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은 지역총파업을 예고한 날이었다. 그 날도 창원에 갔다. 합의서만 챙기고, 서울로 그냥 돌아왔다. 합의서를 본 순간 인터뷰를 해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는 지나야 가슴에 담긴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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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하지만 30일 저녁 권순만 지회장과 쟁의부장이 구속되었다. 안병욱 직무대행과 진환 조합원은 불구속으로 석방되었다. 올 봄 개나리, 진달래와 함께 피어났던 비정규투쟁의 한 축은 이렇게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기억에서 사라지나
안병욱 직무대행은 민주노총 경남본부 옆 컨테이너박스에 있었다. 여기서 먹고 자고를 했다.
“함께 유치장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했어요. 철창살 너머로 서로 손을 흔들며 웃고 했는데. 막상 두 동지를 두고 불구속으로 나오니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구속되는 게 차라리 맘 편할 것 같아요.”
합의는 했지만 아직 누구도 현장으로 돌아간 사람은 없다. 그들을 공장보다 먼저 기다린 것은 경찰과 교도소였다.
GM대우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알려고 하면, 아이엠에프 이후 대우자동차의 몰락을 알아야 한다. 또한 GM대우로 다시 태어나며, 공장 정상화까지 겪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통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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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욱 직무대행 |
정규직 복직...비정규는?
안병욱 직무대행이 GM대우하청업체인 대정에 입사한 것은 2001년이다. 한참 공장이 어려울 때다. 6개월 단기직을 요구했던 안 직무대행은 회사의 권유로 1년 계약직으로 입사한다.
“왜, 1년 계약직을 하라고 한지 몰랐죠. 다음 달 월급날이 되었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아요.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요. 알고 보니 단기계약직 말고는 월급이 서너 달씩 연체되어있는 거예요.”
당시 일했던 비정규노동자들은 GM대우가 정상화 될 때까지 기본급이 깎이고, 급여가 연체되는 고통을 감수하며 보냈다. 공장이 정상화되면 좋아지겠지 하며, 공장살리기에 비정규노동자들도 나섰다.
“그 때 받은 돈이 50만 원쯤 됐어요. 그 돈마저 지급되지 않으니 죽을 맛이죠. 현재의 GM대우는 당시의 고통분담이 아니었으면 사라졌을 거예요. 회사를 살리면 다 같이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울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공장 정상화, 비정규의 고통분담
울고 있는 사람은 비정규노동자다. 울고 있을 수만 없었다. 2004년에 급여가 인상되었는데, 장기 계약자는 소폭인상이 되었고, 최근 입사자의 인상 폭은 컸다. “따지고 보면 최근 입사자의 폭이 큰 것도 아니에요. 너무 낮았기에 어느 수준까지 올린 거죠. 결국 공장이 정상화되어도 비정규노동자에게는 혜택이 없었던 거죠.”
불만이 쌓이게 되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노사협의회다. 노사협의회를 만들었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대화 이상의 것은 없었다. 대정, 세종 등 하청업체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조합의 필요성만을 절감하게 된다.
2005년 4월 10일 노동조합을 설립한다. 원청사와 단체협약을 시도했지만,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 하청업체 대표는 형식적으로 만났지만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9월 30일 노조의 핵심간부들이 있던 대정을 폐업하여, 하청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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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한때 하청노동자들의 조합가입이 600명에 달하였다. GM대우 창원 공장 안의 1,000여명의 조합원의 60%가 조합에 가입하였다. 하청노동자의 수는 계속 늘어 현재는 정규직보다 많은 1,300명에 이른다.
“회사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낸 비정규노동자와 대화는커녕 폐업 등으로 공장에서 쫓아냈습니다. 노조를 인정하기보다는 탄압을 하는 거죠. 결국 교섭권을 GM대우노동조합에 위임을 해 대리교섭을 했어요.”
교섭권 위임의 결과
2006년 2월 27일 대리교섭을 통한 구두 합의서가 나왔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죠. 20명의 복직은 조합이 요구한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선별하겠다는 것이고, 노조 간부와 조합원 8명은 단계적으로 입사시키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생계 때문에 조합에서 떨어져 딴 일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공장 안에는 정규직화 환상과 원청의 탄압으로 하청노동자들은 위축되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비정규의 문제를 정규직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3월 22일 권순만 지회장과 오성범 단기계약직 조합원이 창원공장 안의 굴뚝에 오른 것은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회사에 떠밀리고, 정규직노조에 떠밀려 굴뚝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굴뚝에 오르자 정규직노동자는 “농성장 침탈 시 총파업을 하겠다”는 결의를 한다. 하지만 회사는 녹녹치 않았다. 공장 안에 창원공장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 노동자를 위축시켰다.
마지막선택 고공농성
농성장 아래 천막 설치문제와 굴뚝에 안전망 설치문제를 두고 공방이 일어난다. 회사와 공방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앞길을 어둡게 했다. 결국 분열의 틈을 타서 회사는 직원과 용역을 동원하여 굴뚝아래에 있던 농성조합원을 3월 25일 공장 밖으로 내쫓는다.
“25일 밖으로 쫓겨나면서 비통한 마음보다는 웃음이 나왔어요. 웃으며 나왔어요. 허탈한 웃음이요.”
밤, 창원대로에 내팽개친 조합원은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단다. 돌아갈 차비도 없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죠. 해가 뜨면 고공농성장도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끝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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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6일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연대를 해왔다. 정문을 뚫고, 고공농성자를 지키기 위해, 물대포를 맞아가며 미친 듯이 싸웠다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노동자가 하나가 되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시 힘을 얻었다. 정문 앞에 농성장을 만들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말을 끊었다. 천막 설치 자리 문제와 안전망 치는 문제로 정규직노조와 갈등이 벌어졌다. 특히 천막설치는 회사에게 교섭회피의 빌미를 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지회가 정확한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어요. 연대를 온 여러 조직과 상급단체에 정확한 지회의 입장을 말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지회의 입장을 내오지 못하고 끌려 다녔다.”
비정규직 싸움에 중심으로 떠오르다보니 그 만큼 연대를 전하는 손도 많았고, 목소리도 많았다. 안병욱 직무대행은 그 때 조직이나 단위들이 모여 함께 평가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꼭 해야 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의 목소리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보다는 외부의 목소리에 위축되었다. 실천과정도 조합원의 의지와 동의 없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하는 모습으로 보여 지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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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지회내부의 주체를 튼튼히 꾸리지 못하고, 외부가 주체가 되어 개입되는 문제가 초기 투쟁의 난제였다고 한다. 또한 지역운동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지적한다.
조합원이 주인으로 섰나
아직 이 부분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한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도 아직 평가를 하지 못하고, 초안만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첫걸음을 위해서라도 평가는 꼭 하고 넘어가겠다고 한다.
금속노조 간부에게 GM대우가 남긴 성과가 있냐고 묻자, “하나도 없다”고 한다. 다시 물으니, 고개를 숙이며, “정말로 없다”고 한다. 성과가 없는 문제에 대해 묻자, “당사자가 직접 교섭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합의서에 노조 인정과 활동보장이 들어가지 못한 것에 질문을 던졌다. “비정규직이 스스로 중심을 잡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인정하고 안하고는 싸워서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인정하지 않았다고 물러 설 것인가? 비정규직은 존재해서도 안 되고, 사라질 때까지 험난한 싸움을 준비하고 싸워야 한다”며 답을 한다.
이번 협상에서 GM대우는 철저히 비정규직지회와 금속노조를 배척했다. 이 벽을 뚫지 않고는 비정규직의 불씨는 합의서와 무관하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안병욱 직무대행에게 2월 합의서보다 나아진 게 무어냐고 물었다. “28명에서 35명 복직. 숫자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2월에 간부 8명을 제외한 20명은 지회의 요구가 아닌 회사의 선택이었다. 이번 35명은 단계적이지만 지회가 요구한 조합원이다”고 한다.
2월 합의서보다는 진일보
단기계약직과 노조활동인정은 다시 싸워야할 과제로 던져져 있다. “지회 자체도 합의서의 부족한 부분을 안다. 힘들고 지쳐 있는 상태였다. 지회가 고립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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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자료사진] |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한꺼번에 복원되기는 힘들 것 같다. 소규모 모임부터 다시 시작해 끌어낼 수 있는 힘을 모아야지요.” 이제 공장에 돌아가서 할 일을 고민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아픔도 많다. 폐암말기이신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농성 기간 동안 미안한 마음에 집에를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프신 아버님을 두고 집을 나올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GM대우 창원공장 정문은 나지막했다. 고공농성 기간에는 컨테이너 박스와 철조망으로 가로 막혔다. 농성이 끝난 지금은 나지막하던 정문 대신 높다랗고 튼튼한 검은색 철문으로 바뀌었다. 다시 그 앞을 지나며 가슴이 저려온다. 더 육중한 철문이 비정규노동자를 가로막지는 않을까?
아직 안병욱 직무대행은 민주노총 경남본부 옆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을 잔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