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NLL 의제 힘겨루기 돌입

[남북정상회담 진단](4) - 북방한계선(NLL)

북핵 폐기냐, 평화체제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의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 등 세 개의 큰 의제와 각 의제의 세부 쟁점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최우선 과제가 북핵 폐기임을 분명히 하고 노무현정부가 대선개입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다.

강제섭 대표최고위원은 10일 “최근 한미 정상이 만나서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을 폐기한다면 북한과 평화조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북핵 폐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반드시 6자회담보다 진전된 북핵 폐기를 이끌어내야 하고, 아울러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 임기 말 성과에 연연해서 북핵이 폐기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평화협정이나 NLL 재설정 등을 논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보다 평화체제와 경협 문제에 무게를 두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체적으로 북핵, 북핵 자꾸 지금도 소리 높이는 것은 그건 좀 정략적인 의미를 담을 가능성이...(있다고) 평가합니다"라고 말하고 "이미 6자회담 사이에서 풀려가고 있는데 자꾸 ‘김정일 위원장 만나 가지고 북핵 얘기하라’고 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가서 싸움하고 오라는 뜻 아닙니까?"라며 북핵을 강조하는 것은 시빗거리를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에 대해 실질적으로 가속화하고 증진하는 것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북방한계선(NLL) 정상회담 의제 삼을 지 논란

이런 가운데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ed Line) 문제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의제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방부 관계자가 유엔사 측에 NLL 변경문제 거론에 대비해서 유엔사의 입장을 타진한 것과 관련,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3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대로 NLL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에 대비한 준비활동으로 보인다"며 "NLL 문제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에 따르면, 이미 김대중정권 때 임동원 국정원장이 NLL 포기를 추진했는데 당시 청와대는 여론에 밀려서 포기했다고 알려져 있고, 서해교전 당시 응전을 포기한 것도 이미 내부적으로 약속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본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해서 ‘NLL 포기’ 조건으로 ‘평화선언’을 협상중인 것으로 인식하고, NLL을 포기하면 평화선언을 하고, 평화선언이 되면 NLL 지역을 평화지역으로 선포하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NLL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수행단 13명에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포함됐다. 군 통수권자(대통령)와 국방부 장관이 동시에 국내를 비우는 일은 예사롭지 않은데, 국방부 장관이 공식 수행단으로 포함된 자체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변경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13일 통외통위에서 "정상회담에서 모든 문제를 다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핵 문제도 물론 논의할 것이며, (NLL 문제에 대해서는) 정식 과제로 될지 알 수 없다"며 명시적인 입장 표명을 미뤘다. 그러나 문재인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방한계선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해 어떤 수준이 되든 다룰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NLL 왜 논란이 되나

북방한계선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NLL을 비롯한 군사적 신뢰의 진전 없이 평화체제와 남북경협 문제를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 내용에 북방한계선 문제를 비롯한 군사 조치가 포함되는 데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다루지 않을 경우 남북 사이 중요한 현안을 피해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NLL 문제는 국제법적 효력을 따진다 하더라도 북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식이 될 경우 남의 양보를 전제로 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영토 문제와 두 차례 서해교전의 사상자 문제 등 국민 정서를 자극해 정국을 유리하게 이끄려는 보수세력의 역공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12일 민변,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이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조성렬 국가안보연구소 소장이 "(NLL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적으로 안보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거꾸로 야당에 의해 호재가 될 수 도 있다"고 지적한 점도 그렇다. 조성렬 소장은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평화정책 차원에서 세부적인 논의보다는 92년 합의서에 기초한 추가적인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에) 정치적 결정을 하게 되면 이번 대선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해교전에 따른 국민정서를 고려해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북은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데 있어 군사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공세적인 입장을 놓치지 않아왔다. 북 해군사령부는 두 차례 서해교전과 사상자 발생에도 불구하고 3차 서해교전의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3대 장벽 문제와 함께 해상경계선 재설정 요구를 통해 북의 방식대로 정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맥락으로 풀이된다.

  북방한계선과 북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1985년 남광호.제2동주호가, 1987년 1월에는 제27호 동진호가 백령도 근처에서 나포된 바 있다. 1999년 북 경비정이 월선해 연평해전이 벌어진 바 있고, 2002년 6월에는 서해교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6월 꽃게잡이 철이 되면 월선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NLL 문제 해결은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에 근거해 서해상 군사경계선을 확정함으로써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 쌍방이 정치적 수준에서 평화적 해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군사회담에서도 북은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고, 남은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해 직접적인 논의를 피하면서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식의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7월 24-26일 열린 제6차 장성급회담에서도 서해상 군사적 무력 충돌 방지, 공동어로 실현, 경협과 교류에 대한 군사적 보장 문제를 중점 협의했지만 북은 NLL을 불법, 무법의 선으로 규정,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데 대해 이장희 평화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무조건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남북문제의 해결에 큰 걸림돌이 될 경우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나 남북국방장관급회담으로 넘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장희 대표는 해마다 6월이면 꽃게잡이를 위한 월선이 반복돼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상시적인만큼 6.15공동선언 4항의 남북경협 분야의 실천 차원에서도 공동어로협정을 통해 풀어가되 남북정상회담에서 여타 문제를 푸는데 NLL 문제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유영재 평통사 팀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영재 팀장은 "NLL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남북간 신뢰 구축이 안 되고 있다"고 말하고 "남북 대결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국방부에 맡겨두어서는 안 되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다루자는 것은 회피하고 미루자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유영재 팀장은 NLL 문제를 다루는 여부가 노무현정부가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르는 시금석이라 강조하고, 노무현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의 의지가 있다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NLL 문제 논란 계속될듯

NLL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약 한 달 후인 8월 30일 국제연합군총사령관 클라크가 서해에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전협정 당시 동해는 육상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쌍방이 수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북이 12해리를 주장하고 유엔사가 3해리를 영해 범위로 주장해, 1968년 1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쌍방이 12해리를 인정하고 있다.

서해상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협상 당사자 사이에 해상 군사분계선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서해 연안 섬에 대한 군사통제 문제만 규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령도 등 서해5도는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 하에 두고, 기타 모든 섬은 조선인민총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의 군사통제 하에 둔다는 합의였다.

그리고 정전협정에서 "본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쌍방이 공동으로 접수하는 수정 및 증보 또는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하여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갖는다"는 부칙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장경욱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은 "상호 합의를 거치지 않고 1950년대에 유엔군 총사령관이 해군 및 항공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한정짓기 위해 일방적으로 설정한 북방한계선이나 1999년 북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해상군사분계선 및 서해5도 통항질서는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해석했다.

장경욱 위원장은 또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NLL을 서해상 군사분계선으로서 남북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정상회담에서의 논의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자세"라고 비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폐기를 강조하는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과 평화체제 및 남북경협을 강조하는 개혁세력 사이의 긴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NLL 문제를 회담 의제로 삼을 것인지, 삼는다면 어떤 입장으로 어떤 수준에서 다룰 것인지 여부를 놓고 본격적인 정치세력간 힘겨루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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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달

    잘 정리된 기사 고맙습니다.궁금한 점이 있는데, 이북이 nll을 실효적 지배로 보고 있는지 입니다. 실효적 지배가 미치는 nll 관련 지역을 국제법상 절차에 하자가 있어 이북이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라면, 같은 논리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물론 이북에서 독도 문제에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이북은, 그동안의 선전선동과는 다르게,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국제법적으로 풀어갈 의지가 없는 걸로 볼 수 있다, 이런 얘기도 가능한 것인지. 이 기회에 이북이 하고 있는 국제법에 터잡은 주장을 검증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큰 그림을 보여줄테니까요.

  • 고이달

    독도 문제에 관한 내용을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국제법상 절차의 하자가 있어 nll 관련 지역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반대해석에 의해 일응 국제법상 절차의 하차가 없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인정하여야 하는 게 아닌가 입니다. 정상회담에서 국제법 해석에 대한 태도, 뭐 이런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일본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을 거구요.

  • 고이달

    정상회담 관련해서 헌법적 이슈도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영토조항의 문제도 있지만, 이번 사안이 대통령의 행위로 교섭될 수 있는 사안인지, 교섭될 수 있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사안인지 등등, 이 가운데 좌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은 있는지, 이런 진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