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한 달 그리고 첫 눈

노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대우건설빌딩 노동자들

콘크리트 더미에 사람의 향기를 불어넣은 노동자들의 투쟁 30일

투쟁 30일, 대우건설빌딩을 다시 찾았다. 청소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 그저 콘크리트 더미일뿐인 빌딩을 돌아가게 만들고 깨끗하게 만들었다는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30일째 일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 한 달

매일 바쁘게 문자가 온다.

“조합원 분열책동 노조파괴 공작 앞장서는 우리자산 항의 농성 돌입”
“신규보안업체 오늘 자정까지 개별 근로계약 요구 이후 즉시 현장 침탈 예상”

‘dw project'라는 이름으로 노조를 파괴하려는 대우건설의 책동에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대화를 하자고 노동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14층에 위치한 대우건설 자회사인 우리자산관리와 24층에 위치한 대우건설 사장실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노조를 없앨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자산관리에서는 조합원 한명한명을 따로 불러 노조를 탈퇴하면 계약체결 해주겠다라며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있다. 이도 'dw project'에 이미 밝혀져 있던 것이다. ‘dw project'에서는 “보안, 미화를 포함한 신규업체는 현장인원에게 대전제로 현재의 인원을 전원 흡수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안내문을 통해 단시일 내에 고용승계하고 일정기간에 따라 채용조건에 어긋나는 경우(고령자, 자격미달자 등) 타사업장으로 전보 발령해 근무토록 하여 고용불안을 없게 하고 불법행위의 명분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화하자고 아무리 요구해도 묵묵부답의 대우건설

  권옥분 조합원

이런 우리자산관리의 행동에 조합원들은 마음이 불안하다. 어느 조합원은 사측의 회유를 못 이겨 농성장에 며칠 얼굴을 비치지 않기도 했다.

“솔직히 걱정이 태산 같아.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마음이 많이 답답하고 걱정스러워. 30일 째인데, 일했던 것 보다 더 지쳤어”

권옥분 조합원은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사측의 회유에 혹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러운 꼴 보지 않고, 맘 고생하지 않고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 조용히 일하면 쫓겨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측은 이런 조합원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투쟁을 계속하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어야 하는데 저 놈들이 꿈쩍도 하질 않아. 우리 지도부들은 대화하자고 공문도 보내고, 점거도 하고, 농성도 하고 하는데 안 만나줘”

어떤 사람들은 떠든다. 노동자들이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입장만 가지고 강경하게 움직인다고... 하지만 진짜 강경하게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언제나 사측이다. 노동자들을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너네를 직접 고용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만나야 하는가. 용역업체 사장하고 잘 얘기해서 해결해라” 대우건설은 노조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문제는 항상 원청이었다. 하청을 줬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했지만 문제는 항상 원청이다. 원청이 대화하지 않으면 하청 업체랑 대화해도 변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이 그랬고, 청주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랬고, 대우건설빌딩 미화, 보안 노동자들이 그렇다.


“나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일했어. 서른다섯에 왔지. 현관 청소를 했어.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지. 너무 억울해. 정년을 정해서 그 때 되면 알아서 나가게끔 하면 되는 건데. 없는 사람한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속상하고 서운하고... 분이 안 풀려.”

권옥분 조합원은 이제 60살이 되었지만, 그동안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비정규직, 계약직, 계약해지라는 이름뿐이었다.

"만약 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간다“

“아줌마들이 다 그래. 우리가 만약 지는 한이 있어도 같이 간다는 각오야. 어디를 가든, 설사 다른 용역업체로 가도 노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산돼서는 절대 안돼. 악착같이 끝까지 해 볼꺼야”

대우건설빌딩에서 수십년을 일해 온 늙은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답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노동자로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조합원들은 파업 수첩을 손에 꼭 쥐고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른다.

  첫 눈은 조합원들 머리에도 떨어졌다.

투쟁 30일차, 집중 투쟁을 하고 있던 서울역 앞에 갑자기 눈이 펑펑 오기 시작했다. 권옥분 조합원은 “기분이 이상해. 눈 맞고 비 맞아가면서 투쟁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해”라고 말하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대우센터빌딩 하청투쟁 관련 보안 대체인력이 농성장 침탈! 서울역 앞 대우건설빌딩”

또 하나의 문자가 급하게 전화를 울렸다. 4일, 우리자산관리는 10여 명의 용역반원들을 고용해 14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위협했다. 비상문도 잠그고, 엘리베이터 운행도 멈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노동자들은 또 하루를 1층 로비에 마련되어 있는 농성장에서 보냈다. 노조는 1층 농성장을 거점으로 문제해결이 될 때까지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대우건설빌딩 미화, 보안 노동자들의 투쟁 30일.
대우건설빌딩 앞은 미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낙엽이 가득 쌓여있다. 노동자들은 생존권이 보장될 때까지, 노조를 인정할 때까지 이 낙엽을 치우지 않을 것이다.

또 문자가 왔다.

“경비용역 30명 상주 중 로비천막 침탈대비하고 대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