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소수' 함께 가자".. "집권 포기해라"

‘동반파산? 동반성장?’,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어떻게 갈까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간 이 양대 조직은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을 표상해왔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을 모태로 창당되었고, 현재까지 이 둘은 끈끈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운동의 침체와 함께 민주노동당은 당대로 민주노총은 노총대로 서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를 점검해보는 토론회를 마련했다. ‘동반파산이냐, 동반성장이냐’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양 조직 모두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전제 아래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집권을 위한 ‘동반성장’의 전략을 모색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주발제자 없이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민주노동당에서 김선동 사무총장, 이용길 전 충남도당 위원장이, 민주노총에서 김태일 사무총장, 이영희 정치위원장이 자리했다. 이밖에 외부인사로 노중기 한신대 교수,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 소장, 박영환 경향신문 기자 등이 참석했다.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모두 “위기다”

우선 현재의 상황 진단에 있어 양 조직 참석자들은 공히 내부적으로 위기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양 조직이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지 못한 이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나타냈다.

우선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이 산업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로 임금단체협약투쟁 중심의 활동을 펼쳐온 게 사실이고, 오래된 관성에 젖어 있다”고 현재의 민주노총의 모습을 진단했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역시 “당이 지역에서의 생활정치와 진보정치의 상을 제시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대표적으로 울산에서 심판을 받았다”며 “큰 틀에서는 한국 사회 변화에 대한 집권 전략과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연구소 소장은 “여론조사를 해보면 각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변화가 있지만, 국민이념도에서는 크게 변화가 없다”며 “2-3년 전 진보가 30% 정도였고, 현재도 비슷한 수치인데, 이 진보를 표방하는 30%를 민주노동당이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강조했다.

노중기, “당, 아직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거리 없다"

앞선 토론자들의 진단에 대해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민주노조운동 수준의 ‘위기론’에는 동의했으나, 민주노동당과 관련한 ‘위기론’에 대해서는 “아직은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거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총이 욕을 먹고 있지만, 10여 년 간의 투쟁으로 민주노총 간판을 걸었고, 또 10여 년 간의 투쟁 끝에 산별노조의 간판을 걸고 있다”며 “당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고서 집권전략이 나왔는데, 갑자기 10석이 생기니까, 갑자기 집권할 것 같을 텐데, 운동은 절대로 그렇게 진행되지 못 한다”며 “이제 2004년의 환상을 빨리 정리하고, 당과 노동운동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진짜 위기가 축적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영희, “노동 빠지고 어떻게 당이 집권 하겠냐”

‘동반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양 조직의 관계에 대해서도 노중기 교수를 제외한 토론자들은 ‘소원’해진 양 조직의 관계를 토로한 뒤 연대와 관계의 재강화를 촉구했다.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주특기’를 “도덕성, 쪽수(노동), 분배” 등으로 요약한 뒤 “당이 우리의 주특기인 노동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특기인 노동을 잘 살리기 위해 당에는 부문할당제도가 있는데 이거 없애자고 난리”라며 “노동이 빠지고 어떻게 당이 집권을 하겠는가”라고 민주노동당 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부문할당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이어 “국민들은 마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혈맹관계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작 우리는 혈맹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하게 성토하기도 했다.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조각난 관계의 복원을 위해 “양 조직이 사회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맺은 단체협약의 적용률을 늘릴 수 있도록 민주노동당이 제도개선 투쟁을 전개하고, 그 다음으로는 사회연대전략을 함께 추진해야한다”며 연대 방안을 제시했다.

김태일,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 십분 활용해라”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
김태일 사무총장도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노총 내 우려가 있다”고 거들었다.

특히 김태일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이 현재 정치방침으로 정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와 관련해 “조합원들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규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민주노동당에 대해 배타적 지지를 하고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원론적으로 상호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민주노동당이 배타적 지지에 기반하지 않고 제대로 설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이 배타적 지지라는 게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내용적으로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에 집단가입하고 있는 것이지만, 민주노동당에서는 민주노총에 집단가입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상호 독립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 방침을 십분 활용하고, 더 이용해야한다”고 충고했다.

김선동, “아직 동반성장 가능성 있다”

이 같은 문제제기와 관련해 김선동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의견을 관철하는 통로로 부문할당제를 초창기에 당이 필요해서 만들었음에도 어느 순간 부담스러워 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민주노총이 배신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할당제가 당 안에서 더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더욱 바로 세워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선동 사무총장은 민주노총의 정치위원회와 관련해 “당의 의견을 민주노총에 반영하는 통로인데, 당이 매우 소극적이고 비주체적 태도를 취해왔다”며 “당이 민주노총 속에 자기 뿌리를 튼튼히 세울 수 있는 정치위원회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민주노총도 영도계급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위원회 역할을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김선동 사무총장은 또 “단협적용률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투쟁, 국민연금지원사업(사회연대전략) 등의 투쟁을 통해 양 조직이 연대하면, 동반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중기, “당은 민주노총과 제대로 싸워야 한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참석자들이 공히 ‘혈맹’ 관계의 재복원에 무게를 뒀다면, 노중기 교수는 오히려 양 조직의 분화에 강조점을 뒀다. 그는 “조직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긴밀한 관계를 갖겠지만, 당의 노선 혹은 장기적 시야는 민주노총에 있으면 안 된다”며 “오히려 민주노총이 아니라, 미조직 비정규노동자 등에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총은 자기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 있는 한계가 있으나, 당은 다르다”며 “당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제대로 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당이 미조직 노동자 등 전체 1천5백만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거 아니다’라는 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한 소수전략‘, 어렵더라도 2인3각 경기 하듯 함께 가야

참석자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이 2012년 집권을 위해 채택하고 있는 ‘거대한 소수전략’에 대해서는 그간 ‘실패’해 왔다는 데 이견이 없었고,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대체로 ‘힘들어도 함께 가자’는 분위기였다.

김태일 사무총장은 “거대한 소수전략은, 대중투쟁에 기반한 의회전술인데 이를 집행하는데 실패했다”며 “중단기 과제를 놓고, 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밀접하게 연계해 집행에 대한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동당이 방점을 찍을 곳은 의정활동이 아니라, 의정활동을 통해서 어떻게 대중투쟁들을 강화해야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진보정당으로서 획기적으로 도약하려면, 의정활동이 아닌 대중투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작년 민중총궐기 투쟁의 중심에 당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거대한 소수전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당원만이 아닌 민주노총, 전농 등 외부 진보진영 세력들에게 문을 열어둬야 하고, 이를 위해 민중참여경선제로 대선 후보를 뽑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선동 사무총장은 “강력한 대중투쟁을 촉발하고, 선도해야 될 의원들이 선도적 정치활동들이 부족해 실망이 증폭됐고, 반대로 거대한 대중투쟁의 힘으로 원내에서 힘을 발휘한다고 했는데, 바깥에서의 대중투쟁이 힘 있게 조직되지 못했던 점 있다”고 지적한 뒤 “불편한 관계더라도 당분간 2인3각 경기를 하듯이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노중기, “지금은 집권 이야기할 때 아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참석자들이 그 방법론이 달랐지만 집권을 위한 ‘거대한 소수전략’의 강화를 얘기했다면,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민주노동당이 세우고 있는 ‘집권’ 목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중기 교수는 “지금은 집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고 단정적인 어조로 민주노동당이 내세우고 있는 집권전략을 비판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지금 10석 얻었다고 웃을 때가 아니다. 의석수 늘리는 것 가능하다고 보지만, 반대로 100석이 있는 정당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며 “실력을 냉정히 봐야지 그에 따른 구체적인 상이 나올 수 있는데, 당 중앙에서 조차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노중기 교수는 ‘거대한 소수전략’, 즉 소수의 의회세력과 다수 대중의 결합 전략에 대해 “지난 4년 동안 물과 기름처럼 결합하지 못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결합한다는 것인지에 대해 민주노동당에 묻고 싶다. 당비 받아서 선거 때 결합하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합집산 하는 그런 정당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서 뿌리박고 지역주민들과 밑에서부터 함께 움직이는 정당으로 새롭게 뿌리 내리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진보정당은 바람 앞에 촛불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중기 교수는 또 “서구 사민당과 같은 양 날개 정당, 즉 당은 정치활동을 맡고 노총은 투쟁을 맡는 식은 안 되는 길”이라며 “사회운동성을 갖는 당과 노총과의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현숙, “당과 노총 관계 계속 가져가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사실상 대선을 대비한 당과 노총의 동반성장 방안 혹은 연대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노총과 당의 기본 진로와 관계를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는 자리가 아닌, ‘함께 가야한다’는 당위와 대전제 아래 구성된 토론이었기에 사실 논의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집권전략을 포기하라’는 노중기 교수의 주장은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토론이 끝난 후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는 이날 토론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터져 나왔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 냉혹한 평가를 받고도, 아직도 집권을 꿈꾼다는 것이 황당하다”고 밝힌 뒤 “2기 최고위원회 들어 활동을 안 하는 줄 알았던 집권전략위원회가 현재의 시점에서 다른 현안들과의 연동 없이 이런 토론회를 개최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날 토론 내용과 관련해 “민주노총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그것을 표방할 수 있냐를 근본적으로 고려해야한다”며 “민주노동당이 초기부터 민주노총에 기반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과거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를 계속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등이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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