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정책에 사형선고를

재앙과 비극을 부르는 파병정책

반복되는 비극

2004년 자이툰 부대 파병을 앞두고 발생한 김선일 씨 피랍 사태 당시 사람들은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여겨졌던 이라크 전쟁은 순식간에 우리네 안방으로 들어왔고, 그 충격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목숨이 소중하듯 나의 목숨도 소중하다. 노무현 대통령, 제발 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김선일 씨의 피맺힌 호소는 ‘파병 강행’이라는 정부 방침 앞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테러집단과 대화는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여론을 외면하고 파병을 강행했고 우리는 김선일 씨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비탄과 슬픔, 분노와 저항이 온 땅을 덮었다.

김선일 씨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로 그냥 보낼 수 없어서 광화문으로, 성남 비행장으로 다니면서 파병을 중단하라고 목놓아 외쳤다. 그러나 전경버스로 가로막힌 공항 너머 활주로에서 대한항공 전세기는 사막용 전투복을 입은 자이툰 부대원들을 싣고 무심하게 이룩해 버렸다.

‘올 것이 오고야 만’ 사태는 계속 발생했다. 자이툰 부대를 향한 로켓포 공격, 아프간에서 자살폭탄 공격에 의한 윤장호 병장의 사망, 자이툰 부대 내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오종수 중위, 그리고 지금의 아프간 피랍사태까지 기억하기에도 많은 비극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한 오무전기 노동자 피습, 종교인 납치와 석방 사건 등도 추가된다.

물론 ‘한국 국적’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만 언급한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간, 레바논에서 죽어간 무수한 생명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도대체 왜 이러한 비극이 계속 발생하는가? 단언컨대 그것은 군사세계화에 따른 미국의 전쟁 때문이고 여기에 참여하는 한국의 파병정책 때문이다.


파병, 파병, 파병...

노무현 정권은 말 그대로 거침없이 파병을 밀어붙였다. ‘국익’과 ‘한미동맹’, ‘평화재건’을 가장 큰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삼았다. 처음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둥, 아랍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파병이 필요하고 기업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둥 앞뒤도 맞지 않는 근거를 대고 여론몰이를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파병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기업들이 무슨 이익을 얻었는지 정부도 대답하지 못한다. 더욱이 전쟁으로 이라크, 아프간 민중을 학살하고 그에 파병한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추악한 ‘피 묻은 돈’일 뿐이다. 최근에는 이를 더욱 노골적으로 표방하기도 한다. 이라크 석유사업에 참여하여 이익을 보기 위해 파병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나라 민중의 생존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하이에나처럼 먹을 것만 찾아 혈안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 사회기반 시설이 붕괴되고 공적 서비스가 중단되었으면 전쟁과 점령부터 중단시키고 군대를 철수해야 평화건이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미국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세계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것이 파병의 실제 이유였다고 본다. 거기에 더하여, 한국 지배계급으로서도 갈수록 초민족화되는 한국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에서의 파병과 군사작전 능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략이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미국을 도우면 한국에도 이익이 된다’, ‘파병요청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식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정권은 파병의 근거로 한국이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평화를 지향한다’는 헌법 조항을 첫 번째 이유로 내세웠다.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것 자체가 아프간, 이라크, 레바논 파병을 제한하는 것일 텐데도 노무현 정권은 ‘대테러 전쟁’과 평화를 연결시키는 극도의 뻔뻔함을 보여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간 파병은 6번, 이라크 파병은 3번 연장되었고 레바논 파병이 시작되었다. 평화를 파괴하고 아프간과 이라크 땅을 짓밟아 황폐화시키고 민중을 나락에 빠뜨린 전쟁에 파병한 것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남는 장사”라고 했으니, 그는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일부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블랙홀같은 파병정책에 사형선고를

거듭 말하지만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는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다. 이러한 납치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앞세운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 정부의 파병정책이다. 반전평화 운동이 끊임없이 경고해 왔듯이 전쟁과 파병은 이러한 사태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킨다. 네트워크화된 저항, 종교적 신념에 기반하고 있는 전사들과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다국적군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미국과 나토, 한국군을 비롯하여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4만 3천여 명의 외국군,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15만의 미군과 외국군이 저항세력이나 무장단체들을 장악하여 사태를 주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쟁과 파병은 이라크와 아프간, 레바논에 자유도 민주주의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오히려 광범위한 국토 파괴와 민중생활 피폐화를 가져왔을 뿐이다.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의·다산 부대는 의료와 구호 지원을 위한 비전투부대며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돕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한국군 파병부대는 파병 당시부터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지원하는 부대였으며 이는 파병동의안에도 명시되어 있다. 아프간의 재건이 아니라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 지원을 위한 후방부대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세계화가 곳곳에서 불평등과 빈곤, 전쟁과 폭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되돌리는 것만이 무고한 민중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 침략과 전쟁, 점령과 파병을 중단하는 것만이 민중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노무현 정권의 막무가내 파병정책, 묻지마 파병을 이번에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은 아프간에서, 내일은 이라크에서, 또 레바논에서 비슷한 재앙과 비극이 다양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23명의 피랍된 한국인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그곳의 모든 민중의 생명과 평화, 생존의 권리를 위해서 이 블랙홀과도 같은 전쟁과 파병에 사형선고를 내려야 한다.
덧붙이는 말

정영섭님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운영위원이자,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태그

파병 , 아프간 , 철군 , 피랍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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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병반대국민행동

    긴급>7월 23일 무사귀환을 위한 즉각 철군 및 탈레반 수감자 석방 촉구 기자회견




    협상 시한이 24시간 연장됐지만, 피랍된 한국인 23명의 운명은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피랍된 한국인 23명의 무사 귀환을 위해 노무현 정부는 아프간 파병 한국군을 즉각 철군해야 합니다. 아울러 탈레반 측은 탈레반 수감자들과 피랍 한국인의 맞교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탈레반 수감자들의 석방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피랍 한국인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에 파병반대국민행동은 무사 귀환을 위한 미 대사관 앞 긴급 기자회견(광화문 KT 앞)을 개최합니다.
    취재를 요청합니다.

    <무사 귀환을 위한 즉각 철군 및 탈레반 수감자 석방 촉구 기자회견>

    일시: 7월 23일(월) 오후 1시 / 8시 : 촛불집회
    장소: 광화문 KT 앞
    주최: 파병반대국민행동


  • 고이달

    제목 꼭 이런 식으로 뽑아야 하나요? 현대적 좌파라면 당연히 사형제도 폐지에 힘쓸텐데.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반대와 사형선고와의 공존이라. 신경 좀 쓰자고요.

  • 정현길

    여러 인권단체들이 사형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걸 알지 않으세요?
    국회의원들을 정신병자다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걸까요?

  • 명랑

    내용은 당연히 동의하고 좋은데, 제목이 조금 걸리네요... 읽는 분들에게 확 다가오게 하시려고 하다보니 그러신 듯... 그렇다고 내용의 본질이 퇴색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쓰신 분께서 다른 의도는 전혀 없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 상황이 워낙 급박하니까요... 조금만 주의를 해주시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