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국민도 고달프다

[기고]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가려진 의료법 개정안의 본질

지난 2월 6일 서울․인천지역 의사와 간호조무사 수천여 명이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광장에 모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한 의사가 수술용 메스로 자해를 하는가 하면, “사회주의 주사파 의료법을 깨부수자”는 구호까지 등장했었다고 한다.

오는 11일 대한의사협회 주최의 대규모 의사 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나,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 강행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어 의료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의료연대회의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계가 문제 삼는 내용과는 다른 이유로 이번 의료법 개정 방침을 철회하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료계가 반발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

의료계가 문제 삼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의료행위에 ‘투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하고,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유사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표준진료지침을 정하도록 한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이 진료 중단 사태까지 초래하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절박성과 시급성을 갖춘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의료행위를 ‘건강증진과 예방, 치료, 재활 등을 위해 행하는 통상의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즉, 검사, 각종 수술과 시술, 투약 등은 건강증진과 예방, 치료, 재활 등을 위해 행하는 통상의 행위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투약’을 의료행위의 정의에 포함시키자는 의료계의 주장은 의약분업 이후 조제권을 둘러싼 약사와의 주도권 다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시킨 것과 유사의료행위 인정에 대한 반발도 간호사와 유사의료행위업자의 업무 영역 확장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표준진료지침의 경우에도 의료계는 의료행위를 규격화하고 의사들의 진료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반발하고 있으나,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표준진료지침을 적용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의 개정안에서도 표준진료지침 제정은 관계 전문학회나 단체에 위탁하도록 명문화했기 때문에 과민반응이라는 의견이 많은 실정이다.

의료계 집단행동의 배경과 이유: 유도된 집단행동?

의료계의 반발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은 의료계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왜 현재와 같은 집단행동에 나서게 되었을까? 의료계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몇 가지 짐작 가능한 이유는 있다.

첫째, 현행 의료체계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의료법 개정안을 계기로 표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의료계의 분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형병원들의 병상 신증설이 가속화되고, 의료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 수와 환자 일인당 수입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료환경 변화에 발 빠른 대응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의료기관도 일부 존재하지만, 이런 경우는 전체 의료기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경쟁적 의료환경에서 초래된 의료계의 분화는 상당수 의사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과 위기의식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반발이 의원급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개원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정황적 근거이다.


둘째, 의료계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역동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정치화, 조직화되고 있다. 의료계의 일부는 뉴라이트운동과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왜곡된 정치의식을 의료계 내부로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온건파에 비해 강경파가 더 강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은 어떤 조직을 막론하고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의 의사결정 과정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의료법 개정 논의에 의료계가 참여하면서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인 점이나 의료전문지의 보도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둘러싼 의료계 내부의 입장 차이 등은 이런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다.

그러나 현행 의료체계에 대한 의료계의 누적된 불만이나 의료계 내부의 복잡한 역관계와 같은 잠재적 요인만으로 의료계 집단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 속이 부글부글 끓더라도 이것이 구체적 행동으로 표출되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법 개정안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부 당국에 의해 ‘유도된 집단행동’이라는 일각의 해석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료계가 문제 삼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집단행동을 불사할 만큼 절박한 사안들이 아닐뿐더러 의료계 스스로도 불리한 여론을 인식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논의를 통해 절충할 수 있는 여지도 존재했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의료계를 강하게 압박하고 밀어붙이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의료계로 하여금 집단행동을 하게끔 유도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의료법 개정안 처리에 관한 한 보건복지부는 상당한 실리를 챙기고 있다. 첫째는 국회의 지지를 획득한 점이다. 애초 국회에서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의 복잡한 정치권 상황, 그리고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각계의 이견 표출 등으로 인해 의료법 개정안에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인 분위기가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이런 분위기를 일소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실제로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다수의 의원들이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 있게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 달라는 주문을 쏟아냈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오히려 그들이 반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힘을 실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여타의 문제제기를 차단하거나 세간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지게 하는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다. 이번 의료법 개정 실무회의에 시민사회단체대표로 참여한 경제정의실천연합 신현호 변호사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 대해 그 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 왔다. 그러나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의 갈등으로 대립 전선이 형성되면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는 마땅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 장관 개인적으로는 이익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적인 정책을 소신 있게 추진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확보하게 된 점도 큰 이득으로 볼 수 있다.

의료법 개정안의 본질 : 경쟁적 의료환경의 심화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본질은 ‘영리’라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우리 나라 의료체계가 영리적으로 작동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 허용, 비전속 진료 허용,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 설립을 포함한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확대, 의료기관의 환자 유인․알선 행위 허용, 비급여 의료비용에 대한 할인 허용, 의료광고 규제 완화 등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포함된 상당수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한다.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낳으면서까지 정부가 이번 의료법 개정안을 강행하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비급여 의료비용 공개, 환자나 보호자에 대한 설명 의무 강화 등 환자의 알 권리와 편의를 고려한 항목도 없지는 않으나, 그 비중은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하다.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는 것은 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을 부추김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나머지 항목들도 하나같이 의료영역에 대한 자본 진출을 용이하게 하거나 영리를 위한 경쟁적 의료환경을 심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나라 의료는 이미 과열 경쟁 수준을 넘어 폭발 직전의 무한경쟁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병상을 대규모로 증설하고 있다. 200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에 단위 인구당 급성병상 수가 늘어난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선진국들이 급성병상 수를 줄이고 만성병상 수를 늘리는 마당에 오로지 우리 나라 만이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급자에 의해 서비스 이용이 좌지우지되는 의료의 특성상, 만들어진 병상은 환자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점이다. 감기나 배탈 환자를 놓고, 대학병원과 동네 의원이 경쟁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동네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비만치료, 성장호르몬, 태반주사, 건강보조식품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이런 경쟁적 의료환경은 의사들만 고달프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도 힘들게 만든다. 온통 영리 추구에 열을 올리는 의료기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의 건강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쟁적 의료환경 속에서 구조적으로 조장되는 과잉진료, 중복검사의 비용 부담도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선택권이 일부 개선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국민의 건강권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가려져 있는 의료법 개정안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진석 님은 서울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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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양석

    감사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