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HIV/AIDS 감염인 및 인권단체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감염인·인권단체들이 SBS에 대해 “감염인 인권을 침해하고, 에이즈확산을 부추겼다”며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SBS가 HIV감염인과 AIDS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보도를 내보냈다는 것.
SBS, “에이즈 양성반응 특급호텔 요리사, 8년 동안 주방장생활”
지난 13일 새벽 방송된 SBS ‘나이트라인’은 “국내 유명 호텔의 요리사로 일했던 외국인 A씨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드러났다”며 “해당 요리사가 지난달 몰래 출국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문제는 이 방송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외국인 노동자가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직업제한 등을 암묵적으로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어 “요리 과정에서 에이즈를 전염시킬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문제는 A씨의 국내 행적인데, 현행법으로는 A씨가 어떻게 감염됐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났는지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방송은 “일부 외국인 취업자의 경우 입국할 때 에이즈 검사를 받게 되어있지만, 요리사는 검사대상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요리사라는 직무 수행에 있어 감염사실이 문제될 게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감염된 외국인노동자의 ‘행적’을 현행법으로는 관리하지 못해 문제라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팀, “SBS기자에게 입국금지조치 얘기한 바 없다”
특히 이 방송에서 담당 기자는 질병관리본부에 대한 취재 내용을 전하며 “질병관리본부는 A씨에 대해 5년 동안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A씨가 감염된 접촉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본적인 차단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내에서 에이즈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에이즈결핵관리팀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관리팀에서는 해당 기자에게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고, 공식입장이 아니다”며 “HIV에 감염된 외국인들의 출입국 문제는 질병관리본부에 제재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SBS 해당 기자에게 우리 측 발언의 진위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으나, 정확히 질병관리본부 누가 말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SBS 측의 방송이 사실왜곡으로까지 논란이 번질 수 있는 대목이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상 체류 중인 외국인이 HIV에 감염되었을 경우 강제퇴거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그 권한이 질병관리본부에 있지는 않다.
감염인․인권단체, “SBS, 반인권·비과학적 보도 사과해라”
SBS의 방송이 나가자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등 감염인·인권·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HIV/AIDS 감염인인권증진을위한에이즈예방법대응공동행동(공동행동)이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SBS 측의 공식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나섰다.
공동행동은 14일 성명서를 통해 “SBS는 ‘외국인’ ‘요리사’가 ‘에이즈’에 걸린 것을 강조하며 선정적으로 뉴스를 보도하여 에이즈 감염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국민의 인식을 호도했다”며 “반인권적이고 비과학적인 보도에 대하여 SBS는 감염인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보도 내용을 정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SBS 방송에 대해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결핵과는 달리, 에이즈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감염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 보도는 특급호텔 주방장이었던 점을 강조하면서 외국인 요리사도 에이즈 검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조를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유엔에이즈 같은 국제기구도 동의 없는 에이즈 강제 검진을 오히려 에이즈 예방에 해롭다고 간주하여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BS 기자가 감기 걸리면, SBS 사장이 당연히 그 사실 알아야하나”
공동행동은 특히 SBS가 방송에서 요리사를 고용한 호텔 측이 해당 요리사의 감염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에 대해 “고용주는 피용자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 필요가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며 “직무 수행과 무관한 질병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SBS 기자가 감기나 당뇨병, 에이즈에 걸리면, SBS 사장은 그 사실을 ‘당연히’ 알아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특히 에이즈 감염인은 사회적 편견과 냉대로 고통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현행 에이즈 예방법조차 ‘비밀누설 금지’ 조항을 명문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SBS가 방송에서 해당 외국인의 ‘국내행적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현행법을 문제 삼은 부분에 대해서도 “마치 외국인 요리사의 행적을 다 알아야 에이즈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셈”이라며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정부가 감시해야 한다는 기존 에이즈 정책이 오히려 에이즈 감염인의 증가를 부추겼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충고했다.
SBS '나이트라인', '에이즈 요리사' 관련 보도 전문
앵커: 국내 유명 호텔의 요리사로 일했던 한 외국인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드러났군요.
기자: 네, 지난달 몰래 출국했습니다만 보건당국은 이 사람이 언제 감염됐는지 그리고 누구와 접촉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프랑스인 요리사 A씨가 지난달 갑자기 출국했습니다. 온 몸에 붉은색 반점이 나서 한 달 전 병원을 찾은 다음이었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프랑스 요리사는 지난 8년 동안 국내 특급호텔 3곳에서 주방장을 지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씨를 고용한 호텔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호텔간부: 충격적이에요. 저도 몰랐으니까, (건강검진표의)에이즈란에는 기록이 안 돼 있고...
기자: 전문가들은 일단 A씨가 요리 과정에서 에이즈를 전염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문제는 A씨의 국내 행적인데요.
현행법으로는 A씨가 어떻게 감염됐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났는지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부 외국인 취업자의 경우에는 입국할 때 에이즈 검사를 받게 돼있습니다. 하지만 요리사는 검사 대상이 아닙니다.
질병관리본부는 A씨에 대해 5년 동안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A씨가 감염된 접촉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본적인 차단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