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 운하가 왜 필요한가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4) - 한반도 운하와 생태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졌던 태종 이방원이 보위에 올라 국정을 살피던 중 한 신하가 서울에 뱃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양곡 등을 운반하기 위해 한강의 마포까지 배가 들어오고 당시에 대형 물류 수단이 없던 시절이고 보면 뱃길을 연장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태종은 “많은 백성들을 노역으로 동원하면 백성들이 고단하게 되고 우리 나라의 토질은 중국과 달라 뱃길을 만들어도 금새 토사가 쌓여 이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여 인공적인 뱃길 연장 사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는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자마자 시작부터 신속한 운하 건설 추진 기조를 세워 '운하특별법' 제정 및 '5대 건설사 컨소시엄 구성' 등으로 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반대 의견은 수용할 수 없다는 거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운하를 급하게 추진하려는 배경에는 국민들이 이명박 당선자를 ‘경제 대통령’으로 뽑아주었기 때문에 일시적 경제활성화를 도모해야 하는 입장에서 운하 건설 이외에는 7% 성장 동력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운하 특수효과를 통한 단기적인 건설경기 붐이라도 타보려는 목적에서다. 최근 반대 여론이 높고 저항이 예상되자, 향후 국정운영에 차질을 우려하여 기업을 앞세워 “민자사업으로 한다”는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기업과 지자체, 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정치적 부담을 더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속내도 드러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생소한 '운하' 개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경부운하’, ‘호남운하’, ‘충청운하’, 내친김에 남과 북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 라는 거창한 구호가 등장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먼저, 독일이나 중국, 미국은 내륙 교통수단으로 뱃길(강을 이용하여 선박을 운영하는 것을 내륙주운이라 하며 운하는 인공적으로 수로를 만든 것이다)이 발달한데 비해 우리 나라는 과거에는 한강과 낙동강에 나룻배가 다녔지만 지금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내륙주운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배가 다닐 수 있는 뱃길, 즉 수로가 가능한가에 달려있다. 요즘 선박은 옛날의 규모가 적은 나룻배와는 차원이 다른 대형 화물선이다. 따라서 이런 배들이 다니기 위해서는 수심(물의 깊이)이 일정해야 하며 강폭이 넓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 주장하는 한강과 낙동강을 오갈 2,500~5,000톤급 선박의 최소 길이는 110~140m이다.(그러나 이 화물선은 바다를 항해하는 화물선에 비교하면 매우 적은 선박이다). 최소한의 수심은 6-9m 상태로 100m의 강폭을 유지해야만 배가 다닐 수 있다.

이런 조건이 되어야만 화물선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강은 이런 조건에 적합할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한강과 낙동강의 평균 수심은 2-3m 정도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수심이 깊은 지역도 있지만 반대로 수심이 1m도 안 되는 지역도 많다. 필자가 팔당 상수원 보전을 위해 동력식 고무보트를 타고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팔당에서 가까운 여주 근처에는 이 고무보트조차 운행이 불가할 정도로 수심이 낮다. 따라서 우리 나라 강의 자연적인 조건에는 화물선이나 대형 유람선이 다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다니기 위해서는 한강과 낙동강 대부분 구간의 강바닥을 굴착해서 인공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정리해보면 우선 내륙주운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강이 비교적 평평해야 하며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수량이 풍부해야 한다. 내륙주운으로 이용하고 있는 강들과 우리 나라 강을 비교해보자. 물이 가장 많을 때와 가장 적을 때를 구분하는 것을 하상계수(유량변동계수)라고 한다. 한강은 하상계수가 1:390(90)이며 낙동강은 1:392(270)이다. 반면 내륙주운으로 이용하고 있는 라인강은 1:18이며 양자강은 1:22이다. 이렇게 물이 많을 때와 물이 적을 때의 편차가 한강과 낙동강은 심하고 내륙주운이 발달한 강들은 안정적이다. 우리 나라의 평균 강수량은 1,300mm 정도로 많지만 여름 등 계절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강의 기울기가 심해 곧바로 하류로 흘러서 바다로 빠져 나가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륙주운으로 이용하는 라인강, 양자강, 미시시피강 등은 대륙을 통과하는 평평한 강이며 연중 강우량도 고르게 분포하여 일정한 수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형 화물선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륙주운은 강의 자연적인 조건 때문에만 생기는 것일까. 선박을 통해 많은 물건(물동량)을 운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내륙주운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내륙주운을 통해 연결되는 산업구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은 라인강을 따라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내륙주운을 통해 물동량이 운송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트럭, 기차, 비행기처럼 빠른 운송수단이 발달하기 전 19세기에는 다소 느리지만 많은 물동량을 운반할 수 있는 선박운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럽의 지도를 상상해보라. 유럽은 북해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모든 나라가 연결되어 있는 대륙의 형태를 띠고 있어 북해로 들어온 물동량이 유럽 내륙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륙주운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인 국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기지와 운송기지들이 연안을 따라 발달하였다. 포항, 울산, 부산, 광양, 평택, 인천 등 주로 대형 산업기지들은 바다와 인접한 항구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전체 상품 생산의 80-90%를 수출하는 국가의 물류기지가 바다를 향해 전진 배치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우리 나라의 내륙은 산악지대로서 산업기지가 발달하기에는 어려운 조건이다. 이렇듯 나라마다 교통수단, 경제구조, 생활구조의 차이가 다른 것은 복잡한 자연적.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보면 왜 우리 나라에 내륙주운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명박 당선자와 일부 학자들은 그토록 운하건설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명박 당선자가 주장하듯 교통혼잡에 의해 물류비가 비싸기 때문에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면 주로 물류문제를 담당하는 관련자들이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경부운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이명박 당선자와 같은 건설토목 관련자들이다. 물류를 얘기하는데 물류 관계자는 없다. 최근 모 일간지 조사결과에서도 나왔지만 물류운송수단 선택에 있어 결정권자인 화주(생산자)들은 80% 가까이 경부운하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운하가 필요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답은 운송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운송과정이 복잡해서 수출을 위해 초를 다투며 생산한 물품을 운하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경부운하는 550㎞구간으로 70시간 가까이 걸린다(물론 찬성측은 36시간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그런데 부산에서 인천까지 연안 해운 운송은 총거리 753㎞에 28시간 걸린다. 설사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36시간 소요된다고 가정해도 바다로 운송하는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만약 화주라고 생각하고 판단해보기 바란다.

수십조 원을 투자해서 만든 경부운하에 2,500톤급 화물선과 아무런 건설 비용을 들이지 않고 바다로 수만 톤급의 화물선이 있다면 무슨 운송시스템을 이용하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경제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화주들은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바다운송조차도 기피한다. 도로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부산시가 화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서 해양운송을 유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또 있다. 한강과 낙동강은 우리 나라 인구의 2/3가 먹는 식수원이다. 그래서 그냥 강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하천에 흐르는 강이나 호수의 식수 이용이 80%가 넘는 반면, 유럽은 지표수가 좋지 않아 80% 가까이 지하수를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 강은 흐르는 물이 중요하다. 운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강과 낙동강 대부분의 강바닥을 최소 3m(운하 수심 6m기준) 이상 파야하기 때문에 수질 오염에는 대책이 없다. 화물선이 다니다가 사고라도 날 경우 과연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라인강의 경우에도 매년 500건 이상의 선박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로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로 변한 서해안을 아직까지도 온 국민이 나서서 직접 손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있다.

경부운하 찬성 측의 주장을 보면 경부운하는 전체 길이 553㎞, 터널구간 26㎞, 갑문 19개, 운하 용수 공급 댐 2개, 수중보 16개라는 대략의 규모로 건설한다고 한다. 전체 길이 553㎞ 구간에서 16개의 수중보를 설치한다면 약 30㎞ 구간마다 수중보를 설치해야 한다. 평균 6m 정도의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댐이나 수중보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물의 흐름을 차단하기 때문에 생태계가 단절되고 수위 상승으로 홍수 피해가 증가한다. 그리고 수질 오염을 악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수로를 만들기 위해 강바닥을 파야하는데 그들의 주장대로 4년 안에 공사를 마치려면 강은 온통 흙탕물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3급수 이하의 낙동강물을 식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영남 시민들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경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치자. 먹는 식수원이 위협받는데도 운하를 만들 것인가. 운하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식수원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운하는 이미 19세기 산물이다.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가 없는 시대의 운송수단이다. 유럽의 경우에도 주로 북해와 연결되어 있는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3국의 내륙주운 운송량이 유럽 전체의 9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영국은 3,800km의 수로가 있지만 화물운송으로는 이미 사용하고 있지 않다. 또한 운하의 나라라고 하는 독일 역시 전체 물동량의 15%를 내륙 주운이 담당하고 있지만 GDP대비 물류비는 15%로 우리 나라보다 2-3%로 더 높다. 자동차 중심의 물류운송이 문제라면 기차와 해운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적 논란도 줄이고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덧붙이는 말

박진섭 님은 생태지평 연구소 부소장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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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 한반도 , 강 , 대운하 , 이명박 , 한반도대운하 , 산악지대 , 홍수피해 , 수질오염 , 내륙주운 , 건설토목 , 식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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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thiking

    잘 읽었습니다. 간단 명료하게 이해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풀무질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이제는 싸구리 토건성장이 아니라 환경친화적 기술개발에 재정적 비용을 더 투자해서 생태적 녹색성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화석자본주의 성장에 대한 새로운 해법이자 나눔입니다.

  • 좋은글

    우연히 돌아다니다 본신문내용인데 타신문보다 굉장히 만족스럽네요. 긴글인데도 지루한느낌보단 신선하다는.ㅎ 좋은글입니다.!

  • rlaal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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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남진

    ㅇㅇㅇㅇㅇ

  • 우오빠짱!

    작은 이유라도 자신의 쾌락과 투쟁을 위해 필요할 것 입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모든 남자는 그러합니다. 변할 수 있을까요. 확신을 위해 많은 고민이 필료 합니다. 난 나를 위해 타이거 우즈는 멋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