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주의 프레임에 갇힌 방송토론, 질문지부터 잘못됐다

[기고] 대선후보 문화정책 토론회 ‘된장 없는 된장찌개’

된장찌개를 끓이려면 당연하게도 된장이 필요하다. 거기에 감자를 송송 썰어 넣고 바지락조개와 갖은 양념을 넣으면 아마도 대부분 썩 괜찮은 맛을 낼 수 있다. 요리에 젬병인 사람도 된장만 그럴듯하다면야 된장찌개는 꽤 손쉽게 맛을 낼 수 있다. 그런데 된장 없이 된장찌개가 끓여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회위원회는 11일 교육·문화·여성 분야 주제로 두 번째 2007년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을 진행했는데, 이중 문화 분야 토론이 바로 된장 없이 이뤄진 토론이었다. 젠장.

‘세계화 시대의 문화정책’이란 주제를 가진 문화 분야에 선정된 질문은 딱 두 가지. “관광객 유치 전략은 무엇인가”와 “전통문화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였다. ‘세계화 시대의 문화정책’이란 제목부터 탐탁하지 않지만 여하간 문화는 삶의 방식, 의미 표상 및 교통의 매체라는 성격을 지니며, 예술정책을 비롯해서 문화유산, 문화복지, 미디어, 지역문화, 체육 등 다양한 정책들로 구성되고 공공부문과 산업을 재료로 국민의 행복이든 해방이든 문화적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 계획을 논의했어야 하는데, 방송토론은 딱 산업만을 준비해 놓고, 문화정책을 검증했으니 된장 없는 된장찌개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정권 내내 한류와 문화산업을 외쳐온 문화관광부 공무원이 질문지를 써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문화산업 프레임에 갇혀, 문화적 가치도 문화적 권리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토론이었다. 여하간 이번 방송토론 관전평을 써보자면, 우선 관광분야에 대해 이인제, 이회창, 정동영, 이명박 후보는 외국으로 나가는 관광객과 국내 관광객 규모에 대한 통계 공부는 많이 한 것 같지만 하나같이 관광산업 지원과 개발, 규제 해제를 외쳤다. 이인제 후보는 전남 J프로젝트, 제주도 사례를 얘기하며 인프라 지원과 관광업자들이 내야 하는 세금을 낮추겠다고 했고, 이회창 후보는 교통표지판을 중국어, 일어, 영어를 함께 써야 한다고 하며 골프장과 같은 복합관광시설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동영 후보는 규제도 풀고, 특혜까지도 고민한다며 제주도를 정말 특별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고, 이명박 후보는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특별한 조치를 내세우는 한편 세금 혜택과 레저와 스포츠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개발주의적 산업정책들은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관광정책이란 게 만들어진 이후부터 시종일관 추진돼 왔던 것일 뿐이다. 정부가 관광산업 발전을 운운하며 토건국가의 친구들과 함께 삽 들고 이땅저땅 막개발식 관광정책을 추진해왔지만 후보들이 하나같이 줄줄 외웠듯 외국관광객들이 과연 얼마나 늘었고 관광정책을 통해 이 땅 민중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올랐느냔 말이다. 지역문화의 획일화와 상업적 천막축제의 행렬, 공공적으로 운영되는 유스호스텔 같은 공공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현재 이들 후보들의 정책은 생태파괴를 부르는 그리고 관광자본만을 위한 정책으로 귀결될 뿐이다. 문국현 후보의 다문화, 다언어 정책 시행에 대한 이야기는 개발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가지지만 여하간 헛다리를 짚었고, 그나마 빌딩, 골프장 짓는 토건 국가식 관광정책으로는 외국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하며 권영길 후보가 일침을 날렸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째 이야기였던 전통문화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도 비슷한 줄거리로 진행됐다. 이회창, 정동영, 이명박, 이인제 후보는 여전히 전략산업을 운운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문국현 후보는 말솜씨의 문제인지 준비한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자신이 시인이고 문학의 집을 7년 동안 운영했다며 여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그래도 권영길 후보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켜가려는 정부의 문제도 지적하고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축소가 국내 문화 산업의 다양성을 침해한다며 국내 문화정책의 주요 문제를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대략 관전평은 이렇다. 국가 문화정책을 논하는 자리였지만 문화산업에 갇힌 프레임안에서 후보들은 경제주의자들의 확성기 역할밖에 해내지 못했다. 새로운 것도, 논쟁도, 문화정책의 비전도 없는, 그저 실패를 반복해왔던 고루한 산업정책이, 그리고 새로운 개발지를 찾는 토건국가의 야욕이 가득한 토론이었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의 UCC 이용 제한, 인터넷 선거실명제, 라디오 정치프로그램 탄압 등 유권자들에게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며 선거 시기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했던 선관위가 이번에는 문화정책에 대한 개발주의를 제대로 날린 셈이다. 정치권력의 담합 속에서 기약된 개발주의의 롱런을 제조해내는 자본의 프레임을 걷어내기 위한 투쟁이, 문화적 권리를 위한 실천이 보다 요청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말

정은희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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