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열어가자"

서울대 경제학부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봉정

"자본론 번역이 가장 큰 업적이었다. 이 세계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 서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22일 오후 5시 호암교수회관에서 가진 기념논문집 봉정식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세철 전 연세대 교수는 축사를 통해 "김수행 교수는 지금도 사회과학대학원을 통해서 우리 사회 맑스주의 연구자 뿐만 아니라 실천가를 키워내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서울대와의 인연이 오히려 잘 끊어졌다. 정성진 교수가 팔순 때 좋은 세상 보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나는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펼쳐놓았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20년 전 한신대에서 처음 워킹페이퍼를 만들고 한신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고 말하고, 87년 6월항쟁을 촉발한 교수선언의 기억을 회고했다. "1차선언은 대학 차원에서, 2차선언은 종합하는 형식이었는데 김수행 교수가 당시 1,2차 선언을 주도했고, 무언가 기여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수행 교수는 답사를 통해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통혁당 사건 당시 직장도 없을 때 변형윤 교수가 외환은행에 넣어줬고, 서울대 들어올 때는 학생들이 데모를 안 했으면 못 들어왔을 거라고. 건강하게 학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주변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며, 지금까지 자본론 변역을 가장 큰 업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봉정 행사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출판 경과를 보고했다. 이 책은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기 위해 16명의 연구자들이 쓴 연구논문을 묶은 것으로, 1부 사회주의 이론, 2부 사회주의 역사와 현실, 3부 서유럽 사민주의의 이론과 실제, 4부 새로운 사회를 위한 초석들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김수행 교수의 퇴임으로, 서울대에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의 대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와 우려된다. 김수행 교수는 내년 2월 퇴임하지만, 서울대는 후임 문제를 내년으로 미루어 놓고 있다.

김수행 교수는 1942년 10월 24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생,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한신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으며, 1989년 2월부터 서울대로 옮긴 이래 19년간 맑스주의, 공황론 등을 연구했다.

아래는 답사 전문이다.

저는 자본론의 번역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구조와 운동법칙을 해명한 책입니다. 자본주의는 여러 나라에서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윤을 증가시키려는 자본가들의 활동은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생산성의 향상, 노동강도의 강화, 산업재해의 증가, 노동자들의 해고, 노동조합의 무력화 등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은 독점체를 만들어 내고, 국가기구와 관료까지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봉사하는 도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은 세계를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선진국의 자본가들은 자기 나라 정보나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 각국 정부에게 시장의 개방, 무역과 외환거래 및 이본이동의 자유화를 요구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본의 국제화와 세계화는 옛날의 제국주의를 가리킬 뿐입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세계의 주민 모두의 복지를 균등하게 향싱시키려는 세계정부가 없고 국민국가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자본은 외국에 침투할 때 자국 정보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리하여 군사적 침략이 일어나고 세계적 규모의 빈부 격차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큰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오고 있습니다. 자연 파괴와 지구 온난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 규모의 빈곤과 실업, 빈부 격차, 인간성의 고갈, 계급과 나라 사이의 갈등과 투쟁, 끊임없는 금융공황 등이 재앙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을 조금만 제어하더라도 인류는 더욱 좋은 환경에서 더욱 나은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기 이전의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학교와 병원이 무료였고, 노후 연금이 노인들이 살기에 충분했으며, 서민과 실업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충분한 소득을 보조받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것은 각 나라와 세계 전체에서 복지제도의 큰 후퇴와 빈부 격차의 심화였습니다. 사실상 IT혁명과 기타의 과학기술혁명은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기술혁명의 이익을 몇몇의 거대자본가들이 사적 이윤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서민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고 있는 사적 이윤은 자기들의 노동의 열매도 아니며 자기들의 자본의 열매도 아닙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는 대규모의 이윤은 사실상 세계 각국의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가 창의와 피땀으로 창조한 부가가치일 뿐이며, 거대자본가들이 이용하는 자본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세계 각국의 여유자본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서민들은 세계의 노동자들과 세계의 여유자본이 창조한 부가가치를 자기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세계의 거대자본가들에 대한 투쟁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이 세계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 서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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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 자본주의 , 맑스주의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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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식에 조금 늦었는데 이렇게 기사를 통해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어서 좋군요. 고맙습니다.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