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유산한 임산부에 돈봉투 제시하며 자술서 강요

경찰 폭력에 유산한 지현숙 씨, 경찰 회유 협박 사실 폭로

  21일 국회에서 열린 지현숙 씨 유산사태 공동진상조사단의 결과 보고/김용욱 기자

포항지역건설노조 조합원 가족이 경찰 폭력에 의해 아이를 유산한 사건과 관련,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과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이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아이를 유산한 당사자인 지현숙 씨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해 사건 경과와 경찰의 회유, 협박 사실을 폭로했다.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지현숙 씨의 증언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지난 7월 19일 포항에서 열린 민주노총 영남권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지현숙 씨는 당시 포스코 본사에서 농성 중인 남편을 만나겠다며 다른 가족대책위 회원들과 함께 경찰이 비켜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 지현숙 씨가 "때리지 마라, 임신했다"고 호소했음에도 가격이 계속되었고 주변 여성들이 격하게 말린 지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지현숙 씨를 풀어주어 급히 선린병원으로 후송된 바 있다.

  경찰 폭력에 의해 유산한 지현숙 씨가 이후 경찰의 협박 사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김용욱 기자

경찰, "전경이 때린 건 맞지만 자술서 쓰면 편해질 것"

당시 임신 5-6주 상태였던 지현숙 씨는 병원 후송 후에 잦은 진료가 부담스러워 진료를 거부했고, 이후 복통과 허리 통증 등에 시달린 끝에 7월 24일 끝내 유산했다. 그 후 경찰의 접촉 시도가 27일부터 시작됐다.

"27일 날 저녁부터 경찰이 자꾸 전화하고 저한테 뿐만 아니라 제 식구들, 친정, 시댁에까지 전부 찾아가고 전화하고 만나자고... 만났더니 결국 하는 말이 처음에는 달래더라구요. '지금 이 돈봉투 받으시고 경찰서 가서 자술서 하나만 써달라'면서... 내가 어떤 법적인 걸로 제재를 안하겠다고 한마디만 적어주면 된대요. 애를 잃었는데 돈 몇푼가지고... 그래서 아저씨 돈 가져가시라고 했어요. 그 뒷날 문자가 와서 피한다고 되는게 아니라면서 빨리 남편이랑 세 명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러드라구요"

경찰은 28일에는 지현숙 씨의 부산 친정으로 찾아가 "조용히 살고 싶으면 경찰서로 와서 '유산된 것으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자백서를 하나 써 달라"고 협박하고, 거듭 만나자는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등 지현숙 씨를 괴롭혔다. 고민하던 지현숙 씨가 유산 사실을 민주노총에 공식적으로 알리자 정보과, 수사과, 지청 등 엄청난 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9일날인가 성명서 발표를 했대요. 저는 몰랐는데 그날부터 저한테 전화가 또 오기 시작해서 소리도 지르고 윽박도 지르고... 나중에는 원하는게 뭐냐, 우리가 하는대로 해달라고. 10일날은 전화가 왔을때 '내가 병원 원장을 만났는데 맞아서 그런가라고 얘기할 수 없다 하더라'고 해서 '아저씨 그러면 내가 전경들한테 맞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 때린 건 맞는데 (자술서) 써주기만 하면 편하지 않느냐, 내가 언론이고 뭐고 다 커트시켜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지현숙 씨는 아직도 허리 및 다리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김용욱 기자

"경찰 전화에 쉴 수가 없어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경찰 폭력에 의한 지현숙 씨의 유산 사태를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의혹이 있다.

지현숙 씨는 최초 선린병원으로 후송된 당시 아무런 진료를 받지 않았음에도 8월 14일에 당시의 응급 진료카드와 소견서가 나타났으며 이것을 지현숙 씨의 사전 동의 없이 경찰이 협조 공문을 통해 복사해 갔다.

"7월 28일자로 제 의료기록을 가지고 소견서를 떼갔더라구요. 내가 이 소견서 누가 떼갔냐고 하니까 원무과에서 보여준 것이 경찰청에서 도와달라는 공문이 왔대요. 그래서 '영장 없이도 볼 수 있나요' 물었더니 '세상 누구나 보여달라고 하면 요새는 다 보여주어야 한다'고 해요. 말도 안되는 이런 일도 있고..."

진상조사단은 "경찰의 지현숙 씨에 대한 지속적인 협박과 회유가 7월 27일 이후부터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경찰은 7월 19일 이후 지현숙 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며, 지현숙 씨가 치료를 받았던 병원측 소견서에 의해 유산 상황을 확인한 이후 사건이 미칠 사회적 영향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현숙 씨는 현재 직장에서 해고된 상태로, 경찰의 협박 전화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오한과 허리 통증, 다리 통증, 불면증, 불안, 공포, 정신적 공황 등을 호소하고 있으며, 경찰의 회유 협박에 병원이 협조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조카 핸드폰으로 어제 저녁 8시 50분경에 도경 정보과에서 전화가 왔었드라고요. 전화를 안 받았지만 계속 반복이니까... 빨리 끝내고 싶어요. 집에 갈 수가 없어요. 친정도 시댁도 우리집도 어딜 갈 수가 없어요. 전부 전화, 전화해서 안되면 찾아오고 쉴 수가 없어요. 수술도 받고 쉬어야 하는데 쉴 곳이 없어요. 제가 지금 애기 잃은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데 꼭 정신병 환자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없으면 이런 일이 없잖아요"

  지난 19일 포항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지현숙 씨 부부/김용욱 기자

진상조사단은 △하중근 건설노동자 죽음, 임신부 유산 사태를 책임지고 경찰청장을 해임할 것 △제2, 제3의 살인을 부르는 폭력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 △임신부 유산 사태 등 여성인권탄압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철저히 조사할 것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