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도입 및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불법정보’에 대한 삭제 명령권 부여를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정보․인권․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지문날인반대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등 11개 단체들은 28일, 성명서를 내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인터넷 상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 가득차있다”며 “개정안 통과는 국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으려는 정부와 여야 등 권력집단들의 야합에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실명제 불이행시 3천만 원 과태료,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삭제명령
개정안은 공공기관을 비롯해 포털 및 인터넷언론 등 일일평균 이용자수가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이용자에 대한 본인확인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개정안은 실명확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대해 정보통신부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이행시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강제하고 있다.
또 개정안은 ‘불법정보의 유통 금지 등’ 조항을 신설하고, 정보에 대한 ‘불법성’ 여부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판단한 후 정보통신부장관이 이에 대해 삭제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정보통신부장관의 삭제 명령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시판의 관리자 또는 운영자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해당 운영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개정안에 규정된 ‘불법정보’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등을 훼손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하는 내용의 정보 등 이외에도 △법령에 따라 분류된 비밀 등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의 정보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 등도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인터넷 실명제, “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
정보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구시대적 검열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인터넷 실명제 도입과 관련해 “세상에 본인 확인을 하고 글을 쓰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정보통신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기만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주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는 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또 공공기관 사이트의 실명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실명확인 방법과 관련해서도 단체들은 “개정안은 어떠한 ‘본인 확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명시하고 있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며 “개정안은 ‘본인 확인을 위하여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는 현재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대조 방식’이 이용될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누가 행정부에 사법적 판단의 권한까지 주었는가”
특히 단체들은 개정안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는 ‘불법정보’ 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과 정보통신부장관에게는 정보 삭제 명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는 일정한 조건 하에 제한될 수 있음에 동의하지만, 그것은 엄격한 사법적 판단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법정보’라는 자의적인 판단 하에 시정요구를 해왔으며, 이에 불응할 경우 정보통신부 장관이 ‘삭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누가 그들에게 타인의 표현을 삭제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의 권한을 주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단체들은 이어 “정보통신부 장관이(그리고 이를 심의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불법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 정보통신부 장관의 삭제 명령에 대해 불응했다는 이유로 게시판 운영자 등에서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북한 관련 게시물이나 정부 비판적인 게시물에 대해 터무니없는 시정요구를 해왔다”며 “이번 개정안은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정부에 대한 비판 활동을 무력화하겠다는 정부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정보통신망법안 전면 재개정 △인터넷 실명제 즉각 폐기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해체와 정부의 자의적 인터넷 검열을 즉각 중단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