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 만드는 ‘직권중재’

정치권, 원인 상관없이 일만 생기면 ‘불법’

4일 새벽 발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정치권에서는 곧바로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례 등장하는 '불법'과 '강력대처'의 두 단어가 핵심이다.

먼저 한나라당은 4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관련 입장을 정리했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파업에 돌입한 발전노조에 대해 '노동법 무시하는 노조'라고 비판하고, 그 근거로 직권중재 권고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강행한 사실을 들었다. "직권중재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15일 동안 파업이 금지돼 직권중재 회부 이후의 파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유기준 대변인은 발전노조가 이를 알면서도 "파업에 돌입한 것은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라며, "국가기간산업인 전력공급에 차질을 가져오는 것은 국민과 경제를 볼모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관계도 없는 대학 캠퍼스에서의 농성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다른 세력과의 동조를 바라는 것에 불과하다"고 몰아세웠다.

유기준 대변인은 이에, "산자부는 물론, 교육부도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 검찰과 경찰에서도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열린우리당도 이번 파업에 대한 '불법'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위원장은 4일 오전에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이번 발전노조의 파업을 "국민의 정서와 요구를 외면한 파업"이라고 규정,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라는 법절차도 무시한 파업"이라며 '불법성'을 강조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그러면서, "노조는 지금이라도 즉시 파업농성을 해산하고, 현장에 복귀“할 것을 촉구, ”정부는 이 불법파업에 대해서 엄정하게 대처하고, 만에 하나라도 전력생산에 차질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번에도 지난 포스코 건설노조의 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현상적 문제들만 나열, ‘불법’과 ‘강력대처’ 운운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단지 사안만 달라졌을 뿐이다.

포스코 사태 때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원청의 실질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무시한 채, 노조가 교섭상대가 아닌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다며 불법 운운하더니, 이번 발전노조 파업에 대해서는 ‘직권중재’ 제도의 부조리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 채, 이를 악용하여 교섭에 나서지 않은 사측은 두고, 교섭 결렬로 인해 파업을 선택한 노조 측에게 또 다시 ‘불법‘ 카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법의 빌미가 된 '직권중재'란 무엇일까?

철도, 버스, 수도, 전기, 가스 등 이른바 '필수공익사업'의 경우 노.사 양측이 합의된 조정안을 도출해내지 못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중재안을 제시하도록 한 것을 가리켜 '직권중재'라 일컫는다. 이는 우리나라는 노조가 파업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치도록 규정한 '조정전치주의'를 따르기 때문인데, 일반적인 사업장의 경우도 조정을 거쳐야 하나, 노사의 합의안 도출 결과 여부와 관계없이 노조가 일단 조정절차를 밟으면 쟁의행위에 돌입할 수 있는 반면, '필수공익사업장'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중재재정 조치를 내리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노위가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중재회부 결정을 내리게 되면, 15일 동안 노조의 파업이 금지된다. 즉 노조가 직권중재 회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강행할 시, 이는 '불법파업'이 돼 버리는 것이다. 15일 이후에는 노조가 파업을 재개할 수 있으나, 그 이전에 중노위가 중재안을 내놓을 경우 노사 모두 반드시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징역 1년 이하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관련법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직권중재 제도는 그동안 노동계의 숱한 반발에 부딪혀 왔다. 이 제도가 필수공익사업장 노조의 파업권을 침해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노조가 교섭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려해도, 사측은 중노위의 직권중재 결정만 기다리면 굳이 교섭에 응하지 않고 버티기만 해도,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전노조의 경우에도 노조는 파업 돌입 직전까지 사측과 교섭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3일 밤 사측 교섭위원들은 교섭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준상 발전노조 위원장은 이번 파업과 관련,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00시로 예정됐던 파업시간을 미루면서까지 마지막 협상에 임하려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양보안까지 내는 등 최대한 쟁점을 좁혀 협상에 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이에 응답조차 않은 것이다.

이에, 이준상 발전노조 위원장은 이번 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직권중재’를 지목, "파업을 막겠다는 직권중재가 (오히려)파업을 불러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준상 위원장에 따르면, 사측은 “어차피 직권중재 회부하면 불법이고 파업 못할 텐데”라는 자세로 직권중재에 기대, 교섭을 해태하고 일방적으로 교섭 불가 통보를 한다. 이렇게 되면, 노조 측에서는 파업이라는 마지막 선택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섭 해태→직권중재→노조 파업 불법 규정→노조탄압'이라는 발전사 측이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지적과도 연결된다. 공공연맹은 중노위 직권중재 결정이 나온 직후 낸 성명에서, "직권중재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당연히 폐지돼야 할 악법 중의 악법"이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직권중재’에 대한 이런 상황을 주목한다면,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발전노조 파업에 대해 ‘불법’과 ‘강력대처’를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각본에 따른 자연스런 진행으로 보인다. 위 전개에 따르면 3단계 쯤 와 있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직권중재’ 결정이 나자마자, 산자부와 5개 발전회사는 벌써부터 퇴직 기술자, 군인 등 3500여 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할 계획 내 놓았다. 특히 산자부는 중노위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 이후에도 노조가 파업을 계속할 경우 노조 집행부 검거, 파업 참가자에 대한 무노동·무임금의 원칙 적용 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경찰청 또한 노조지도부 20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이는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으로까지 발전한다.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어쩌면 각본은 이미 3단계를 넘어 마지막 4단계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발전노조는 4일 오후 4시 30분을 기해 사실상 파업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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