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대접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고용허가제 3년의 진실](1) - 이주노동자, 40년 전의 권리와 자유

정부에서는 8월부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합동단속에 들어간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8월 17일이면 고용허가제 3년이 된다. 고용허가제 시행 3년이라는 시점과 집중단속이 8월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듯 하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고용허가제 3년을 맞아 고용허가제가 과연 이주노동자에게 '약'이 되고 있는지, '독'이 되고 있는지 그 진실을 따져본다.- [편집자 주]


지난 주말 센터를 찾는 이주민들과 함께 동해로 여름캠프를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늘을 찾아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점심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5-60대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늘을 찾아 우리들 주위에 앉았다.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스텝 명찰을 달고 있는 나를 보더니 대뜸 ‘많이 좋아졌지요?’라고 묻는다. ‘구경도 다니고 한국 온 게 얼마나 행운이야’라며 서로들 우리들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입 안에서 여러 말들이 맴돌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단한 이주노동을 벗어나 동해바다로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좋아 져야죠.’라고 얼버무리며 그냥 웃다 돌아섰다. 센터 후원회원들을 포함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던지는 질문이다. ‘이제 좀 좋아져 사람대접 받으며 일하는 거죠?’

대한민국의 거짓말

올 1월부터 산업연수제가 폐지되면서 외국인력정책은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됐다. 아직까지도 일원화 방침이 명확하지 않아 연수생 신분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업연수생과는 또 다른 규모가 큰 기업의 해외투자법인연수생 제도는 여전히 살아 가장 낮은 자리의 이주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다 제쳐두고 고용허가제로의 일원화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사람대접 받으며 노동하고 있는가? 과연 현대판 노예제도는 끝났는가?

40년 전에 만들어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8조는 ‘어느 누구도 노예상태에 놓여 지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매매는 금지된다. 어느 누구도 강제노동을 하도록 요구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규약 12조에서는 ‘합법적으로 어느 국가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영역 내에서 이동의 자유 및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며 자유이동을 보장한다. 한국은 이 규약에 1990년에 가입 비준했다. 국내법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스스로 비준한 규약을 지키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니다’이다. 물론 한국정부는 근로기준법 제 6조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기타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잘 지키고 있다고 국제사회에 호도하고 있다. 거짓말이다.

[출처: 이정원 기자]

[출처: 이정원 기자]

고용허가제는 강제노동을 강제하는 제도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 25조 1항은 ‘외국인근로자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정상적인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곤란한 때에는 노동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직업안정기관에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며 외부적 조건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을 세 번까지 보장하고 있다’는 말은 왜곡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없다. 단, 1년 단위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권리는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자유의지에 관한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당한 현실을 가능케 하는 것은 ‘폭력적인 강제단속추방’과 ‘돈’이다.

현대판 노예제도의 연속

고용허가제 시행 2년을 맞아 지난해 이주인권연대에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업연수생제도에서 만연했던 송출비리가 고용허가제에서도 여전히 만연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지 노동자 10년의 월급에 맞먹는 과도한 송출비용은 한국에서의 어지간한 인권침해와 억압을 견딜 것을 강요한다. 정치적 및 시민적 규약 11조는 ‘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않는다.’고 권리보호를 규정해놓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금지된 불평등한 계약에 지쳐 쓰러지는 순간 구금의 대상이 된다. 해명의 기회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구금되어 강제출국 되면 평생 송출비용이 삶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가난한 고향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노예이기를 감수하고 만다.

구금을 위한 단속은 법보다 폭력적이다. 같은 규약 9조는 ‘어느 누구도 법률로 정한 이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그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대한민국도 영장주의를 따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기서도 예외다. 공장 무단침입은 기본이고, 다만 서로의 감으로 짐작할 뿐 신분을 밝히지도,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코앞에 가스총을 겨누며 우선 잡고 본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권리인 생명권과 신체의 안전권은 안중에 없다. 건물에서 뛰어 내려 내장이 파열되어 죽던, 철창에 갇혀 ‘문을 열라’며 소리치다 죽어가건 폭력적 단속추방은 계속된다.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강제단속추방은 이주노동자들을 일상적인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부당한 현실에서의 탈출은 추방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저 뒤로 밀린다. 노예이기를! 감수하고 만다.

홈에버에 가지 마세요!

캠프를 가 있는 동안 공단 근처 홈에버에서 버스 두 대를 대놓고 대대적인 단속을 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에도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공단 근처 대형마트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는 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단속 많으니까 홈에버에 가지 말자’는 이야기를 함께 한 사람들과 나눴다. 울지도 웃을 수도 없는 참담한 연대다. 밑바닥 연대로부터 희망의 싹은 틔워진다. 지원단체 한국인 실무자의 목소리가 아닌 주체들의 함성이 폭력적 제도와 공권력에 맞서, 최소한 이 정도의 인권은 지키자며 40년 전에 합의했던 선언들이 현실로 되는 날, 그런 아름다운 밤이 하루라도 어서 오기를.
덧붙이는 말

이상재님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홍보교육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

이주노동자 , 고용허가제 , 단속 , 추방 , 노동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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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건설현장 감리제도....감리원 교체시 감점제도가 실행 중 입니다. 이게 바로 현대판 노예제도 아닐까요? 헌법 제15조: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르 가진다. 그런데 건설현장 감리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노예로 전락했나요? 사표내고 이직해서 교체하면, P.Q감점제도 만들어 감리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감리원은 모두 노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