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제2007 관객심사단이 찍은 이 영화 '적의 사과'

[서독제]단편영화 '적의 사과'를 보고

지난 22일 서울독립영화제2007이 개막했다. '다른영화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서독제2007은 오는 30일까지 총 71편의 상영작이 관객을 만난다. 민중언론참세상에서는 보다 생생한 소식을 알리고자 서울독립영화제2007 기간동안 발간되는 웹데일리를 게재한다.-[편집자주]

[출처: 서울독립영화제2007]

<적의 사과>
이수진|2007|Fiction|35mm|Color|21min


먼지속의 사람들, 그들을 알아보려면 복장과 도구를 살펴봐야 한다. 어느 집회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투경찰과 일상복을 입은 시위대의 충돌, 영화<적의 사과>에서 적과 편은 명백하다. 잠깐, 명백한 것일까? 무엇이 명백한 것일까.

감독은 집단의 행동, 집단의 충돌 이라는 하나의 사과에서 작게 한입 베어, 그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과 한입속에 두 개인이 있다. 그들은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린다. 긴장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움이 존재한다. 그들은 확실히 그 미움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잡아서 때리거나, 잡히기 전에 도망가거나 뿐인 매뉴얼속에서 미움은 공포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나 서로 노려보며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분명히 미워하는 행동이다. 시민이 전투경찰의 헬멧, 하이바를 들고 있다. 전투경찰은 방패로 곧 시민을 찍을 기세다. 자신의 자유와 헬멧을 바꾸려던 시민의 작전은 맨홀 구멍속에 헬멧이 떨어지며 허탈하게 실패한다. 진퇴양난. 잠시 잠깐사이에 전투경찰이 시민을 제압하려다 시민의 팔이 부러지고, 전투경찰은 허벅지에 칼이 꽂힌다. 두사람의 성과는 그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 혹은 서로에게 상처를 받은것. 고통으로 미움에 정당성이 생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는, 너무나 답답해서 점점 웃겨지기까지 하는 상황은 낯설지가 않다. 영화<노맨스 랜드>에서 보스니아의 청년들이 그러했고, <웰컴투 동막골>의 남북군인들도 그러했다. 차라리 못본체 지나치면 아무도 안다칠 것을 관객은 알지만, 당사자들은 서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의 존재이유가 바로 서로에게 있기때문이다. 분단, 전쟁, 민족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버리고서도 여기 전투경찰과 시민의 대치 역시 바보같다. 그것이 전쟁이건 집회인건 그들의 상황은 진지하다. 생명혹은 생존권 이 걸려있는 상황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들에게는 명예와 명분도 있다. 너무도 진지한 이들은 점점 우스워 진다. 우스워지는 그들에게 집중할수록 적은 불분명해진다. 서로를 알면 알수록 적이 아니라 동병상련의 편이 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은 마주 서있다. 두사람이 마주 서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 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서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권리와 의무의 대결인가? 그들의 권리와 의무는 국가 혹은 사회와 관계 맺는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속에 보이지 않는 적은 어쩌면 바로 사회, 대한민국이다. 전경에게 헬멧과 방패를 쥐어준, 시민에게 붉은 손수건을 주고 노래를 가르켜 준것도 대한민국이다. 두사람의 대치 위로 기차가 빠르게 지나간다. 대한민국은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달리고 있을 뿐이다. 두사람은 싸움에 바빠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먼지바람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싸우고, 긴장하고, 헐뜯는 동안 뒤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지쳐 쓰러져 있다가 어느 순간 일어나니 우린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일까. 허벅지가 칼에 찔리고, 팔이 부러져서야 개인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아이는 오줌을 갈기며 해맑게 비웃는다.

대규모 집회가 있을때 티비, 인터넷뉴스에서는 폭력적인 시위대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러한 뉴스영상과 이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뉴스영상에서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을 거리로 내몬 국가의 태도와 입장은 늘 빠져있다. 더불어 언론속의 폭력에는 고통과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난 군중 혹은 비이성적이고 과격한 이익단체가 있을뿐이다. 영화속에서 명백한 것은 개인의 고통과 공포다. 고통과 공포는 폭력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폭력속에 지켜지는 권리도 폭력으로 대신되는 의무가 없는 데도 왜 우리는 멈출수 없을까? 기차가 조금 천천히 달렸으면 좋겠다. 적의 소리도 모습도 제대로 확인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적의 사과를 한입 베어무니 입이 참 시다. 침이 고여 마른 목이 잠시라도 축축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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