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3년 전인 2003년 3월 19일, 테러 소식이 전해졌다. 당일 오전 11시경 한 비정규직노동자가 월차를 내기 위해 사무실에 들른 것이 발단이었다. 그 비정규직노동자는 월차는커녕 관리자로부터 욕설과 목조임 등 폭행을 당했고, 그날 저녁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입원을 했다. 2주의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2주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면 더 이상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후 8시경 사측 관리자 4명은 병원을 찾아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왼쪽 다리를 두 차례 찌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새벽 1시경 70% 인대 손상 수술을 했지만 당시 의사는 4개월 이상의 치료와 18개월 이상의 재활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수술 경과가 좋아 70일 가량 입원을 하고, 1년 가까이 재활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시 노동운동은 '계획적인 살인미수'로 규정했다. 민주노총 충남본부 등은 성명을 내고 "이번 테러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에 기인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 일상적인 폭력을 통해 현장을 통제해 보겠다는 전근대적인 자본에 의해 이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사설은커녕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경찰은 가해자 1명을 구속하는데 그쳤다.
테러를 당했던 그 비정규직노동자는 현장에 복귀했지만 지금도 오래 서 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따르고, 빨리 걷거나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한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로, 대부분 잊어버린 먼 과거의 사건이 되고 말았다.
주말 유세를 지원하려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 소식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가해자가 커터칼을 사용한 '테러'라는 점에서 3년 전 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일어났던 일과 닮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곧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박근혜 대표의 가해자가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한 개인이라고 한다면, 3년 전 비정규직노동자의 가해자는 사측 관리자의 조직적인 폭력이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물론 공간적 배경도 다르다.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이 지자체 선거 시기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3년 전 비정규직노동자 피습 사건은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던 현장과 입원했던 병원을 옮겨가며 일어났다. 닮은 꼴 보다는 다른 꼴이 많다. 따라서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과 3년 전 한 비정규직노동자 피습 사건을 시공을 뛰어넘어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두 피해자 모두 커터칼이라는 흉기에 의해 피해를 당했고, 두 피해자 모두 전치 4주 이상의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3년 전 한 비정규직노동자가 아킬레스가 끊어지다시피한 피습을 당했을 때 정치권은 함구했고, 언론은 한 줄 기사조차 아까워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찌라시를 만들고 선전물을 만들어 알리고 다녔지만 사회적인 관심으로 떠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은 경천동지한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주요 일간지는 사설을 내고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을 다루었다. 중앙일보는 '정치 테러는 민주주의의 공적 公敵이다' 라는 사설에서 "살인미수에 가까운 테러다. 민주화된 나라에 어떻게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폭력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테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서울 복판에서 벌어진 박근혜 대표 테러'에서 "후진국에나 있는 일로 알았던 정치인 테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데에 놀라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없을 것"이라고 썼다. 동아일보는 "민주주의의 敵‘선거테러’의 충격"이라고, 한겨레는 '야당대표에게 가해진 야만적 테러'에서 "벌건 대낮에, 그것도 제1야당의 여성 대표가 이런 끔찍한 폭력을 당하다니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썼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 소식은 물론 유쾌한 소식이 아니다. 티비와 신문은 피습 장면을 자세하게 보도하면서도 동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피습 장면을 직접 보고, 또 연상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다. 응당 '일어나면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좀 심하다. 정치권과 대부분의 언론이 민주화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입을 쩍쩍 벌리고 있지만, 공권력과 자본이 저지르는 '야만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커터칼 등장이 3년 전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14일 구미 코오롱 송전탑에서 농성 중이던 김진년 화섬연맹 대경본부장과 코오롱 해고노동자를 사측 용역경비들이 강제로 진압한 일이 있었다. 커터칼로 송전탑 위에 친 천막을 난도질하며 달려들었고 달려들자 말자 억센 손으로 목과 팔을 꺾고 무릎으로 배를 가격하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멧돼지 통구이 하듯 묶인 몸을 이삿짐 던지듯 사다리에 내팽개쳐졌다. 김진년 본부장은 "아직도 칼로 천막을 찢던 무시무시한 공포의 소리가 귀에 맴돌며 그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친다. 잊을 수 없는 십 분이다"라고 돌아보기조차 끔찍해한다. 이처럼 진압 과정이 테러를 방불케 했으나 신문에 한 줄 기사도 나지 않았다.
맞는 이야기다. 후진국에서나 있는 정치테러가 백주대낮에 발생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테러는 민주주의의 공적인데, 민주화된 나라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불행할 따름이다.
3년 전 한 비정규직노동자는 지금도 커터칼에 당했던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코오롱 노동자는 지금도 커터칼 소리가 귀에 맴돈다고 한다. 유사한 피해자인 박근혜 대표 역시 충격에서 헤어나기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빠른 회복을 바란다. 아울러 충격에서 회복되는 대로 피해자의 심정으로 민주화 이면에 끊임없이 벌어지는 '폭력적인' 세상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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