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외면하는 개헌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9) - 여성주의와 헌법

여성주의에게 헌법의 의미

여성주의가 법에 대해 갖는 인상은 양면적이다. 법은 사회변화의 중요한 장치임에 틀림없고 여성주의의 많은 주장들 역시 법에 반영되는 과정을 거치고는 있지만 동시에 법은 종종 객관성이나 진실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실은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구성하며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로 개정 방향을 앞세운 그간의 헌법담론들은 마치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작동되어 왔다. 그렇지만 헌법은 우리네 삶의 기본적 가치를 반영하기에, 과연 헌법이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 사회 구성원인 여성을 알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은 여성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헌법은 1948.7.17. 제정시부터 성 평등, 여성의 근로 보호, 혼인의 보호 등의 조항을 담고 있었고, 1987.10.29. 제9차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그에 여성복지조항과 모성보호조항을 추가했다. 그렇지만 헌법의 적용과정에서 여성을 온전히 참여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예컨대 헌법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 ·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에 따라 ‘범죄피해자구조법’이 마련되어 있지만 여성이 주로 겪는 범죄피해는 거의 구조대상범죄로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의도적인 여성배제가 의심되는 헌법담론도 있다. 그 중에서도 혐의가 짙은 것은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인데, 민주사회에서의 그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동등하게 발언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 관계로, 여성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또 동조 제4항에서 “언론 ·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 ·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성비하적인 성적 표현물로 인해 여성이 입는 피해는 아직 본격적으로 해악으로 검토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근래 현행헌법 하에서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의 의의가 강조되면서 동 기본권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 할 것이다. 이로써, 동성동본금혼제의 위헌성(헌법재판소 1997.7.16. 95헌가6-13)과 성희롱의 불법성(대법원 1998.2.10. 95다39533)이 천명될 수 있었고,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헌법재판소 2005.2.3. 2001헌가9-15, 2004헌가5)의 경우에도 동 조문은 성평등권 및 혼인과 가족생활의 평등권과 더불어 근거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그에서 도출한 생명권으로써 낙태의 범죄화를 정당화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원용됨으로써, 동 조항을 근거로 해야 할 여성의 총체적인 몸의 재생산권은 여지없이 저버리는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꾸준한 헌법적 비호 아래 가부장적 혼인과 가족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헌법조문에서 천명하고는 있지만 황혼이혼에 대해 간간이 이어지는 법적 저항이나 이혼사유의 가부장적 적용, 간통죄에 대한 합헌판단(2001.10.25. 2000헌바60) 등을 보면 ‘혼인과 가족의 성립과 유지’쪽에 실은 법적 무게중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현실적으로는 가족의 모습이 급격하게 다양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가정’이라는 구호로 핏줄과 이성애를 전제로 하는 가족상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것은 시민으로 성장하는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형태의 가족을 앞으로도 활용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헌법은, 기본이념과 기본적인 근거조항 뒤에 숨어서, 실제적인 여성의 모습을 인식하고 문제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종종 인색하다. 예컨대 헌법 제8조 제2항은 “정당은 그 목적 ·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관리규정들은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는 아직 부실하며, 여성의 공무담임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 조치제도도 부분적으로만 시행되었을 뿐이어서 여성의 저대표성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다양한 공간에서 빚어지는 각종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 역시 헌법이 손놓고 있는 부분이다. 성폭력특별법이나 가정폭력특별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적용상․해석상에 있어 그와 같은 폭력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시민권 전반을 위협하는 것임은 충분히 인식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엄연히 여성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지만 형사절차에 한정된 신체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협소한 규정과 이해는 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제한된 자원으로 말미암아 헌법규정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많은데, 헌법논의는 흔히 이것도 슬쩍 비껴간다. 예컨대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5조는 남녀고용평등법이란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성별 직종분리와 취업차별을 일상적으로 겪는 여성들에게는 다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인간다운 생활권을 규정하면서 특히 여성의 복지를 강조하고 있는 헌법조문 역시 빈곤의 여성화라는 현실 앞에 공허하게 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헌법은 젠더를 모른다

헌법은, 여성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데 덧붙여, 사회에서의 남녀관계, 즉 젠더에 대해서도 여전히 생소해 하는 것 같다. 젠더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의 서투름은 성차별 관련 규정의 운용에서부터 엿보인다. 즉 헌법은 평등권에 대해 제헌헌법 이래로 지금까지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성별’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무엇이 성별에 따른 차별이고 무엇이 아닌지는 결국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성고정관념적인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간접차별이라고 할 만한 제대군인 가산점제에 대해 차별성이 확인되기도 했지만(헌재 1999. 12. 23. 98헌바33 ; 98헌마363), 이제 성차별 여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 즉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우대 · 배제 ·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및 성희롱행위(동법 제2조 제4호)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차별 판단의 기준인 ‘합리성’이라는 것이 다분히 막연하거니와 실은 여성의 삶은 알지 못한 채 휘둘러진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일반직 직원의 정년을 58세로 규정하면서 거의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화교환직렬 직원만은 정년을 53세로 규정하여 5년간의 정년차등을 둔 것에 대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본 것(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13589 판결)이나 부부사원을 대상으로 한 정리해고시 대부분 여성쪽이 명예퇴직한 것에 대해 자발적인 사직으로만 본 것(대법원 2002.11.8. 2002다35379) 등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헌법을 바란다

삶을 비루하게 만드는 폭력과 억압, 두려움과 공포의 문화에 헌법으로서 단호히 저항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일진대, 그러기 위해서라도 헌법이 우리네 삶의 자주 어긋나고 복잡다단한 그러한 총체적인 모습을 알기를 원한다. 특히 헌법은 이제라도 여성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나아가 말해지지 못한 목소리도 가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무엇보다도 헌법이 다양한 차이를 보듬어 안고, 그에 규칙을 재정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각기 다른 저마다의 삶이 좀더 자율적일 수 있도록 북돋워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헌법을 두고 저마다 한마디씩 얘기하며 논쟁하는 재미, 성장하는 헌법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만나게 되는 재미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의 것과 다른 세상, 다른 인간을 꿈꾸고 욕심내지 않으면 그런 헌법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덧붙이는 말

오정진 님은 부산대 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