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노조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 조합원들의 파업이 지난 5월 17일로 100일을 맞이하였다. 왜, 10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있는가? 이들의 요구는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복지 향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을 지키는 일이 이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개발비로 쓰여야 할 소중한 국가예산 500억 원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었다. 이를 눈감을 수 없던 조합원은 언론사에 이 내용을 제보하였다.
과학기술예산을 지켜라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제보한 조합원을 내부정보유출혐의로 해고를 했어요.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산집행의 잘못을 지적한 일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공익을 위한 제보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내렸지요.”
하지만 평가원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아예 없애려는 시도를 하였다고 배성환 지부 사무국장은 말한다. 고용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정리해고, 징계, 파면 등을 실시할 때 노조의 영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단체협약체결을 지부에게 요구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요. 단체협약 하향조정의 가장 큰 이유는 조합원을 평가원이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강합니다. 통제를 통하여 2002년과 같이 내부의 비리를 밖으로 알려지는 일을 차단하겠다는 뜻이지요.”
제보한 조합원들에게 직위해제, 개인휴업명령, 정리해고 등 ‘노조 죽이기’ 작전에 나간다. 인사고과, 특별인사평가를 실시하여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을 주기시작하자 조합원들의 집단탈퇴가 이어졌다. 100여명이던 조합원이 25명으로 줄었다.
노조 죽이기...과학기술 죽이기
“탈퇴했던 조합원들이 다시 집단으로 조합에 가입하겠다고 하며, 과학기술노조에서 지부가 탈퇴할 것을 요구하고 나섭니다. 당연히 지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지요. 그러자 불법으로 총회를 열어 임시대표를 뽑아 과기노조탈퇴를 결의하고 기업별 노조로 조직변경을 하여 강남구청에 신청하였고, 강남구청은 신고필증을 내주었어요.”
총회의 불법성이 명확한데, 강남구청은 설립필증을 내주는 잘못을 범한다. 평가원은 불법노조를 핑계로 기존 지부 사무실의 폐쇄와 상근자의 복귀를 요구한다. 배성환 씨는 이것은 명백히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지부를 없애려는 목적으로 기업 노조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부는 강남구청의 신고필증 발부는 잘못이라고 행정소송을 냈어요. 법원은 기업별 노조로 전환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죠. 행정소송에서 지자 강남구청은 항소하였어요. 지난 4월 17일 고법에서도 강남구청의 설립필증교부는 불법이라고 구청의 항소를 기각했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연봉제를 실시하는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급여에서 받는 불이익과 진급에서 제외되는 서러움을 겪어야 한다. 고통을 받으면서 지부를 지키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안경너머로 배성환 사무국장의 눈이 커진다.
“평가원이 국민의 혈세 2조원을 한 해에 집행합니다. 직원 한사람이 집행하는 돈이 자그마치 200억 원이고요. 이렇다보니 대내외 압력이 심합니다. 공정하게 집행하려고 해도,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를 봐야합니다. 그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지부가 힘을 가지고 강한 단체협약을 통하여 대내외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눈치를 볼 거냐?
연구개발비가 이중으로 청구되고, 지출되었다는 연구개발비가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다. 퇴사자에게 돈이 지급된 것처럼 서류가 꾸며지고, 가지도 않은 출장비 명목으로 국가의 돈이 새어나가고 있다.
“지부에서는 더 많은 복지와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과학기술의 미래가 우리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막대한 예산이 대내외 압력으로 인해 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하고, 연구개발에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이고, 지출이 투명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직원들이 인사와 급여에 매여 눈치만을 봐야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부정과 비리를 있어도 사규에 매여 쉬쉬한다면 그 피해는 누가에게 돌아갑니까? 한국산업기술평가원은 공익을 목적으로 한 조직입니다. 일반사기업과는 다릅니다. 내부고발을 억제해서는 안 되고, 이로 인한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되지요. 공익을 위해서는 지부가 대대외의 압력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반사기업이 아니잖아요
한국산업기술평가원에는 정규직원 말고 별정직, 위촉직 직원들이 있다. 지부의 요구 중의 하나는 위촉직원들의 정규직화에 있다.
“위촉 연구원이나 사무원은 1년 이내의 단기계약 직원들입니다. 6개월, 심지어는 2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지니 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합니다. 우스운 일은 위촉연구원 중 가장 짧게 근무한 사람이 6년입니다. 지부는 정규직의 복지는 3년간 양보하겠다. 대신에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정규, 최소 근무자가 6년
강남 선릉역 근처 한국기술센터 1층 복도에는 10여대의 노트북이 줄줄이 좌식 책상 위에 놓여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면 좌식 책상 앞의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이마에 머리띠를 질끈 매는 노동자가 있다. 그들이 든 펼침막에는 “국가과학기술을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라고 적혀있다.
“100일을 넘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훌쩍 100일을 넘겼습니다. 아마 나만의 이익, 우리 조합원만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국민의 세금, 그것도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학기술의 예산을 집행하는 일을 맡고 있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예산을 집행만하는 행정가가 아니다. 스스로 지금도 공부를 하며 학위를 준비하고, 석, 박사학위를 가지고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는 과학기술인 이다. 그들의 파업장인 한국기술센터에는 선배이자 후배, 지도교수, 그리고 동료 과학기술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부당노동행위로 벌금형을 받았고, 강남구청에 의해 추가로 발급된 노조의 신고필증은 고법에서도 불법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더 이상 교섭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평가원이 신뢰를 받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부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평가의 투명성과 객관성이 보장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배성환 사무국장의 말은 단호하다. 지금 남은 이십여 명의 조합원은 당할 만큼 당했고, 단련될 만큼 단련된 조합원이라고 한다. 지난 수년 동안 노조사무실도 빼앗기고, 급여와 진급에서도 소외되어 왔다. 오직 바라는 것은 지부가 올바로 서서 국가의 운명이 걸린 과학기술예산이 바르게 집행되어, 과학기술이 올바로 서기 만을 바란다.
과학기술이 올바로 선다면
“파업을 하며, 지도교수나 선후배를 만나면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파업이 정당하였고, 국가과학기술을 바로 세우는 데 작은 기여를 했다고, 훗날 평가되리라 믿습니다.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될 일이고요.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몸짓입니다. 과학기술인 들과 연구 과제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기술센터 1층 바닥은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그 바닥에 앉아있는 조합원들의 얼굴도 유난히 맑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 맑아 차마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