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명 생존권 담보로 벌어지는 사기극

[지엠대우차부평공장 비정규직 실태](2) - IP패드 작업장 하청노동자들

지엠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정문을 들어서면 조립1공장 왼편에 개천이 흐르고 그 위에 천막이 하나 있다. 그 천막이 운전석 전면 플라스틱 판인 IP패드를 조립하는 작업장이다. 종일 개천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를 맡으며 여름에는 선풍기 몇 대, 겨울에는 간이난로 몇 대로 버틴다.

60여 명의 노동자가 절반씩 교대로 일하는 이 작업장에는 물이 넘쳐 발이 젖고 장갑, 양말을 두세 겹 끼고 신어도 손발이 얼고 갈라져 피가 터진다. 한밤중에 석유가 떨어지면 얼어 죽었다 생각하고 그냥 일한다. 이런 곳에서 IP패드에 무거운 전동드릴로 스크류를 박아 넣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놀랍게도 4,50대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겪는 IP장 노동자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기구하다.

  부평공장 안 개천 위에 천막으로 지어진 IP패드 작업장 [출처: 지엠대우부평공장 비정규직 제공]

임금삭감, 거짓말, 열악한 환경...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난

IP장은 지난해 2월까지 '대의테크'로부터 재하청받은 '신성산업개발'이 운영해 왔다. 주야간 교대근무, 잔업, 특근을 다 해야 백만 원을 넘을까말까한 월급과 상여금 300퍼센트가 돌아왔다. 2월에 신성산업개발은 "경영이 어려워 폐업하게 됐으니 다른 직장을 구하던지 새 업체로 들어가라"고 통보해 왔다. 새로 IP장을 넘겨받은 '화인테크'는 상여금을 삭감하고 근태에 따라 임금을 달리 지급하겠다고 압박해 왔다. 경영이 어려워서 폐업한다던 신성산업개발은 한 달 후 조립1부 배선일을 재하청받았다.

여러모로 조건을 악화시키며 새 회사가 된 화인테크도 석 달만에 철수 소문이 돌았다. 작업장 분위기가 술렁이자 회사는 일요일에 전 직원을 불러 거창한 회식을 열었다. 화인테크 사장은 "절대 철수하지 않으니 안심하고 일하셔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인 7월 3일, 노동자들이 출근해보니 화인테크는 현판을 떼고 철수했고 관리자들도 떠난 뒤였다. IP장 노동자들이 뭉쳐 고용승계를 요구한 결과 1차 하청업체인 '대의테크'에 고용승계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또 속았다. 미루고미루다 사측이 제시한 근로계약서에는 회사 이름이 'DYT'로 기재돼 있었다. "대의테크의 영문 약자"라는 회사의 설명에 기꺼이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DYT는 대의테크 사장이 차린 용역업체였다. 투쟁을 통해 그나마 2차하청에서 1차하청이 될 줄 알았던 노동자들은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에 또다시 좌절했다. DYT는 또다른 용역업체 '재영실업'과 계약하고 IP장에 투입했다.

소속업체가 일 년 새 세 번이 바뀌면서 수당 차별, 상여금 미지급, 부당 해고, 사측의 말바꾸기 등 점점 열악해져만 가는 조건에 하청노동자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신성산업개발에서 화인테크로 넘어갔으니 전부 신입사원이라나? 그래서 수습기간이 지나야 보너스를 줄 수 있대요. 업체가 신입이지 우리가 신입인가?"
"화인테크 소속으로 있던 3개월 동안 희한한 기준을 만들어서 근무평가랍시고 전체 등수를 매겨 공개하질 않나, 말도 안되는 이유로 툭하면 해고하고"
"600퍼센트에서 400퍼센트, 다시 300퍼센트로 줄었던 상여금이 화인테크에서는 200퍼센트... 그나마 3개월만에 또 철수해 버린 거죠"
"2교대에 잔업특근 빠지지 않고 일해도 백만 원 겨우 넘는 쥐꼬리 월급도 문제지만 제발 적자니 어쩌니 하는 거짓말로 떼먹을 생각이나 안했으면 좋겠어요"
(대우차부평공장 비정규직 2006년 7월 유인물 중)

하청노동자들이 라인가동을 정지시키다

지난해 12월엔 급기야 IP장 자체가 설 이전에 공장 밖으로 이전하게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올해 1월까지 IP장 노동자들이 DYT 사장을 만나 끈질기게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사장은 답변을 거절했다. "이전 안한다"는 무성의한 답변을 믿기엔 이미 노동자들은 너무 많이 속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1월 24일 저녁부터 25일 새벽에 걸쳐 7시간 동안 부평공장 비정규직 최초로 라인을 멈춰 세웠다.

IP장에 대체인력이 투입되고, 협상을 하겠다던 회사측은 기다리라고만 하고 있다. 1월 25일부터 부평공장 복지회관 내 대우차노조 선관위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비롯해 60여 명의 IP패드 작업장 노동자들은 며칠 안 남은 설이 지나면 길바닥으로 나앉게 될 지 모른다.

"왜 이렇게 당하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나이 많다고 무시하고 여자라고 무시하고 어리다고 무시하고 힘없다고 무시하고... 회사 눈에는 우리가 여물만 대충 먹여주면 일하는 소로 보이나 봅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월급봉투 받을 때마다 속상하고, 무시당해서 억울하고, 매번 속는 것도 더이상 분통 터져서 못살겠습니다"

"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고 얼마나 더 속아야 하는 겁니까? 이제 우리는 복지회관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설 명절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장 밖으로 쫓겨날 지 여전히 출근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밀릴 수도 없고 밀릴 곳도 없기에 끝까지 버티고 싸울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