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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간담회 |
한미 LGBT 단체들의 공동의 목표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미 LGBT 공동체의 변화와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한미FTA 반대운동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둣돌,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FIERCE(주4)는 한인으로서, 진보적 LGBT 그룹들로서 한미FTA 원정 투쟁단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한 단체들이다. 뉴욕 방문을 처음 기획했을 때 FTA 협상장소 앞에서 한미 LGBT들의 공동행동을 벌이기로 했을 만큼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LGBT 운동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다. 더 나아가 국제적인 LGBT 공동행동과 연대의 틀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뉴욕과 LGBT
LGBT 운동의 역사에서 뉴욕은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미국에서 형성된 다양한 운동의 조류들이 유럽과 아시아에 수출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활동이슈들의 출발점이라고 불린다. 실제 한국 LGBT 운동의 주요 이슈들과 자료발굴의 초점도 미국 단체들이 먼저 시작한 이슈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뉴욕은 1969년 경찰폭력에 맞서 LGBT들이 항쟁을 벌인 스톤월 바(Stonewall Inn)가 위치한 곳으로 유명하다. 스톤월 항쟁은 GLF(게이해방전선)와 같이 급진적인 LGBT운동이 등장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70~80년대 다양한 운동조류들이 형성되게 함과 동시에 현재까지 전 세계 LGBT들의 자긍심 행진 개최의 의의가 되고 있다. 80년대 레이건 정부 등장과 함께 에이즈 위기가 있었을 당시에도 뉴욕은 GMHC(주5), 액트업과 같이 LGBT를 중심으로 한 에이즈 운동단체가 우선적으로 등장한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도 뉴욕 단체들이 한결같이 ‘뉴욕이 그나마 낳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미국에서 영향력 있고 유명한 LGBT 단체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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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톤월 바(Stonewall Inn) |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국제적 교류의 초점이 된 단체는 운동의 경험이 20년 이상 된 단체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에게서 운동의 소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자료들을 얻을 수는 있었다. 오히려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나, FIERCE, QEJ(주6)와 같이 백인 중심으로 유지되어 오던 미국 LGBT 운동에서 10년 전부터 분리된 단체들이었다.
솔직히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다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LGBT 운동 내에서조차 인종에 따른 갈등과 분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활동가들은 10년 전 백인-유색인종이 함께하는 LGBT 단체에서 함께 활동했으나 이슈마다 백인게이위주로 운영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분리했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분리될 당시 백인 LGBT 활동가들은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분리하려는 활동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QEJ의 경우도 LGBT 운동 내에서 유색인종들의 빈곤과 홈리스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해 2000년 분리해 나온 단체이다.
유색인종에 의해, 유색인종 LGBT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은 한결같이 이민자권리,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폭력 이슈를 가장 주요 활동으로 두었다. 유색인종 LGBT들이 파티를 하고 집에 가는 중에 폭력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로 데려다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교육하는 활동은 미국사회에서 그들의 위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스톤월 항쟁 40년. 뉴욕의 크리스토퍼街에 위치한 작은 스톤월 바는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창문에는 당시 LGBT들이 투쟁한 사진과 신문이 전시되어 있고 티셔츠, 버튼 등 기념품을 팔고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운동의 성과로 인해 뉴욕거리엔 Gay Street 라는 간판이 달려 있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레인보우 깃발을 밖으로 내 건 Bar, Sexshop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80년대 에이즈 위기를 경험하고 직접행동을 조직한 LGBT들은 이제 뉴욕市 관계자들과 함께 에이즈 정책을 결정하는데 참여하고 있다. 운동의 역사가 뉴욕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유색인종과 백인 LGBT들은 거주하는 지역조차 확연히 나뉘어져 있을 만큼 많은 갈등을 안고 있고 유색인종 LGBT들에 대한 폭력 또한 더욱 강화되고 있다.
한국 LGBT 운동의 새로운 도전
2004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려는 운동 이후 한국 LGBT 운동은 다양한 운동과제들이 표출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청소년 이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들어 교사, 상담원 등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인권교육 관련 자료들이 발간되었고 최근에는 청소년 LGBT 인권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LGBT들이 에이즈 환자, 의료인,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에이즈 예방법 개정 운동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중요했지만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한 군대 내 남성동성애자 인권 문제와 성전환자 성별정정 법안 상정 이슈도 현재 LGBT 운동의 핵심코드이지 않나 싶다. 빈곤과 LGBT, 가족구성권 활동 및 LGBT 가족모임을 구성하려는 활동 역시 새롭게 제기되면서 한국의 LGBT운동 이슈는 봇물 터지 듯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다.
단체입장과 역량에 따라 집중하는 이슈는 다르겠지만 모두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중요한 이슈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뉴욕교류의 경험을 조금 덧붙여 보고자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이 30년 정도 앞서있는 미국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한국 LGBT 이슈는 여러 면에서 많은 부분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형성되어 있는 한국 LGBT 이슈 모두 채 5년이 되지 않았고 시작할 때부터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이슈가 외면받지 않고 꾸준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대열을 확대시키는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적극성, 직접조직, 찾아가기
'당신의 권리를 알고 계십시오'
청소년 활동을 주로 하는 FIERCE의 경우 청소년 LGBT 공동체(크리스토퍼가 부두가)에 직접 찾아가 ‘당신의 권리를 알고 계십시오’라는 유인물을 직접 배포하거나 집회 역시 그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하고 있었다. 최근 비디오 행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게이 프라이드 행진 시 경찰 폭력이 있을 우려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청소년들이 직접 촬영하는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GLSEN(주7)에서 눈여겨 볼 프로그램은 학교 내에서 Gay-Straight Allians 라는 모임이 형성될 수 있도록 청소년 LGBT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트랜스 정의(Trans justice)팀은 트랜스 이슈에 대해 교육이 필요할 것 같으면 먼저 단체나 기관(LGBT 단체 포함)에 전화를 걸어 교육을 제안하거나 공동행동이 잡히기라도 하면 커뮤니티를 찾아가 홍보엽서를 나눠주는 등 찾아다니며 직접 조직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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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SEN과 함께한 간담회 |
다양한 사회이슈! LGBT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우리가 만난 모든 유색인종 LGBT단체들은 경찰폭력 문제를 비롯해 이민자 권리 이슈에 적극 연대하고 있었다. 그들이 한미FTA 운동에 함께 했었던 이유도 단지 외국인 활동가들을 미국 시민권자들이 보호해야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뉴욕 교류 프로그램 당시 ‘신자유주의 정책과 LGBT 공동체’에서 공동발제를 한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인도 출신의 레즈비언 활동가 트리쉴라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는 미국 내에서도 이민자 권리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민자를 범죄화하고 추방하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2012년까지 서류가 미비한 이민자들을 모두 추방시키고자 ‘게임은 끝났다’라는 정책을 내기도 했고 이민자들이 일용직 노동만 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국내외 수많은 활동가들은 반전운동에 함께했다. 한국 역시 LGBT 단체, 공동체는 전쟁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온라인 배너를 걸거나 직접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집회에 참석했다.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 역시 전쟁이 LGBT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LGBT들이 왜 전쟁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팜플렛을 만들어 뿌리는 행동을 벌였다고 했다. 트리쉴라와 함께한 토론회에서 나는 이랜드 투쟁을 예로 들며 한국의 LGBT운동이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바로 게이이기 이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비정규직 악법과 같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지금의 모습이 LGBT와 같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보호와 에이즈 위기라는 공포심을 앞세우며 동성애를 마치 비정상, 변태로 매도하는 정부의 주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도 기업주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것이 바로 LGBT 노동자들이 이랜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이유라고. 다양한 사회이슈를 LGBT 시각으로 해석하고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LGBT에 대한 차별의 문제는 여타의 소수자 권리 이슈와 따로 떨어져 있는 이슈가 아니다.
뉴욕 LGBT 단체와의 짧은 시간 교류한 것을 두고 미국의 LGBT운동을 모두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유색인종 단체를 중심으로 만나고 온 터라 더욱 그렇다. 백인 LGBT 활동가들이 주로 결혼이나 호모포비아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유색인종 LGBT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오히려 실업, 경찰의 폭력, 이민정책이라며 분리적인 운동과제에 대해 들었을 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파생된 사회구조적 모순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한국에서는 지금 형성되어 있는 LGBT 이슈가 인종, 계급적으로 구분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어려웠다. 오드리 로드 프로젝트는 유색인종 단체 LGBT 그룹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면서 이민자의 신분, 성정체성, 나이 등의 문제를 엮어 함께 싸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한국 역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단편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 이슈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기로에 있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운동의 대열을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구체화된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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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니치에 위치한 미국 최초의 게이전용 서점 '오스카 와일드' |
신자유주의 정책 10년, 한국 LGBT 운동의 과제는
먼저 신자유주의의 이중성을 살펴보자. 1970년 말과 80년대 초 미국과 영국에서 태어나 자유화, 탈규제, 민영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는 세계차원의 경제 질서를 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세계가 하나임을 선포한다. 여기에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없다. 그로 인해 후진국에서는 외채상환, 기근, 난민, 학살, 질병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극심한 빈곤으로 인한 에이즈 문제로 국가 비상선포를 내리기도 한다. 복지국가가 그나마 구축해놓은 사회보장제도, 사회적 권리 등을 해체하기도 하며 과거 물과 같이 무료로 제공되던 서비스 자원도 상품으로 전환한다
반면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사회문화 영역에서는 예전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기보다 ‘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Bar를 중심으로 한 LGBT 문화 성장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긴장감이 형성된다. 지배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 가치, 전통, 생명존중, 가족중심 등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중 잣대를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 레이건 정부가 실업률 급상승, 베트남전의 실패 등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고 미국 내 에이즈 위기를 게이들에게 덧씌우려 했던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10년,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공공성과 노동시장을 파괴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복지정책도 안정화되지 못하고 불안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회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점차 노동하는 삶 그 자체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노동현장에서는 직원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고(공무원 퇴출제, 철도노동자 감시 프로그램 개발, 교사 교원평가제 등) 비정규보호법으로 인해 고용불안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당장 내일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위기가 온 것이다. 반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역시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80년대 에이즈 위기처럼 신자유주의 정책과 LGBT 공동체의 변화지점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더뎌 보이긴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논리로 ‘청소년 보호’와 ‘에이즈 위기’를 들 수 있다. 사회는 청소년들이 미성숙, 미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체제가 바라는데로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정보에 대해서는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된다. 性, 섹슈얼리티 논의는 청소년들이 절대 접근해서는 안되는 범위로 규정되어 있다. 2001년부터 청소년 보호 법률을 통해 동성애 웹 사이트를 검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게이 포털 사이트를 음란하다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폐쇄하는가 하면 등급제에 의해 동성애는 ‘퇴폐’라는 낙인이 찍혔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중심으로 삶이 형성되어지다보니 한국은 ‘내 자녀’에 대한 관심과 집중은 매우 크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는 청소년들이 동성애 웹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청소년을 통제하는 힘도 있었지만 성인, 특히 가족을 이루는 부모의 머릿속까지도 ‘동성애 사이트’가 마치 자신들의 자녀조차 동성애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노동자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성인 동성애자들도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이용하는 웹 사이트에 출입하는데 불편해 한다. 엄청난 효과가 아닐 수 없다.
성적으로 문란하면 생기는 전염병. 에이즈에 덧 씌어진 이 고유의 낙인은 1993년 성소수자 단체가 건설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 1997년 본격적으로 노골화되었다. 게이들이 이용하는 업소에 들어가 콘돔을 보여주며 도덕적인 공포심을 끊임없이 유발했다. 현재는 이런 도덕적 공포심을 유발한 바로 그 기관이 게이들을 대상으로 콘돔을 배포하거나 교육을 시키고 있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까지도 한국 정부의 에이즈 예방정책이 게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을 보면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위기가 도래할 때 80년대 미국처럼 게이들에게 에이즈 위기를 덧씌울까 심히 우려스럽다.
한국에서 진보적인 LGBT 운동이 시작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역사는 짧지만 다양한 사회운동과 함께 한 경험으로 인해 LGBT 운동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다양한 LGBT 이슈들이 등장하고 있다. LGBT들은 사회구성원 내에서 분명한 소수다. 하지만 소수라는 점만을 강조한다고 차별이 없어지고 권리가 자연스럽게 쟁취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식의 변화를 조금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LGBT로 살아가는 삶 전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레인보우 행동과 연대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지만 일방적인 강조와 강요로 이룰 수 없다. 그리고 파편화된 다양성이 아니라, 서로 억압의 기제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공동의 행동으로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LGBT 노동자, LGBT 청소년, LGBT 에이즈 감염인, LGBT 장애인,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트랜스젠더 등 이제는 다양하지만 사회적 위치가 낮은 성소수자의 모습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그(He)로 불리길 원합니까? 그녀(She)로 불리길 원합니까?'
뉴욕 교류 프로그램 당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을 뽑으라면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리를 보고 ‘그’로 불리길 원하는지, ‘그녀’로 불리길 원하는지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운동 내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본인 스스로 규정한 성별을 물어보는 것이 회의나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대한 예의라고 한다. LGBT들이 자신들의 운동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회운동 안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가능하다. 물론 영어에는 He, She와 같이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긴 하지만 정말 상징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상상해보자. 한국에서 누가 딱 봐도 남성다워 보이는 남성 활동가에게 그로 불리길 원하는지, 그녀로 불리길 원하는지 물어 본다면 모두 피식 웃어 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외모만을 보고 의례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는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를 뒤집는 말이다. 한국의 진보운동 내에서 이런 질문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기거나 심지어 불필요하게 여길 질 모른다. 아웃팅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뭍어나야 한다. 당장 처음이 어색하고 힘들지 몰라도 조심스럽게 시작해보자.
각주
1)LGBT는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줄임말로 성소수자로 표현하는 다른 용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지만 뉴욕활동가들의 경우 소수자의 의미가 강하게 들어간 표현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 LGBT로 통일하고자 한다.
2)오드리 로드 프로젝트는 백인 LGBT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해왔던 유색인종 LGBT들이 1997년 분리되어 건설한 단체로 흑인 레즈비언 활동가이고 시인인 오드리 로드 이름을 단체명에 사용했다.
3)다리 프로젝트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LGBT 공동체로 한인 LGBT들의 삶을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4)FIERCE(격렬한 : fabulous independent educated radicals for community empowerment)는 LGBT 리더십, 교육, 캠페인, 문화행동주의를 통해 유색인종 TLGBTSQQ (Transgender, Lesbian, Gay, bisexual, Two sprit, Queer, Questioning) 공동체의 힘을 건설하는 단체다. 여기서 Two sprit(두개의 영혼)는 쉽게 미국 원주민 사이 神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사람들이다.
5)GMHC(Gay Men Heath Crisis)는 81년에 설립된 가장 오래된 에이즈 단체이다. 뉴욕시와 함께 에이즈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지지망 구축, 정보제공 등의 활동을 하며 미국-태국 FTA와 관련해 태국 에이즈 활동가를 초청해 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6)QEJ (Queers for economic justice)는 ‘경제적 정의를 위한 퀴어’들로 빈곤과 LGBT 노숙자 이슈, 동성결혼 패러다임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
7)GLSEN은 Gay Lesbian Straight Education Network로 교육과 연구사업을 중심으로 학교 내 폭력를 중지하기 위해 ‘침묵의 날’을 시도하거나 학교 내 LGBT-이성애자 연합 모임을 지지, 지원을 하는 단체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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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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