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다.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으니 개인적으로 빈민운동 단체에 일하면서 가장 바빴던 해가 2002년 요맘때인 한일 월드컵경기가 열리던 해와 곧바로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강행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쪽에서는 전 국민의 열광과 환호 속에서 경기가 펼쳐졌고 또 한쪽에서는 한 달씩 노점 장사를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극단적인 현상은 그해 곧바로 청계천 복원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항의를 하며 청계천 낙원상가 앞에서 장사를 하던 한 늙은 노점상이 분신 사망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월드컵 경기가 벌어지던 이 시기 우리 단체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에드벌룬을 이용하여 거대한 축구공을 제작해 ‘노점상은 축구공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써 붙이고 시민들을 상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스티커와 유인물을 제작하여 뿌리는 등 노점상과 손수레를 축구공 마냥 발로 차지 말라는 뜻의 항의 표시를 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사실상 냉담했고 언론에서는 일제히 노점상들을 향하여 전 국민의 축제에 재를 뿌리는 천덕꾸러기로 보도를 했었다. 외국인들 보기에 노점상은 선진한국의 모습에 먹칠을 한다는 것이고 비위생적이며 불결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이 찾았던 곳은 유명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월드컵 기간에 청계천 황학동의 벼룩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이드를 대동하여 찾아들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노점상들을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단속을 강행했지만 외국관광객들은 한국 서민들의 삶의 모습에 더 관심이 많았고 이들의 눈에는 길거리 노점상들이 이색적인 볼거리 이었던 것이다. 근면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곳, 그것은 삶의 땀 냄새가 살아있는 청계천 벼룩시장과 재래시장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국제행사가 전 국민적인 축제이기에 앞서 도시빈민에게는 단속과 철거라는 질곡으로다가 왔던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해 말 아펙(APEC) 이 열리던 부산의 전 지역에서는 모든 노점상들이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려 숙소가 있는 부산 민주노총이 있는 곳까지 차로 달리던 중 우리는 놀랍게도 부산 곳곳의 노점상을 단 한명도 발 견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 달 동안 좌판을 펼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이들은 건설현장에 일용노동자로 취직조차 하지 못했다. 테러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아펙(APEC)이 열리는 시기 모든 건설현장의 공사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숙인들이 이용하는 물품 보관소는 폭발물 위험이 예상된다고 폐쇄 명령을 내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하나 된 동질감으로 그리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던 그 순간의 이면에는 참으로 천박한 이 나라의 또 다른 면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다시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이제 전국은 붉은 물결로 물결 칠 것이다. 월드컵은 스포츠 문화를 넘어 거대한 상품으로 변모한지 오래다. 이번 월드컵 경기도 축구경기보다도 대기업의 응원상품 경쟁이 더욱 뜨겁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가수들은 월드컵을 응원하는 노래들을 쏟아 내고 있고, 기업들은 월드컵 경기와 연계해 상품판매 전략을 앞 다퉈 내놓고 있으며 시청 앞 광장은 광고 전시장이 되었다.
광화문 주변의 빌딩들과 거리곳곳 심지어 지하철역사 안까지 현란할 정도로 온통 붉은 색의 월드컵 광고와 기업체의 로고로 휘감겨져 있다. 이번 기회에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위축된 소비를 회복해 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기획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축구 축제라는 분위기에 압도되는 순간 4년 전 그랬던 것 처럼 도시 곳곳은 노점상 단속이 재현될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으니 사회기강도 잡아야겠다는 입장이고, 제일 먼저 거리에서 쉽게 눈에 띄는 노점상이 가장 만만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지방선거 전부터 오 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서울 지역의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주장을 해오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는 도시빈민들에게 국제적인 행사는 전 국민적인 축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권 말살로 이어지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파산하거나 해고된 노동자들, 거리로 내몰리는 철거민들 그리고 노점상들, 이들에게 그나마 쥐어준 길거리 삶조차도 ‘대한민국’ 이라는 구호 속에 묻혀 또 다시 삶 자체를 포기당하고 있다.
이제 평택의 처절한 투쟁 소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같은 시간 저 멀리 미국의 뜨거운 햇볕아래 한미FTA 협상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지만 이 역시 월드컵 열기에 가려질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거대자본의 광고판이 되어버린 축구경기를 바라보며 우리네 삶은 실험실의 쥐들 마냥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불순한? 상상을 꿈꾼다. 수많은 붉은악마들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 노점상들이 어우러져 난장을 펼치는 상상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대한민국’ 이 아니라 ‘평택미군기지 철폐하라’ ‘한미FTA는 기만이다 즉각 중단하라’ 라는 구호가 한목소리로 우렁우렁 울려 퍼지는 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