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 노동자 "8월에는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장투야!끝장내자!!](7) - 무너진 천막 새로 세우고, 승리의 결의 다진다

지하철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 역에서 내렸다. 아직도 ‘디지털단지’보다는 ‘공단’의 기억이 강하다. ‘가산’보다는 ‘가리봉’이 친근하다. 역을 빠져나와 공단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공장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울렛’이라는 이름을 단 높은 상가건물들이다.

기륭전자를 찾아간다. 상가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공장을 찾을 수 있을까. 스무 해 전 열나게 돌던 미싱 소리와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가 겹쳐진다. 파업장에서 추석을 맞이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디지털단지...가리봉

독산역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으니 경찰버스 2대가 삼거리에 서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카센터와 식당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천막이 보인다. 짙은 선글라스에 검은색 복장의 용역경비도 보인다. 기륭전자다.

정문 앞에 다다르니 여기가 공단임을 깨우친다. 가리봉역의 변신을 비웃듯, 이십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뒤로 한 채 기륭전자가 있다.

  꽉 닫힌 철문 위에 적힌 노동자의 분노

  공장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공장 담 위에 가로놓인 철조망에는 노동자의 마음이 매달려 있다

  지난 해에 만든 선전물에는 기륭분회가 걸어온 길이 짧게 적혀 있다. 300일이 지난 뒤 기륭이 걸어 온 길은 얼마나 길게 적어야 할까

‘디지털’과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철문은 퍼렇게 멍들어있다. 정문의 틈새마다 철판을 덧대어 억세게 용접을 하였다. 선글라스의 용역경비와 두툼한 철문은 공장이 아닌 수용소의 느낌을 풍기고 있다.

처음부터 수용소였는지 모른다. ‘불법파견근로자’를 공장에서 일을 시키고, 3개월마다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였다. 계약해지. 노동자에게는 죽음의 선고였다.

2005년 7월 5일, 기륭전자 노동자는 수용소의 노역자가 아님을 선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10분 만에 200여명의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했다. 공장 밖으로 쫓겨난 지 300일.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다.

수용소의 노역자가 아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7월 24일부터 2박 3일간 공장 앞에서 노숙투쟁에 들어갔다. 오는 8월에는 교섭을 타결하고 공장에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투쟁이다.

기륭전자를 찾은 날은 노숙투쟁 2일째를 맞는 날이다. 금속노조 4시간 파업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한우물정수기, 천지산업 등 서울 남부지회 노동자들이 기륭전자 앞에 모여 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집회를 마치고 사회자가 실천투쟁을 전개하자고 한다. 오늘의 실천투쟁은 정문돌파도 용역경비와 몸싸움도 아니다. 비바람에 쓰러진 천막을 철거하고, 새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천막을 걷어내자 지렁이가 나온다. 저 축축한 땅에 삶을 눕힌 지 삼백 날이 지났다

  연대 온 노동자들이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

  파전을 뒤집으며 집들이를 준비한다

  천막에서 본 공장. 노숙은 계속된다

작년 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뒤로 세 번째 치는 것이다. 천막을 걷어내고 장판을 벗기자 습기에 곰팡이가 끼여 있다. 온갖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이 곳에서 삼백 날을 밤을 지새우며 조합을 지키고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싸웠다.

승리의 8월을 향하여

큼직한 지렁이를 보자 모두 깜짝 놀란다. “지렁이가 아니라 뱀이다.”

한쪽에선 파전을 굽는다. 다시 기둥을 세우고, 천막을 치고, 비닐을 덮는다. 장판은 예전 것을 그대로 쓴다. 연대 온 노동자들이 달라붙어 제 일처럼 나선다. “단단히 묶어, 쓰러지지 않게.”

저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천막이 사라지는 날을 기다린다. 가리봉역은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고, 공단에는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이는 상설할인매장 건물이 솟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 아니 더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 받아야하는 노동자를 보며, 추석을 파업을 하며 맞이해야 했던 이십년 전 노동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숱하게 두들긴 밥그릇의 밑바닥은 상처투성이다

  정당하기에 웃을 수 있다

“조급한 것은 저희가 아니라 회사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8월에는 반드시 승리를 하고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조합원들의 얼굴을 보세요. 여유가 넘치죠. 힘들게 1년을 싸워왔지만, 정당한 요구였기에 웃을 수 있는 겁니다.” 김소연 분회장의 얼굴에는 승리의 자신감으로 넘친다.

기륭전자 노동자의 주황색 조끼는 주황색 반팔 티셔츠로 바뀌었다. 한층 밝아 보인다. 불법파견임이 밝혀진 기륭전자, 조합원의 ‘직접 고용, 정규직화’ 요구는 정당하기에 다가오는 8월은 희망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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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은 희망

    꼭 승리하세요.. 투쟁!!

  • 호연지기

    세상이 거구로 돌아 미쳐가고 잇는 세상에도
    세상을 앞으로 굴리는 힘들이 있습니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들의 투쟁과 승리는 대반격과 결정적 승리의 절대적 전제입니다. 기륭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희망이 햇살처럼 환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