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운동진영의 대표적인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가 동성애자와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소수자를 ‘극단적 이기주의’, ‘종교의 포화 상태’ 등과 동일선상에 있는 ‘사회문제’로 묘사하며,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해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예상된다.


범민련, “동성애.외국인노동자, 민족문화전통 홀대, 자주적이지 못해 심각해져”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진로> 3월호에는 조직위원회 명의로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범민련은 이 글에서 서구 실용주의 사상을 비판하며, 그 여파로 “이남사회에는 갈수록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범민련은 ‘사회문제’의 예를 “외국인노동자 문제, 국제결혼, 영어만능적 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문화의 침투 등”이라고 적시한 뒤 이는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고 밝혔다.

범민련은 이어 “이 문제들은 유심히 살펴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와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며 “유형은 달라도 결국은 이남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오고 그것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속에서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의진로>, “편집 의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같은 글이 알려지자 성적소수자 단체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지난 4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민족의진로> 측에 해당 글에서 제기된 주장의 근거를 묻는 공문을 보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공문을 통해 <민족의진로> 측에 해당 글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이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 ‘민족문화전통 홀대’ 등으로 발생한 부정적 의미의 ‘사회문제’ 중 하나로 언급된 이유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민족의진로> 측은 지난 달 31일 답변서를 동성애자인권연대에 보내왔다. 최동진 교육위원장은 “<민족의진로> 편집국은 글의 청탁과 투고에 대해 글쓴이의 생각과 글을 존중한다”며 “따라서 <민족의진로>에는 편집 의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보내온 글을 살려 싣고 있다”고 해당 글이 <민족의진로> 편집방침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최동진 교육위원장은 공문에서 “이러한 (동성애 등의) 문제들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의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고 글쓴이는 분석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입장은 글쓴이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분석이나 입장이 다를 수 있으나 소수자문제를 특별히 떼어서 언급한 것이 아니다”고 짧게 답변했다.

동인연, "성적소수자 자본주의 찌꺼기처럼 들어왔다는 무식하고, 천박한 주장“

범민련 측의 이 같은 답변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 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지난 1일 “진보적 운동에 있어 성소수자, 사회적소수자들의 운동을 간과하고, 잘못된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며 <민족의진로> 측에 글의 해당 부분 삭제와 글을 작성한 범민련 측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글쓴이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해당 글은) 복잡해지는 사회현상으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차별한다거나 등으로 읽혀지지 않고 사회적소수자 문제가 90년대를 기점으로 실용주의적 철학의 침습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범민련 측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등을 부정적 의미의 사회문제로 묘사하고 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90년대 이후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 다양한 곳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며 “이것은 긍정적인 평가 지점이지, 이를 민족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고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장병권 사무국장은 특히 “역사 이래 동성을 사랑하는 현상은 언제나 존재해왔다”며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본주의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소수자들이 마치 자본주의의 찌꺼기처럼 들어왔다는 식의 범민련의 주장은 무식하고, 천박한 얘기”라고 범민련 측을 맹비난했다.

이주노조, “인종차별적 주장, ‘민족 최고’라는 발상 위험하다”

이번 글이 알려지자 이주노동자진영 역시 술렁이고 있다. 마숨 이주노조 사무국장은 개인의견임을 전제한 뒤 범민련 측 글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주장이다. 무척 화가 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이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민족이 최고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며 “범민련 측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족의진로>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 중

....이남사회에는 갈수록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문제, 국제결혼, 영어만능적 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유심히 살펴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와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은 달라도 결국은 이남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오고 그것이 또한 확대재생산되는 구조속에서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