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이랜드 조합원들에게 보낸 글

  어제 밤 조합원들은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

농성장에 경찰의 군화발 소리가 나기 직전, 조합원들은 모여서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어제(19일) 밤 조합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글을 보내주셨다며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여덟 시간을 제 자리에 멈춰선 채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그들은 꽃보다 아름다운가"라는 첫 구절에 조합원들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경고방송이 이어지고, 전투경찰의 목소리가 입구를 통해 새어 들어오던 어제 밤 농성장을 지키던 조합원들은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늘 오전 그녀들은 "아들 같아서 안타깝다"라고 말하던 전투경찰들 손에 끌려 경찰서로 갔다. 그녀들은 "반드시 다시 모여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글의 전문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하루 여덟 시간을 제 자리에 멈춰선 채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하루에도 산더미 같은 물건을 팔아치우면서도 막상 제 것으로는
단 하루도 지닐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온종일을 서서 일하다 퉁퉁 부은 다리로 어기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아픈 새끼를 집에 두고 와서도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사만 팔천 사백 이십 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십니까?”
“비밀번호 눌러주시겠습니까?”“고객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컨베어 벨트를 타고 오는 부품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을 향해
하루 수천 번도 더 웃어야하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고객님의 부름이라면 득달같이 달려가지만
집에선 새끼도 서방도 만사가 귀찮기만 한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그렇게 일하고 한 달 80만원을 받았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1년 계약이 6개월로 6개월이 3개월로 3개월이 0개월로
그런 계약서를 쓰면서도 붙어있기만을 바랬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주저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었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이정원 기자

그러나 지금 그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너펄거리는 반바지를 입고 딸딸이를 끌고 매장 바닥을 휩쓸고 다니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매장 바닥에 김칫국물을 흘려가며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꽃보다 아름답다.
거짓웃음 대신 난생처음 투쟁가요를 부르고 팔뚝질을 해대는
그들은 세상 어떤 꽃보다 화려하다.

  이정원 기자

성경엔 노조가 없다는 자본가에게 성경엔 비정규직도 없다고
자본의 허위와 오만을 통렬하게 까발리며 싸우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도 값지다.

한 달 160만원과 8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말로는 '하나'임을 떠들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정규직의 알량한 위선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온몸으로 증언하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귀하다.

  이정원 기자

이 싸움은 단지 이랜드 홈에버의 싸움이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왔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부르짖어왔던
우리들의 의지와 양심을 시험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향하는 우리의 마음 하나하나, 발길 하나하나가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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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 김진숙 ,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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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타까움

    결국 노동계 우두머리들의 입지를 위해 우리의 선한 노동자들만 또 희생 되었네요. 안타깝습니다. 정말 그들을 위한 길은 이런 식의 투쟁이 아닐진데. 결국 진만 빼고 이렇게 고생한 이들에 대한 보상은 과연 누가 해 줄 수 있을까요. 이번 일로 노동계 우두머리들은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그렇겠지요. 나중에 유사한 일이 터지면 또 노동자들을 위하는 척 쇼만 하다 근사한 선전문구를 날려주면서 선한 노동자들을 호도하고. 결국에 민노총 지도부도 자기네들 배만 채우기 급급하고 부패로 얼룩진 우두머리들은 진정 노동자들을 위한 길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이들을 자신의 입지를 위한 도구로 이용할 뿐.

  • 거참

    누가 우두머리인가요? 누가 선한 노동자인가요? 누가 누굴 이용했다는 건가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은 딴데가서 하십쇼~

  • 허허

    거참 / 무리하게 진압해놓고 비난여론 거세지니까 알바들 풀어서 이런 식으로 여론호도하는 듯 합니다. 신경쓰지 마삼.ㅎㅎ

  • 프락치색출 보안수사대

    경찰프락치, 이랜드 알바 프락치들...

    모두 철저히 발본색원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