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초노령연금법 '거부권' 카드 왜 꺼내나?

[배경과 전망] 기초노령연금법 거부권 행사 검토

국회의원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 국회를 통과한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이 국회로 다시 돌아갈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초노령연금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요구를 할 것을 신중하게 검토해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라고 6일 밝혔다. 이로써 국민연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울며 겨자먹기’로 국민연금법에 끼워 넣은 기초노령연금법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일견 예상된 부분이기도 했다. 당초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기초노령연금법 제정과 국민연금법 개정 작업을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패키지’로 묶어 추진했다. 정부는 연금사각지대해소와 재정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기초노령연금법 제정과 국민연금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실상 방점은 재정안정화에 찍혀있었다. 핵심은 사각지대해소가 아닌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이었던 것.

그런데 기초노령연금법은 다분히 한나라당의 ‘파격적인’ 기초연금제 도입 주장을 무마시키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한나라당은 당초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20%에 해당하는 기초연금(약 월 32만 원)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현실 가능성 없는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지만, ‘노인표’와 ‘사각지대해소’라는 명분을 한나라당에게 훌러덩 넘겨버릴 수만은 없었다.

결국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를 무마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울며 겨자먹기’로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을 국민연금법과 짝으로 묶어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의 기초노령연금법은 내년부터 65세 노인 하위 60%에게 월 8만9천원(급여율 5%)을 지급하는 안이다.

한덕수, “기초노령연금법 하나만으로는 재정에 미치는 영향 너무 커”

지난 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이 기초노령연금법을 찬성 254표로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또 다른 ‘노인법’ 중 하나인 노인장기요양보험법도 이날 국회를 통과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도 255표를 얻었다.

반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당면 목표였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부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당일 참여연대 등이 제안한 수정안을 수용하며, ‘연금연합’을 결성해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했던 것. 결국 본회의 표결에서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찬성 123표, 반대 124표, 기권 23표로 부결되었다. 정파를 떠나 누구도 대선을 앞두고 ‘노인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정치권 스스로가 보여준 결과였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정안정화를 위한 국민연금 개혁은 물 건너가고, 재정지출 부담만 가중된 것.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됨으로써 그들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결과를 얻은 셈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6일 열린 총리실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초노령연금법 하나만 가지고 우리가 운영을 한다고 했을 때는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며 “전체적인 연금제도의 재정에 대한 압박은 굉장히 커질 것”이라며 곤혹스런 정부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결국 정부의 기초노령연금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움직임은 애초 의도했던 국민연금법 개정을 못할 바에야 부담을 가중시키는 기초노령연금법을 털어내자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유시민, “약사발은 엎고, 사탕만 먹어버린 형국”

한편, 기초노령연금법안은 통과되고, 그 짝인 국민연금법만 좌초되자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재정경제부 등 정부는 정치권을 맹성토했다. 특히 주무부처의 수장으로 취임 이후 국민연금법 개혁에 ‘올인’ 해 온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분노는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법 표결에서 기권한 의원 중 14명이 열린우리당과 최근까지 한솥밥을 먹던 통합신당모임 소속 의원들이었다. 일각에서는 평소 유시민 장관과 각을 세워온 이들이 유 장관에 대한 '거부'의 표현으로 기권했다는 해석도 제기되었다. 흔한 말로 ‘유시민 물 먹이기’라는 얘기다.

유시민 장관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6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중요한 법(국민연금법)이 처리되는데 일부라도 방해가 된 것 같아서 굉장히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수긍했다.

유시민 장관은 이어 “원칙적인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내가 걸림돌이 되어서 이 중요한 법률(국민연금법) 개정이 어렵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직 계속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겠가”라고 거취 문제까지도 열어 놓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에 대한 ‘거부감’ 지적에는 일단 몸을 낮췄지만, 유시민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해 장관직을 걸고 배수진을 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이날 유시민 장관은 “국민연금법 개정이 굉장히 입에 쓰기 때문에 일종에 사탕(기초노령연금법)하고 같이 놓은 것”이라며 “상에 약사발은 엎어버리고 사탕만 먹어버린 형국”이라고 국민연금법 개정을 부결시킨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노 대통령 거부권 행사, ‘약’ 주어 담고 ‘혹’ 뗄 수 있을까?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약사발’을 엎은 정치권에게 사탕을 뱉어내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법에 대해 최종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에 국회 재석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법이 통과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연금연합’을 지속하고, 통합신당모임이 현재와 같은 스탠스를 유지한다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와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초노령연금법이 아닌 국민연금법이다. 국회에서 기초노령연금법이 또 다시 통과되더라도 크게 밑질 것 없는 장사라는 얘기다. 어찌되었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정치권은 당분간 국민연금법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또 한번의 베팅 기회를 잡는 셈이다. ‘노인표를 의식해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시켰다’는 여론도 정치권에 부담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다시 제출한다면, 반드시 승산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한덕수 총리는 이날 “정당간의 이견 때문에 결국 (국민연금법 개정이) 부결 됐다”며 “정부로서는 국회와 협의해서 이 국민연금법이 반드시 원활히 입법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또 다시 국회에 제출할 의사를 피력했다.

거부권 행사라는 정부의 회심의 카드가 엎어진 ‘약’을 다시 ‘사발’에 주어 담고, ‘혹’을 떼어낼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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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 노무현 , 한덕수 , 유시민 , 기초노령연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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