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성소수자는 유권자도 아닌가?"

성소수자단체 공개질의에 이회창, 권영길, 금민만 답변

대선이 불과 6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각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한 표가 아까운 각 대선 주자들은 지난 10일 한국노총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정책연대 협약식을 체결하자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대선 후보들은 표와 직결될 법한 문제와 '세력'에 대해서는 설령 기존의 자신들의 노선과 다를지라도, 혹은 그 실현가능 여부가 불투명하더라도 일단 약속을 하고 본다.

그러나 자신들의 표와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면, 혹은 별로 사회적 영향력이 없는 집단 및 세력에 대해서는 정책질의에 조차 응하지 않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공개질의에 '묵묵부답'

지난 4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23개 성소수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대응및성소수자혐오차별저지를위한긴급공동행동'(성소수자공동행동)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 등 11명의 대선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 당면과제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성소수자공동행동의 공개 질의서는 △청소년 성소수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교육 △가족구성권 △성소수자 일반 등 한국사회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당면과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의서에는 '만약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 커밍아웃(스스로 성소수자임을 알리는 일)을 했을 경우 그(녀)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 같은가'라는 각 후보들의 성소수자 인식을 묻는 일반적인 질문부터 '이성애 법률혼 및 혈연 가족 중심의 가족 개념을 확대하고,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약' 등을 묻는 정책질의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소수자공동행동의 질의에 대해 13일 현재까지 공식 답변을 보낸 온 후보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금민 한국사회당 후보 등 두 명의 진보정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처한 인권상황의 심각성은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지난 해 2월에는 육군 모 부대에서 동성애자인 해당 부대원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라'며 성관계를 하는 사진을 찍어 제출할 것을 요구한 충격적인 사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또 레즈비언인권연구소가 지난 2004년 진행한 레즈비언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레즈비언 10명 중 2명(22.5%)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 및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선 후보들, 성소수자 목소리에 눈과 귀 닫았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후보들이 답변서조차 보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성소수자 정책과 관련한 후보들의 입장을 떠나서 대선 후보라면 최소한 유권자인 성소수자단체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냐"며 "표에만 눈이 팔린 대선 후보들은 성소수자들을 유권자로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대선 후보들은 우리를 유권자로 보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번 질의에 대한 태도를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 적극적으로 알려내 투표로서 후보들을 평가하겠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공동행동은 12일 성명을 통해 "대선 후보들이 성소수자들의 공개적인 목소리에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며 "후보들이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성소수자 인권 사안은 아예 없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해버리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며 질의서가 아닌 '성소수자 10대 요구안'을 2차로 각 후보 캠프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성소수자공동행동은 "차기 대통령은 억압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무관심으로 외면하거나, 보이지도 않는 사회적 합의와 국민정서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책개발과 인권마인드로 실질적인 인권증진 변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소수자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후보를 선택하겠다"고 대선 후보들의 10대 요구안 수용을 촉구했다.

한편, 성소수자공동행동 측의 '10대 요구안'의 자세한 내용은 본지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기획코너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