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자유주의 넘는 싱크탱크 대안들

[좌담] 진보운동의 전망 모색과 07년 대선(3) - 싱크탱크

87년 체제, 진보논쟁, 대선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진보진영의 고민이 깊다. 누구도 ‘이 길이다’라는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다. 시대의 화두인 신자유주의도, 또 이를 넘어서기 위한 장도 중 하나의 관문인 올 대선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길이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이에 반해 제도정치권의 발걸음은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뉴스가 터져 나오고, 정치지형의 구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목소리에 눈도 깜짝하지 않던 이들이, 대선이 다가오자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나서고 있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대선은 제도정치지형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판도 흔들고 있다. 대선이라는 ‘빅이벤트’에 따라 한국사회 전체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공통분모인 반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길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이제는 나서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어떻게, 무엇에 방점을 찍으며, 누구와 함께 나서야 하는가에 있어서 망설여진다. 민중언론참세상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진보정치연구소, 진보전략회의(준) 등 진보진영의 세 싱크탱크 주체를 만나 이들의 고민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12일 민중언론참세상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에서는 87년 체제를 둘러싼 논의의 의미를 짚어보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성격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진보진영의 과제와 그 구체적 실천전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또 좌담참석자들은 올 대선에 있어서의 진보진영의 대응방향에 대한 제안도 내주었다. 이날 좌담에는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 홍석만 진보전략회의(준) 운영위원장이 참석했고, 유영주 민중언론참세상 편집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이정원 기자

87년 체제, 자본의 국가로부터의 독립 주목해야

우선 이날 참석자들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87년 체제 혹은 97년 체제 등의 논의와 관련한 견해를 교환했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87년 민주화 과정과 97년 금융위기를 지나 온 현재의 한국사회의 특징을 신자유주의체제로 요약했다. 이와 함께 참석자들은 87년 체제의 주요한 특징으로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덧붙여 기업자유화 조치 등 경제적 측면의 효과들을 주목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장은 87년 체제의 특징을 “87년 헌법이 주목하는 점은 기업이라는 주체를 헌법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라며 “과거 군사독재 하에서 기업의 권리와 경제는 국가에 종속되어 있었는데, 독점적 축적 과정 이후에 기업이 자율성들을 획득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형성되었던 체제를 신자유주의체제로 규정한 뒤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정치적 성격을 “정치적 관리형태로서 중간적 성격을 지니는 정부를 요구하는 한편, 노동에게는 일정정도 양보를 수용할 만한 주체들을 형성해나가는 형태를 취해왔다”고 밝혔다.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은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연속성을 강조한 뒤 “87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화와 동반해 재벌의 국가로부터의 독립, 즉 재벌의 경제적 장악력 강화”라는 주요특징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라는 것은 사실 한국의 재벌들이 국내산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1단계, 2단계에 불과했던 것”이라며 “빅딜을 통해서 결국은 삼성과 현대를 두 축으로 정리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97년 이후 국민들의 삶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굳이 표현하면, 이게 신자유주의인데 이것은 대단히 학문적 논의”라고 지적한 뒤 “굳이 체제 개념을 쓴다면 지금은 97년 체제가 맞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를 기준으로 학계에서 사회구조를 분석하는데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쓰는 게 부적절하다”며 “97년 이후 변화된 상황들이 한국사회 더 주요한 규정력을 가지고, 87년 체제로부터 이어져 온 규정력은 부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좌담 참석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과제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고, 이중 대안적 주체 형성의 문제는 공통적으로 강조점을 둔 부분이었다. 또 참석자들은 현재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추상적’ 혹은 ‘방어투쟁’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했으나, 이를 넘어서기 위한 그 구체적 실행전략에 있어서는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반신자유주의’, 구체적인 몇 가지 아젠다로 끌어내려야"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추상수준이 높은 ‘반신자유주의’를 구체적 수준에서 제기하고 의제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를 반대한다고 하는데, 한미FTA에 반대하는 교집합은 같지가 않다”며 “추상적 수준에서는 다 반대한다는데, 구체적 개념으로 들어가면 ‘잘 모르겠다’거나 피동적으로 수용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반신자유주의로 정치적 단결이 되어있냐’라고 할 때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반신자유주의가 공통분모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며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몇 가지 아젠다로 끌어내리면서, 반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연대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 이정원 기자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주체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은 뒤 “대중들을 결집하고 응집시킬 수 있는 담론과 쟁점들을 기동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조희연 교수의 ‘좌익민중주의’ 개념이나 차베스 사례들은 정치전략 측면에서 발전시켜야할 고민들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진보적 민중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의 사례에서와 같이 제도정당과 정부 외곽에 있는 대중들의 요구들을 급진적 담론과 쟁점으로 재구성해 사회변혁의 주된 동력으로 동원하는 이 ‘진보적 민중주의’가 하나의 정치 전략으로 적극 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의 주장이다.

“방어투쟁 넘어서 민영화 된 기업 사회화․국유화하는 투쟁 조직되어야”

홍석만 운영위원장은 앞선 참석자들이 제기한 의제의 구체화 전략에 동의를 표한 뒤 “사회운동 차원에서 보면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것이 대부분 방어투쟁이었다”며 “이제는 반대투쟁 혹은 피해를 부각시키는 투쟁과 결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어투쟁을 넘어서는 구체적 실천 전략의 하나로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민영화된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든 사회화든, 민영화가 아닌 형태로 되돌리는 투쟁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짚고, “결국은 생산수단 자체를 조절하고, 통제하고 더 나아가 대안적으로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문제까지 들어가야한다”며 보다 직접적인 방식의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서의 ‘사회화’ 혹은 ‘국유화’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는 재벌한테 빼앗아 올 필요도 있다”

장석준 연구기획구장은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내놓은 사회연대적국가전략의 보완적 방향을 제안하기도 했다. 장석준 연구기획국장도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중간적인 대안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에 대한 통제가 중요하다”며 “전략이나 현실 정치에서 의제형성 차원에서 우리가 공세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던 초국적 자본에 대한 통제를 과감히 얘기해야 한다”고 홍석만 운영위원장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자본에 대한 통제의 하위 부분으로서 민영화 기업에 대한 재국유화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말 경제가 이딴 식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재벌한테 빼앗아 올 필요도 있다”고 보다 급진화 된 형태의 경제 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보진영, 자본의 ‘진보식’ 동원 고민해야”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이정원 기자
홍석만 운영위원장과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이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에 무게를 뒀다면,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자본의 ‘진보식 동원’에 방점을 찍었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진보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자본 동원에 대한 아이디어가 약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생산관계나 생산력까지 포함해서 노동을 움직이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실제로 진보가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집권적 마인드를 가지고 사고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자본에 대한 동원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스운 사례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98년에 금모으기 운동해서 조 단위 돈을 모은다”며 “한국은 재정이 아니고도 굉장히 많은 구조에서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이 잠재력의 동원방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자본동원과 관련된 구체적 예로 ‘공공펀드의 조성’을 들었다. 그는 “진보가 생각하는 복지나 사회서비스 아젠다를 위해 공공펀드를 얼마든지 조성할 수 있다”며 “진보가 진보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본을 진보식으로 동원하는 방법에 대한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지 국가재정에 대해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선, ‘최적강령’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 커”

한편, 이날 참석자들은 다가오는 대선 시기의 진보진영의 과제와 대응 방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눴다.

장석준 연구기획구장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최적강령’ 개념을 끌어와 “대선시기에 궁극적 상에 대한 부분에서 합의가 안 되어있더라도,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것과 좀 더 구체적이고 대중들에게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는 수준의 최적강령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짚었다.

또 그는 “(민주노동당이) 올 대선과 내년 총선을 계기로 단순히 정해져 있는 합법적 정치일정에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조우하는 대중적 참여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런 것들을 가까운 정치일정 속에서 지혜와 상상력과 열기가 함께 가는 동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가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당은 Party,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제사회운동 세력이 잔치 벌여야”

  홍석만 진보전략회의(준) 운영위원장/ 이정원 기자
홍석만 운영위원장은 “이번 대선이 한국사회 진보진영의 재편에 대한 얼개를 짜내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강령으로 표현될지, 각자의 영역에서 요구들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형태의 과정들이 조직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있어 대선은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석만 운영위원장은 대선시기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관련해 “당이 파티(Party)다. 그러면 파티(잔치)를 해야 하는데, 자기 집안 잔치만 해서는 큰 판의 잔치를 만들 수는 없다”며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과 진보진영이 함께 대선국면을 돌파하고, 일종의 잔치를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얘기되는 민중경선제나 국민경선제는 사실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마치 줄 세우기나 득표 전략으로 전락된 느낌이고, 이런 의미에서의 민중경선이라는 것은 경계해봐야 한다”고 현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내부에서 진행 중인 민중경선제 논의에는 다소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좌파후보 필요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실체화 되어야"

한편, 현재 노동자의힘의 중앙집행위원이기도 한 홍석만 운영위원장은 이날 “좌파진영에서도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아닌, 좀 더 자기의 요구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노동자민중후보도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운동과정의 특정 시점에서 사고할 수도 있겠다”며 좌파진영의 독자후보론의 운을 떼기도 했다. 그는 “아직 의견 수준이고, 실물적인 운동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며 호흡을 조절하면서도, “민주노동당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당이나, 노동자의힘이나, 현장의 운동세력들, 사회운동진영의 운동단위들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런 단위들이 함께 결합되어서 대선의 지형을 왼쪽으로 계속 끌고나가는 역할들을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좌파진영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에 대해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은 “민주노동당 왼쪽에 좌파 의견 분포가 존재하고, 오른쪽에도 대중적 의견분포가 존재한다”며 “이런 부분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체화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부분들이 실체화되어서 대중적 토론과 결합되어진 진지한 정치협상은 대중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되는 게 민주노동당이 활성화되는데도 긍정적 역할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