들과 격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민중의 문화, 노동의 문화가 꽃피는 세상을 바라며 이어달리기를 합니다.
통역을 해 준 백대현 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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