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로 빛나는 사회운동의 기관차가 되라

[노동운동,어깨를펴고](5) - 민주노총의 연대운동 짚어보기

연대의 역사

한국사회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성장 과정은 민중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연대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노협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는 민중연대 투쟁의 중심이자 선봉이었다. 문민정권으로의 교체 이후에도 신자유주의 개혁에 맞서 민주노조운동은 지역적∙전국적 차원에서 연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IMF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 반대투쟁,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여중생 투쟁, 이라크 파병 반대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 한미 FTA 저지투쟁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민중운동은 민주노조운동에 요구하는 것도 많고 기대는 것도 많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보편적인 정치적 사회적 투쟁에 앞장서는 것을 보고 외국에서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현재에도 민주노총은 한국진보연대(준), 전국민중연대,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파병반대국민행동, 빈곤사회연대, 범국민교육연대, 통일연대, 반미반전연석회의,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평택미군기지 확정저지 범대위, 6∙15공동위원회, 민주화운동계승국민연대, 과거청산범국민위, 공무원∙교수노조합법화 공대위, 언론개혁국민행동,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전태일기념관 건립추진위, 보건의료연대회의,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수 십여 개에 달하는 연대체에 참여하고 있고, 그 이슈와 형태도 다양하다.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연맹 단위와 지역본부의 연대운동까지 포함하면 그 범위는 더욱 넓다.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와 사안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은 중요한 발언자이자 행위자로서 연대운동의 우선순위로 꼽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광범위함의 이면에는 질적인 문제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결합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연대운동의 중심 내용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현실적 연대망을 누구와 구축할 것인가, 등이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연대전략을 다시금 점검하고 방향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지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노동운동을 일반화, 보편화 하자

언제부터인지 민주노총의 집회는 민주노총 소속 단위들만 모이는 집회가 되었다. 민주노총이 부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몇몇 운동단체나 학생단위들을 제외하면 노조 깃발이 아닌 깃발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 비정규 악법과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민주노조운동 뿐만 아니라 제 노동∙인권∙여성∙사회 운동단체들, 학술, 법조, 종교 할 것 없이 나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회운동 진영이 적절한 개입지점을 찾지 못했거나 역할을 자임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이 연대망을 강력하게 추동하지 못한 것도 클 것이다.

2003년도에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현중, 이용석 등 줄줄이 열사가 났을 때, 당시 민주노총은 전체 운동진영에 함께 싸워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57개 사회단체가 모여 ‘손배가압류∙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책위’가 결성되었다. 작년 상황 같으면 ‘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가 결성될 법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흐름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만 사고했다.

그러다보니 전 민중적인 사안인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법안의 문제는 노동운동의 문제로만 인식되었고 방어투쟁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편적인 노동의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연대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본래 역할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의미를 살리는 것은 기본으로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노동운동이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운동과 함께 호흡하면서 노동운동의 우군으로 삼기 위한 노력은 더욱 중요하다. 노동운동의 고민을 일반화, 보편화해서 운동진영이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발언하고 실천하게끔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연대의 중심에 놓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민중 생존의 피폐화, 노동자 권리의 해체, 빈곤의 심화, 여성 이중부담의 증가 등은 전체 운동진영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중심으로 한 연대전선을 굳건히 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위기관리의 책임을 분산시키거나 고통을 떠넘기기 위해, 혹은 저항이 분출하는 것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지배체제의 일부로 운동을 끌어들이거나 활용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진영을 돌아보면 이러한 내용을 모호하게 흐리거나 수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정부가 작년에 제안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대책 연석회의’ 참여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사회통합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이 초래한 위기상황에 대해 사회 구성원의 합의 형식을 취하여 가능한 수준에서 봉합하려는 이러한 시도에 대해 운동진영이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 무비판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된 ‘사회양극화해소 국민연대’ 참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회양극화라는 것이 본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화, 구조조정으로 인해 자산가계급으로 부가 더욱 이전되어 빈곤이 심화되는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양극화의 정도를 완화하자는 식의 정책건의 활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연대의 대상과도 연결된다.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05년 말에 한창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싸고 민주노조운동과 정권의 대립이 치열한 시점에서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7개 시민단체들은 조정안이랍시고 당시 한국노총과 유사한 안을 발표해서 투쟁전선을 흐리고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민주노조운동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이는 시민단체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얼마나 불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중요시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연대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주체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결집을 지향하자

민주노총은 ‘IMF 범국본’ 이래 ‘민중대회 조직위원회’, ‘전국민중연대’로 이어지는 민중운동 진영의 공동투쟁과 단결에 복무해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을 확산시키기 위해 상설공동투쟁체를 앞장서서 이끌어 온 것이다. 즉 IMF 이후 전면화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해서 민중운동 내부의 정치적 견해 차이와 갈등을 뛰어넘어 공동의 투쟁을 모색하자는 기운을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결성된 ‘한국진보연대(준)’은 이러한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시킨 감이 없지 않다. 겉으로는 조직발전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국민중연대보다 참여 단체가 축소되었다. 이는 정치적 차이에 대한 토론, 민주적인 합의와 의사결정, 연대의 확장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전체 민중운동 진영의 합의가 부족하고 민주노총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많았던 현실을 감안하면 성급한 조직건설보다는 지속적인 토론을 추진해야 하지 않았을까. 민주노조운동은 한국진보연대(준)으로 제한되지 않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헌신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합력 창출과 결집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연대로 빛나는 노동운동

위기의 노동운동에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변혁)운동성의 복원일 것이다. 한 손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다른 한 손에는 군사주의로 노동자 민중을 무한대로 억압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노동운동이 맞서는 길은 사회운동의 지향을 명확히 하는 가운데 이에 저항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한 노조의 사회운동적 경향 강화, 노동자 민주주의 복구, 반전운동∙대안세계화 운동 및 여성운동과의 결합, 지역 연대운동 강화 등이 함께 어우러져 노동운동이 보편적 해방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내적으로는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갈가리 찢긴 노동자 연대를 복구하고 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 국제적으로는 진보적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법안, 로드맵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되는 2007년은 어느 해보다 노동운동에 어려운 시기다. 그래서 연대의 힘은 더욱 소중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연대로 빛나도록, 사회운동의 기관차가 되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자.

[기획] "노동운동, 어깨를 펴고"

1회차(1월10일) 시론 : 노동운동의 의제설정 과제
2회차(1월10일) 산별과 지역(1)
3회차(1월11일)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이후 대응
4회차(1월12일) 산별과 지역(2)
5회차(1월15일) 민주노총 연대운동 짚어보기
6회차(1월16일) 사회연대전략 어떻게 할까
7회차(1월17일) 연금 개악 대응은
8회차(1월18일)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교섭 전술이 남긴 것
9회차(1월19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10회차(1월22일) 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현장을
덧붙이는 말

정영섭 님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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