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호/동향] 독일 - 전쟁중인 독일 녹색당

독일 - 전쟁중인 독일 녹색당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동자세계(WSWS) 4/30

지난 몇 주간 독일 녹색당의 호전성이 일으킨 반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디에 자신들이 천명했던 원칙을 이렇게 간단히 파기해버린 정당이 존재하였던가? 적녹연정의 한 축으로서 녹색당이 보여준 이러한 무책임함에 견줄만한 비교대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녹색당의 기본적인 정치원칙은 완전히 내던져졌고, 코소보 지상군 파견을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내 녹색당 지도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지상군 파견에 즉각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녹색당은 또다른 차원에서 "원칙의 부재"를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는 끝까지 우리 인상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1914년 8월 황제의 전쟁공채 발행에 동의하여 지구적 학살극의 서막을 열었던 20세기초사민당의 배신행위를 기억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 사민당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분리되었으며 자신들이 그때까지 지키고 주장하던 모든 원칙들을 저버렸다. 그러나 과거를 회고해 본다면 사민당의 변절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많은 시간에 걸쳐 발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녹색당의 경우는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녹색당이 타락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가 녹색당의 현재를 만들어 왔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녹색당이 확신을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원칙은 하나밖엔 없다: 그들의 결단력 부재. 미미한 압력에 대해서조차 녹색당은 별다른 저항없이 대세를 쫒아간다. 원자력 사용 축소, 주요 에너지 사용자들과 환경 파괴자들에 대한 과세, 생태학적 재건설, 평화주의 등 그들이 과거에 주장하던 정치적 원칙들 가운데 시궁창으로 빠져버리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녹색당은 보수적인 헬무트 콜 정권의 법안통과를 저지하려던 그들이 의지했던 조치들의 대부분을 권력획득을 위해서 다시금 이용하고 있다.
적녹연정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안들이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5월 13일 특별전당대회를 당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녹색당의 정치적 붕괴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모든 당원들의 정치적 입장은 분리되어 있으나 당은 통일되어 있다"는 반복되는 주술은 매우 가소로울 따름이다.
무엇이 녹색당을 급속히 와해시켰는가? 녹색당의 붕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여기에는 많은 원인들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당 지도부에게 있다. 당 지도자 요쉬카 피셔는 전형적인 필리스타인계(팔레스타인에서 유태인을 학대하던 민족:역주) 독일인으로서 오로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정치적으로 발휘하는 자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그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어제 자신이 생각하고 말했던 것과 정반대로 오늘날 행동하고 있다-그는 확신없는 수다장이일 따름이며 결코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에게 가장 큰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근거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 종종 그러하듯이 명예와 어리석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를 녹색당 쇠퇴의 유일하고 주요한 원인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피셔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일 따름이다. 우리는 개인사를 거론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결과를 다루고 있다. 코소보 공습은 정치적 촉매제로서 기능하면서 정치적 과정을 촉진시키고 시야에 가려져 있던 사회적인 문제들을 표면으로 등장시킨다.
독일 적녹연정의 건설은 지난 60년대말 저항운동에서 첫 정치적 경험을 했던 세대가 권력을 획득했음을 의미했다. 그 당시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베트남전과 독일 정계에 증가하고 있는 과거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있었다(1968년 신나치주의정당NPD는 바덴 부르텐베르크시 선거에서 9.8%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운동지도부의 입장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의 중요한 구호였던 "전쟁반대! 파시즘반대!"에서 점차 세르비아계 전체에 대한 테러의 형태를 띠어가고 있는 코소보 폭격에 대한 주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다다랐다. 차기 유럽선거에서 프랑스 녹색당의 후보로 나설 다니엘 꽁바디와 같은 과거 학생운동 지도자는 코소보에 대한 조속한 지상군 투입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절에 대한 한가지 설명은 68세대의 급진주의가 정치와는 관련이 없으며 차라리 세대의 문제에 더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발생했던 것은 아버지들에 대항한 아들들의 전통적인 반항이었다. 그러나 결국 아들들은 아버지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와같은 언명은 60년대 학생운동세력들이 현재 2/3에 해당하는 사회적 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동일한 배경으로 그들은 과거에는 열렬하게 저항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소유를 공고히 지켜주는 국가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만으로는 녹색당의 변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 녹색당이 첫 시험대(코소보 공습:역주)에서 불평없이 제국주의적 논리에 흡수되어 버렸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녹색당의 정치적 내용이 발전했던 과정을 설명하는 것 또한 요구된다.
후에 녹색당을 창당하게 될 많은 운동가들은 학생운동시기에 사회를 흔들던 노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폭발적 힘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모택동이나 체 게바라 그리고 그 시대의 다른 영웅들을 흠모하며 그들 자신을 사회주의자들이나 혁명운동가로 동일시하던 다양한 정치적 분파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노동계급이 많은 패배를 겪고 부르조아가 지구적 반격을 시작하자 이러한 움직임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이 가졌던 초기의 열광은 깊은 좌절에 빠져버렸고 정치적 지향 역시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들이 가졌던 정치적 입장이나 확신은 심각한 고려 없이 폐기되어 버렸고 또다른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60년대말의 이러한 조건은 녹색당을 정치의 정면에 등장시켰다. 그들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계급투쟁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내용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마저도 포기했다. 환경과 평화, 민주주의는 그들의 원칙이었으며 이러한 목적들은 고착화된 지배관계에 도전하지 않고도 실현될 수 있었다. 몇 년후 고르바초프는 "인권"이 계급문제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하지만 그는 녹색당이 몇 년간 설파했던 주장을 다시 언급했을 뿐이었다.
녹색당에 따르면 정치는 더 높은 이상-도덕적 가치!를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도덕적 가치는 정당이 드러내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이해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이 상이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이는 방향을 상실한 정책을 포장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가치들은 지배세력에 의해서 형성되고 결정되어 버린다.
레온 트로츠키는 그의 유명한 저서 "그들의 도덕과 우리의 도덕"에서 정치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와 기본적인 상식에 입각한 정치행위들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였다: "안정적인 사회환경에서 건전한 상식은 사업을 하고 환자를 치료하며 작품을 쓰고 노조를 지도하고 의회에서 투표하고 결혼하고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동일한 상식을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 완전한 일반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려고 할 때는 그러한 건전한 상식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시대에 특정 계급의 편견이 축적된 것에 불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80년대 초 녹색당이 정치와 사회를 인간화하려는 의도로 개혁과 전진을 위한 희망이라는 꽃을 달고 의회로 진입했을 때 드러나기 시작했다. 콜정부에 대한 오랜 기간의 저항과 사회적 정체가 심화되는 상황속에서 녹색당은 그들의 영향력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정치적 현실은 거의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인 사회적 관계를 뒤흔드는 폭풍우가 정치적 쇠퇴를 대신하자 녹색당은 그들 자신이 완전히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의 능력을 초과하는 과중한 짐이 녹색당에 지워져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오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며 내일 자신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점차 유고공습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전쟁은 "인류애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작고 덜 발전된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강하고 경제적으로 힘있는 국가들이 무력으로 위협함으로서 경제적 착취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확립하려는 발가벗겨진 제국주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들은 이번 전쟁의 첫 사상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사회적 권력관계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거부하고 있는 녹색당은 현재의 사회적인 격변으로 그들이 변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걸프전 기간동안 "석유를 위한 피의 전쟁 중단"을 외치던 요쉬카 피셔는 5주간의 공격이 끝난 지금 부당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터무니 없는 왜곡을 자행하고 있으며 1년전 극우파 활동을 이유로 녹색당에 의해 의회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던 독일군은 현재 "평화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녹색당 내의 깊어져 가는 분쟁은 녹색당을 출현시켰던 사회적 기반이 심각하게 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수의 중간계급이 약진한 반면, 다수는 실업과 자영업(self-employment)이라는 싼 노동형태에 의해 증가하는 가난으로 침몰했다.
녹색당 쇠퇴라는 우울한 장면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이는 전쟁을 일으킨 사회와 전쟁 자체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독특한 결론을 공개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위축당하지 않을 새로운 정당을 위한 길을 명확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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