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쓰레기통 뒤져 장갑을 찾아 끼고 일해요”

[인터뷰] 평택 송탄공단 금속노조 이젠텍분회 이원진 씨

“주5일제요? 4조 3교대? 꿈같은 소리하지도 마세요. 12시간 맞교대해요. 야간조 근무 마치고 아침에 퇴근해 창문에 커튼치고 누우면, 몸은 천근이고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지만 잠은 제대로 못 자요. 자는 둥 마는 둥. 장사하는 차들이 마이크로 떠들지, 애들 노는 소리에 비몽사몽하다 일어나 밥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출근하지 거지.”

토요일에는 더 심하다. 야간조가 오후5시 30분에 출근하면,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근무다. 일이 많으면 12시 30분까지 일을 하고 퇴근한다. 주야가 바뀌다 보면 어떻게 일주일이 지나가는지도 모른 체 살아간다.

“일이 기름을 많이 만져요. 하루에 장갑 한 개로는 어림도 없어요. 하지만 일주일에 정해진 소모품 지급양은 정해져 있고. 별수 없이 지급된 장갑이 떨어지면 쓰레기통을 뒤져 관리자들이 버린 좀 깨끗한 장갑을 끼고 일을 하지. 이도 얻기 힘들면 자기 돈으로 사가지고 와서 공장 일을 해요.”

쓰레기통 뒤져 장갑을 끼고

안전화도 육 개월에 한번쯤은 바꿔 신어야 한다. 하지만 일년을 넘기기며 지급하기가 다반사다. 대부분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안전화를 신는다. 안전장비마저도 자기 돈으로 사서 공장에서 일을 하는 곳이 있다.

1970년대도, 1980년대도 아닌 2006년 평택 송탄공단 안에 있는 이젠텍의 이야기다. 김치냉장고와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이진텍은 1980년에 조양정밀공업이라는 영세기업으로 시작하여 연매출 740억에 순이익 68억을 올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평택 대추리로 가는 이젠텍 분회

주야 2교대의 힘든 노동과 열악한 근무조건은 2005년 10월 금속노조 이젠텍분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여성노동자를 관리자가 껴안는 등 성희롱까지 공공연히 연출된 이젠텍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길 뿐이었다고 한다.

“한 여성노동자는 얼마나 감시가 심했는지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했어요. 결국 방광염에 걸렸고요. 자신의 휴가를 써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요양을 했지요. 회사는 이 노동자에게 아프면 공장을 그만 두라고 사직을 강요하기도 했어요.”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건만

노조를 만들고 잃었던 권리를 찾기 위해 이젠텍분회는 2005년 10월 25일 사측에 상견례를 요구했다. 회사는 이미 2000년에 세워진 노동조합이 있고, “노조와 지금까지 원만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분회하고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가 다니는 공장에 조합이 있다니,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가 모르는 조합이 노동조합입니까? 알아봤더니 잠자는 노조가 있더라구요. 조합간부 4명에 조합원 1명으로 구성된 조합이. 총회도 열지 않고 대의원대회도 열지 않은 조합이. 조합간부는 생산과장이고, 계장이에요.”

최근 1년간 총회도 대의원대회도 열리지 않고, 조합비 징수 사실이 없으니 휴면노조가 분명하다. 회사는 휴면노조를 핑계로 단체협상을 거부한다. 근무하던 노동자도 모르던 조합이 금속노조분회가 만들어지자 조직을 확대하기 시작하고, 한국노총 금속노련에 가입한다.

2006년 1월 이젠텍분회는 법원에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신청을 냈고, 평택지원은 금속노조 이젠텍분회와 단체교섭을 체결해야 한다는 판결을 3월 22일 내렸다. 하지만 사측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분회와 대화를 거부한다.

분회와 교섭하라는 법원판결도 무시

“사장은 분회를 만들고 교섭을 하자고 했을 때, 분회와 교섭을 해야한다는 공문이 오면 하겠다고 했어요. 법원과 지방노동위에서도 금속노조와 교섭을 해야 한다는 판결과 권고가 있는데도 대화를 하지 않아요. 법원 판결이 있자 분회에선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임시노조사무실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회사는 구사대와 용역경비 4-50명을 동원하여 천막을 강제로 철거를 했다. 다시 분회는 4월 18일 천막을 쳤고, 사측은 19일 철거를 시도했으나 조합원의 완강한 저지로 철거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다섯 명의 조합원들이 구사대와 용역경비의 폭력에 전치 2-3주의 부상을 당했다.

“분회가 만들어졌고, 법원에서도 분회와 교섭을 해야 한다고 판결이 나지 않았습니까? 대화마저도 거부하면 됩니까? 참을 만큼 참으며 회사를 위해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회사가 열악한 근무환경을 바꾸기 위해 분회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떤 탄압에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겁니다. 이젠텍 노동자는 더 이상 한걸음도 뒤로 물러 설 자리가 없잖아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젠텍 분회의 이원진 씨의 검게 탄 얼굴에서 기쁨과 서러움이 겹쳐진다. 2006년, 안전장비마저 자신의 돈으로 사야 하는 안타까움과 더 이상 노예처럼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먹구름을 헤치고 얼굴을 내미는 햇살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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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노동자

    투쟁없이 쟁취없다고 하지만 요즘 자본가들 하는 행태가 영 싸가지가 없습니다. 노조탄압, 구사대 용역동원 노사관계의 시계바늘이 5공으로 돌아가고 있네요. 그래도 동지들 힘냅시다.

  • 노동자

    챠빌이라는 화장품 냉장고 만드는 곳이죠? 장서희랑 이정재를 모델로 쓰면서 엄청난 모델료를 지급했다는 기사가 나왔던 걸로 아는데 음~, 직원들에겐 장갑하나도 제대로 제공 안한다니, 참..씁쓸하군요.

  • 평택평화

    문화제소식 (윤도현, 전인권, 최민식, 봉준호 등)

    6월 7일 (수) 광화문..!!
    윤도현 밴드, 전인권 등 유명가수들이 공연을 하고,
    29명의 소설가와 시인들이 1500여권의 책을 사인해서 나눠주며,
    배우 최민식, 봉준호 감독 등 영화인들도 사인회를 열고,
    전 장르를 망라한 예술가들이 모여 다양한 전시와 놀이마당을 펼치며,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함께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한미 FTA 반대 문화한마당!!
    많은 분들이 이 뜻깊은 자리에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홈피 : www.ethnicground.com/plain2 )

  • 지나가다가

    이런 기사 참으로 마음이 아프네요 대한민국 일한만큼 보상받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연매출 수백억이면 뭐합니까?? 노동자들을 노동자로서 취급을 하지 않는 회사인데 이 회사 사장 면상이나 한 번 보고 싶네요 이렇게 열악한 회사에서 매출이 늘어나면 뭐할겁니까??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건데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만큼의 대우는 해 줘야지요 폭력노조는 반대하지만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노조는 필요합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듭시다 사회, 경제 지도층들이 관심을 가지고 처리해야 개선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