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대연합, "지금 뿐이다" vs "몰아칠 일 아니다"

민주노총 정치위, ‘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 토론회 개최

진보대연합은 득표를 위한 술수냐,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발로냐.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진보대연합과 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방안을 모색하는 ‘민주노총 대선방침 토론회’를 열었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장, 김정훈 미래구상 전략기획단 간사, 박성인 노동자의힘 대선기획팀장, 최광은 한국사회당 정책실장, 김인식 다함께 중앙위원이 토론자로 참가하고,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이 세운 ‘진보진영 단일후보’ 대선방침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정치위원회는 같은 날 열린 제3차 정치위원회의에서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정치투쟁 △2007년 대선승리를 위한 진보대연합과 진보진영단일후보 추진을 골자로 하는 ‘2007년 민주노총 대선방침’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토론회는 참가자들 간 기존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민주노동당, 미래구상, 다함께는 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진보대연합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노동자의힘과 한국사회당은 진보대연합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밝혔지만, 회의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진보대연합, 반대 중심 아닌 내용 담보되어야”

토론회는 참석한 각 정당·단체의 입장을 돌아가며 듣는 것으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발언을 시작한 최광은 한국사회당 정책실장은 “올해 대선에서 진보진영 재편에 동의하는 세력과 폭넓게 연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면서도 “진보진영 재편에 동의하는 세력이란 민족민주(NL)운동의 전선체를 지향하는 한국진보연대가 진보진영의 미래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최광은 정책실장은 “최근 진보대연합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선거연합”이라고 꼬집으며 “진보대연합이 득표력 제고를 위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정치과정이 되려면, 어떤 것에 대한 반대 중심이 아니라 진보의 개념과 진보적 전략과 비전에 대해 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관련해 최광은 정책실장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에 대해 열어놓고 논의해야 (진보대연합 등이)논리적으로 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성인 노동자의힘 대선기획팀장은 “민중경선 결합 여부 등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을 방침”이나, “진보진영 후보단일화 논의에 앞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와 한국진보연대 출범에 대한 평가를 전제하지 않으면 특정 목적을 위해 대선방침이 활용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한다는 정치방침이 정당과 대중조직 간 구조를 폐쇄화시켜 “서로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이 박성인 대선기획팀장의 지적이다. 또 한국진보연대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조직 간 정치적 입장차를 무시하고 출범을 강행해 분열을 초래한 점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보진영 단결이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박성인 대선기획팀장은 진보진영 단결의 ‘내용적 강화’를 위해 △한미FTA 투쟁 등 반신자유주의투쟁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반자본운동’ 관점에서의 정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린 시간이 없다”

최규엽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장은 “진보진영 단결은 과거 투쟁에 대한 평가와 분석 과정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지금은 정세 관련 선거공학적 이야기를 하겠다. 우린 시간이 없다”는 발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현재 정치구도를 수구보수, 중도보수, 진보로 구분한 최규엽 집권전략위원장은 “진짜 민주주의 세력은 진보”임을 강조했다. 이어 “진보진영이 이번 기회에 차이를 극복하고 후보전술로 담합해 나가면 의외의 성과를 이끌어내 대선을 우리가 주도할 수도 있다”면서 “(선거연합에서) 미래구상 쪽에 기대를 크게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훈 미래구상 전략기획단 간사는 현재의 정치구도를 진보, 보수, 수구로 구분하며 “이번 선거에서 (진보대연정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 그대로 지금의 구도가 굳어지고 결국 일본처럼 극도의 정치적 보수화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열린우리당의 해체 과정에서 중도보수가 대세가 되는 것을 막고 보다 진보적으로 변화될 수 있게 견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주노동당에서 열린우리당 내부의 그 어떤 경계선까지 전반적 통합이 진보세력의 통합”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간사는 진보진영 선거연합과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하고 △한미FTA 반대 △대북 평화정책 △3불정책 등을 선거연합의 정책적 원칙으로 제시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민주노총이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성과가 없는 이유는 제도정치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며 “사회운동 판단의 기준은 가치지만 정치운동 판단의 기준은 국민의 선택이다. 정치운동을 하려면 순수성 포기를 전제로 하고 국민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인식 다함께 중앙위원은 ‘선거연합’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에 개혁을 기대했다가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을 진보진영에 붙들어 매기 위해 어떤 전술과 방침을 내놓을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김인식 중앙위원은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반대 △전쟁 반대와 한반도 평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변종 등 주류정치 일부가 아닌 세력들이라는 선거연합 원칙을 제시하며 “이 기준에 부합하는 기존 정치인은 민주노동당 의원 9명과 임종인 의원뿐이다. 이런 원칙을 내놓으면 선거연합이 (여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냐는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 무엇에) 반대는 선거 연합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며 “무엇을 원한다는 것 중심으로 연합을 결성하면 모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반대 입장을 기초로 연합을 결성하고 그 틀에서 한국사회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 김인식 중앙위원의 입장이다.

  현장대장정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를 방문해 "한미FTA 반대 단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미FTA 끝장투쟁보다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복원해 권력과 자본에 당당히 맞서고 새로운 비전을 구축할 때까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업계획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미래구상·다함께 “선거연합”

질의 순서에서는 각 정당·단체 간 입장 차이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민주노동당, 미래구상, 다함께는 올해 대선에서 선거연합을 실현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선거연합 찬성 진영은 후보단일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규엽 집권전략위원장과 김인식 중앙위원은 사견임을 전제하고 각각 50% 여론조사, 50% 선거인단 조직과 여론조사를 거론했다.

미래구상은 정당 등록을 하지 않으면 경선을 할 수 없는 현행법상, 여론조사를 현실적 방안으로 정했다. 김정훈 간사는 “각 정당·단체가 독자후보를 만들어 8월경 후보 연석회의와 같은 선거연합을 구축해 10월경 단일후보를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구상은 후보 지지 방식에 대해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강의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래구상은 진보대연합에 대해 민주노동당, 다함께와 일정한 거리를 뒀다. 김정훈 간사는 “진보대연합 구축에 대해 미래구상이 엄청나게 부각되는데 우린 힘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우리 안에서 뭉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노무현정권의 실패로 인해 정치적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진보로 끌어올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개혁진영의 포섭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자의힘과 한국사회당은 선거연합 주장 측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며, 사실상 선거연합 참가를 유보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박성인 대선기획팀장은 “차이를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열우당의 위기를 어떻게 진보가 메울까’라는 정치적 필요성에 기초한다면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김인식 중앙위원에 대해 “뜬구름 잡듯이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판단하면 안 된다”고 쏘아붙였다.

박성인 대선기획팀장은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 철회하고 모든 정치세력에 열어놓을 수 있나, 한국진보연대에 대해 반성적 평가하면서 그 전제 하에서 다 같이 연합하자 할 수 있나”고 반문하며 “이는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누적된 근거이며, 이런 지점들이 명쾌하게 밝혀질 때 진보진영 단결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구상에 대해서는 “시민운동 진영에서 세력화되어가는 방식과 노동자민중이 세력화되는 방식은 다르다”며 “인지도는 언론보도를 얼마나 타느냐는 여론전인데, (제도정치권의) 인지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민중의 세력화를 기대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지금 운동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향후 10년 운동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당장 대선도 중요하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향후 10년을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가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박성인 대선기획팀장은 “선거가 급박한데 뭐하느냐고 몰아치지 말아달라. 노동자의힘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지켜봐주길 바라며 우리도 고민하겠다”고 당부했다.

최광은 정책실장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들의 대선목표를 보면 대선에서 진보의 파이 크기를 늘리자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데, 득표 1~2% 올리는게 과연 진보진영의 급박한 과제인가”라고 반문하며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이 조급증에 사로잡혀 있는데, 현재는 집권을 노리고 단일후보 선출을 논할 조건이 아니다. 진보진영 총단결보다 다양한 입장 간 논의가 이루어지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최광은 정책실장은 “한국사회당이 지향하는 진보진영 재편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연대, 평화주의, 여성주의 가치 중심으로 진보를 새롭게 구성하는 동의세력을 모아내는 것”이라며 “대중적인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세적 가치와 지향을 중심으로 진보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