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의구심’...반 차베스파의 성공

[베네수엘라 개헌 부결, 그 이후](2)경제 사보타지와 차베스 정부의 무능

지난 12월 2일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개헌 국민투표가 찬성 49.3%, 반대 50.7%의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침착하다. 이번 개헌 국민투표 부결의 원인을 베네수엘라 국내외에서는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번 개헌투표 부결이 남긴 과제는 무엇인지를 3차례에 걸쳐서 연재한다.

베네수엘라통합사회당(PSUV)이 지도력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부재라는 결점을 표출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차베스를 반대하는 진영의 여론 조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베네수엘라 개헌 국민투표의 최대 쟁점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 및 임기연장’과 의회에서 제안한 ‘국가비상사태 시 기본권 제한’이었다.

이 두 가지 개헌 내용은 차베스를 반대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볼리바르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차베스를 대통령에 재당선 시키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던 지역 공동체와 베네수엘라 국내외 좌파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촉발시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초국적기업연구소(TNI)의 신 정치프로그램 연구소장인 힐러리 웨인라이트는 베네수엘라의 저명한 사회주의 학자이자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협상 담당자이기도 했던 에드가르도 랜더의 말을 빌어, 볼리바르주의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개헌이 대통령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국가에 대한 자율적 권력이 아닌 국가 권력의 일부로 만들어 민중권력을 위협”했다며, “지지자들 사이에 토론과 비판이 넘쳐나고 있다”고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차베스 반대세력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CIA 개입과 미디어 조작, 그리고 공포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서의 기권율은 45%. 적어도 차베스를 지지해왔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유도하지는 못했지만, 투표장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다.

미디어를 통한 여론의 호도는 극에 달했다. 개헌에 반대하는 차베스 반대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민간 미디어에서는 차베스가 “영구집권”을 꾀하고 있다며, 70세가 다 되도록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 의도라는 내용이 대중들의 혼란을 자극했다. 또, 개헌이 되면 자녀들을 국가소유로 만들어 부모들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라는 내용도 대중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했다.

알프레아 아르실라 개헌 수호를 위한 볼리바르주의 위원회 부의장은 민간 미디어들이 “거짓이 사실이 될 때까지 천 번도 넘게 거짓을 되풀이 했다”고 주장했다. 아르실라 부의장은 “증가한 기권표에는 결코 반대표를 던질 수는 없었지만, 공포심과 의혹에 차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포함이 되어 있었다”며 “우리는 반대파가 대중들 가운데 심어놓은 공포심을 물리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개헌 투표를 앞둔 11월 말 미 CIA가 베네수엘라 개헌 정국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 문서에는 개헌정국 자체에 대한 혼란과 소요의 배후에 미 CIA가 개입되어 있었으며,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되더라도 결과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베네수엘라 의회 앞에서 타이어를 태우고, 폭력 사태를 발생시키는 데에도 미국이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개헌이 통과될 경우, 3, 4일 안에 “군 반대세력의 봉기를 바탕으로” 폭동과 소요를 일으켜 차베스 대통령의 권력의 기반을 흔든다는 치밀한 계획까지 나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치밀한 반 차베스 진영에 혼란을 겪고 있는 대중들을 개헌 지지파와 차베스가 대응하지 못한데에는 이런 치밀한 공격이 있었기도 하지만, 차베스의 실정도 작용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리오’에서 바라보는 개헌...경제 사보타지와 정부의 무능

차베스 대통령은 취임기간 동안 쿠바와 의사 교환프로그램을 통해 무상의료(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를 제공하고 예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무상교육(미션 로빈슨, 미션 리바스, 미션 수크레)하는 데서는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생필품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차베스 반대세력의 사보타지를 효과적으로 막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베네수엘라에 고질적인 범죄 문제, 주거 등 도시계획에 있어서는 아직 효과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이 차베스의 개헌에 대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의구심을 자아냈고, 이런 점이 차베스를 지지해온 빈민들의 거주지역 ‘바리오’에서 찬성을 얻어내지 못하고, ‘45% 기권’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07년 후반에만 베네수엘라에서 물가가 18% 상승했다. 이런 점 때문에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을 비롯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린레프트의 스튜어트 먼크턴은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에게 적용되었던 경제 사보타지를 떠올리게 하는 우유, 설탕, 식용유 등과 같은 기본적인 식료품에 대한 의도적인 부족과 기하급수적인 범죄율 증가 등의 핵심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도 (개헌 부결에) 잠재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힐러리 웨인라이트 초국적연구소(TNI) 신정치프로그램 소장도 베네수엘라 현지 ‘비판적’ 개헌 찬성 운동을 했던 메리루즈 길런의 말을 인용해 “관료제에 대한 좌절,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국가의 대응 부재가 왜 많은 차베스 지지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힐러리 웨인라이트 소장은 무상의료 등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주택, 위생, 쓰레기 등 국가 기구의 책임이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제한된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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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 베네수엘라 , 차베스 , 21세기 남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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