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군부 내 갈등 조절 안 돼”

[인터뷰] 버마 국민운동촉진위원회 뚜라 버마행동 대표

26일 버마 양곤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최소 5명이 사망한 데 이어, 27일에도 정부의 진압과정에서 외신 기자를 포함해 10여 명이 사망했다. 유가 인상으로 촉발된 승려들의 시위는 이제 시민과 시위대, 승려의 구분이 없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내 버마 국민운동 촉진위원회 지도부로 활동하고 있는 뚜라 버마행동 대표를 만나 현재 상황과 전망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상황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제도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등 버마 내부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실제로 본국에 있는 활동가들과 통화해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은 어떤가.

이틀 전까지는 본국 대표자, 직접 활동하는 사람들과 연락이 되었는데, 그 사람들과 집전화는 물론 핸드폰 통화가 되지 않는 상태다. 일반 시민들이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사망자수가 이미 20명을 넘었다. 부상자는 200-300명 정도 되고, 잡혀간 사람들 수도 300-500여 명 되는 것 같다.

희생자나 연행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은 승려와 학생들이다. 그러나 어제 같은 경우 유치원 같은 곳에 총을 쏘기도 해 유치원에서 아이들도 총을 맞은 것 같다. 애를 데리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총을 맞았고,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 있는 곳에도 차를 들이박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있다.

승려와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많이 다쳤다. 스님을 보호하려는 사람들도 총 맞고 맞아 죽고, 부상자도 엄청나게 많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스님들의 시위였다. 그러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님들은 피를 흘리지 않는 변화를 희망했다. 20년 동안 싸워왔다. 피흘리자고 하면 내전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평화를 원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 시작하자마자 국민들이 나서면 정부에서 폭력진압을 할 수 있으니까, 스님들이 자비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하면서 행진한 것이다.

시민들이 같이 하려고 했지만, 자신들이 정부에게 국민들을 대신해서 의견을 표명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하려 했다. 그런데 그 스님들이 머리통이 깨지고 하면서 시민들이 결합했다.

지금은 시민들과 시위대간의 차이가 없어졌다. 시민들이 집회에 나서고 있다.

승려들이 나섰다는 것은 버마 사회에서 큰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고 알고 있다.

버마 에서는 스님들이 아주 존경을 받는 존재이다. 머리통을 깨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파콕쿠 지역에 있는 스님들의 시위를 군부가 진압했다. 스님들은 진압을 받자마자 승려연합을 만들어 군부 관련자들을 신자에서 빼 버렸다. 이건 종교적으로 심각한 벌이다. 군부 관련자들이 주는 공양을 받지 않고, 전국에 있는 스님들이 시위를 나가 사과를 요구했다. 날짜를 주었지만, 군부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날짜는.

17일이다. 이미 지났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유가인상이었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처음에는 유가인상, 천연가스비 인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민주화, 변화하고자 하는 것이 원인이다. 휘발유 가격을 올리거나 물가를 올린 것은 하나의 계기이다. 20년 동안 참아오고, 탄압 받아오고, 고통스럽게 참아왔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계기를 통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길에 나서도록 만들어왔던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진 것이 이번 사태다.

연료비 인상을 계기일 뿐이라는 얘기라는 것인가. 그럼 88년 민주화 시위의 연장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석유값을 인상하기 전에 작년 올해 초부터 이정도 시기에 변화나 어떤 사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88세대의 학생 지도자들은 2년 전부터 석방되기 시작해서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왔다. 국민들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동을 해 왔다. 화요일마다 가까운 절에서 기도회를 하거나 연설 또는 행동을 했다. 누가 잡혀가도 겁먹지 않고, 법적으로 대응했다. 하얀 셔츠를 전국적으로 입거나... 국민들을 훈련시키고 준비해왔다.

버마 군부는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풀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들도 갈 데까지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스님들이 평화롭게 시위를 하면서 경고를 한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안에 군부는 사과를 했어야 했고, 소수민족과 아웅산 수치와 대화를 해서 변화를 했어야 한다.

그 날짜까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승려와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으로 나가겠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약속한 날짜는 지났고, 군부는 통행금지와 5명 이상의 회합을 금지했다. 군부가 탄압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악화되었다. 물러설 수밖에 없는데, 쉽게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고, 갈 때까지 가자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군부 안에서도 갈등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25일 군부 일부가 국민을 보호하는 연합군을 발족했다. '군대 지도자는 독재자가 아니라 아웅산 장군이다. 아웅산 장군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만들었다. 국민을 죽이는 명령에 군인들이 따르지 말라, 필요하면 국민들 앞에 나서서 싸우자'이렇게 이야기 했다. 군 내부는 상당이 혼란스럽다. 게다가 행정부에 있는 장관들과 지역의 부대장들간의 갈등도 있다. 내부에서도 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군부는 가족들을 싱가포르로 보냈다. 자신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족과 재산을 외부로 보냈다는 이야기다.

버마 내에서는 현재 사태를 대응하기 위한 기구들이 꾸려져 있나

승려연합체가 꾸려져 있고, 연예인들, 시인, 변호사 등이 모여 전국 운동본부를 꾸리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예정인가

버마 사람들의 연합체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기도회, 연설회, 촛불 시위등을 준비하고 있다. 10월 2일에는 대사관 앞 기자회견, 저녁에는 사진전과 촛불시위를 할 생각이다.

한국의 많은 단체들에서도 이 문제에 함께 해야 한다는 단체들이 많다. 버마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고, 중단하라는 요구, 활동가들에 대한 지원 한국 사회의 대대적인 관심을 모아내도록 준비하고 있다.

지금 이 시기만큼 중요한 때가 없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적극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버마 민주화 시위 일지

8월 15일 버마 정부, 천연가스 등 유류비 최대 5배 인상 발표

8월 19일 양곤 지역에서 시민 항의 시위 시작

8월 21일 시위주도한 민주화 운동가 13명 체포

9월 5일 북부 파콕쿠 지역에서 승려들의 시위 무력 진압

9월 17일 승려들의 무력진압에 대한 사과 요구 거부

9월 22일 승려 1000여명이 아웅산 수치 여사 자택 앞까지 행진

9월 23일 양곤에서 2만 명 시위

9월 24일 양곤에서 10만 명 시위

9월 26일 정부, 양곤과 만달레이 지역에 통금선포하고 군 병력 투입
시위진압과정에서 최소한 5명 사망, 100여명 부상

9월 27일 양곤 10만 명 시위, 정부 진압과정에서 10여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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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 버마 , 뚜라 , 버마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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