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18대 총선에서 정당 가운데 여성 후보 공천 비율 1위(전체 출마자 중 44.12%)로, 중앙선관위로부터 17억 원의 선거 보조금을 받았다. 비례대표 여성할당 50%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정당이 있는 가운데, 비례대표 여성할당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지역구 여성할당 30%를 실현시킨 민주노동당의 성과는 더욱 두드러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인 이정희 후보는 민주노동당 전략공천을 통해 비례대표 후보 3번으로 총선에 출마했다. 민변 내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한미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뤄왔으나 호주제 폐지 등 여성운동에도 앞장서왔다. “11살, 9살짜리 아이 둘을 둔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정희 후보는 “솔직히 민주노동당이 여성 관련 의정활동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 여성 농민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일은 해왔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이주여성 문제까지 관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면서 “진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어머니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호사 출신답게 “스토킹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와의 지난 30일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는 진짜 여성 후보”
▲ 이정희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출처: 민주노동당] |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는 다른 정당 여성 후보들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당의 여성 후보들은 대부분 소위 ‘치마 두른 남자’, 남성화된 여성이 많은 반면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들은 여성 노동자, 여성 농민 출신 후보가 많아 이들을 잘 대변할 수 있다. 또 살림했던 사람이 많아 여성의 삶을 잘 안다. 지역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나 도서관에서 활동하며 늘 어머니들을 만나고 어머니들을 잘 아는 분들이 후보로 나왔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에게 단순히 수적인 우위를 넘어 훨씬 더 가중치를 둬야 한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의 지난 4년간 여성 관련 의정활동에 대해 평가해달라
가장 중요한 여성 노동자와 여성 농민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 노동자 계층에 집중돼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 사례로 떠오른 이랜드, 코스콤에서도 여성 비정규직이 많았다.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일을 했기 때문에 여성 부문에서 굉장히 중요한 성과를 거뒀고 노력했다고 본다.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또 여성 농민에 대해서도 이들에게 큰 걸림돌인 FT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열심히 뛰었다. 이밖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각 지역의 기초의회에서 친환경 학교급식 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니 입장에서 학교급식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여성 문제의 전부는 아니며, 기본적인 수준이다. 사실 저는 민주노동당이 여성 정책을 잘 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폭력, 성매매 문제나 이주여성 문제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노력이 상당히 부족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내 소수자, 이주여성 문제에 관심 기울여야”
원내 입성한다면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의정활동을 해나갈 계획인가
비정규직과 저임금으로 차별받는 여성노동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 여성이 살림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하면 모두 비정규직이 된다. 여성의 빈곤화를 막고 여성이 자립적으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평등한 노동이 실현돼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낸 사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법과 정책을 세우는 것도 정당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지만, 실제 사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를 압박하고 노사 중재에 나서는 것도 당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KTX 여승무원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이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투쟁을 적극 지원했으나 성과는 못 남겼다. 100%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씩 문제가 풀리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여성 내 소수자, 이주여성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여성은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평등한 길을 가고 있는데 동남아 여성들이 들어와 한국 여성의 빈자리를 메우는 식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직업 중 극단적인 지위로 여겨지는 성매매 여성도 이제는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로 채워지는 추세다.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놓치지 않아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을 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제가 18대 국회에서 반드시 관철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스토킹 방지법이다. 변호사 일을 하며 스토킹 피해 여성들을 상담하다보면 성폭력특별법의 적용을 받기 힘든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스토킹도 크게 보면 성폭력인데 아직 법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로 민사소송의 형태로 소송이 진행되는데 절차도 오래 걸리고 피해 당사자도 고통스러워한다. 18대 국회에서 스토킹 방지법을 관철시켜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도록 하겠다. 호주제 폐지 다음 단계로 자녀가 선택권을 갖는 완전히 개방적인 부모 성선택제 실현을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조만간 관철해낼 것이다.
“‘보육은 여성의 몫’이라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여성노동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했는데, 여성이 비정규직과 저임금에 내몰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사회 구조적 관계를 밝히는 것은 제 몫은 아닌 것 같다(웃음). 제 느낌에는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아빠들이 아무리 도와줘도 육아는 대부분 여성의 몫인 것이 현실이다.
제 자신도 상당히 고민했었는데, 엄마들이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난감한 것은 안정적인 전문직이든 불안정한 생산직이든 마찬가지다.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게 된다. 월급을 얼마 받는데 아이를 키워줄 분을 구하면 얼마를 쓰고, 직장에서 돈을 번다고 해도 아이를 맡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고,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또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얼마나 공부 잘하는 지는 엄마하기 나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다보니 엄마들에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문제에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문제까지 엎친 데 덮친다. 그래서 엄마들은 일하기 어렵게 된다. 일을 몇 년씩 쉬게 되면 아이가 커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취업하기가 어렵고. 결국 엄마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파트직 같은 비정규직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 민주노동당] |
솔직히 그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이 그런 것 같다. 저도 11살, 9살짜리 아이 둘을 둔 엄마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모이면 아이 얘기만 한다. 엄마들에게는 오로지 아이가 주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또 아빠는 늦게까지 일해도 엄마는 6시 땡 하면 아이가 눈에 밟혀서 일할 수가 없다. 보육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 남녀 공동의 몫이고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책임인 것이 맞지만, 현실에서 출발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제가 공동육아를 했었는데, 공동체에서 아빠에게도 육아에 대한 참여를 설득하고 요구하고 일정 부분 강제하니 점차 아빠들이 바뀌더라.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도 생기고 심지어 깍두기 담는 아빠도 생겼다(웃음). 변화를 끌어내는 힘은 개인이 이끌어내기 어렵고 그건 부부싸움밖에 안 된다. 공동체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깨닫고 자연스럽고 즐겁게 변화하고 움직이는 과정과 경험이 수반되어야 하고, 정당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를 많이 마련해야 한다.
아빠도 출산 휴가를 쓸 수 있고, 가족들이 아플 때 간호 휴가를 쓸 수 있고 그것이 경력에 지장을 줄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또 어린이집에서 부모의 참여도를 보육시설 인증 요건에 포함시키거나 보조금을 차등 지급해 공동체의 활성화를 촉진시키는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여성이라고 반드시 여성주의적인 것은 아냐”
우리은행 등에서 시행되는 분리직군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의 정규직화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여성 차별을 고착화시켰다는 비판도 있는데
불충분하지만 성과로서의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한 계단 올라선 것에 불과하다. 한 계단 더 올라서지 않으면 여전히 차별의 벽은 높을 뿐이다. 기업에서 경력과 숙련도에 따라 책임이 더 높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차별 고착화다. 단기간 안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분리직군제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사실 난감한 면이 있다. 비정규직법에 있는 차별시정 조치를 근거로 삼을 수도 없으니까.......개별 사업장에서 분리직군제에 반대하는 ‘사례’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각 주체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분리직군제도 차별의 하나라는 주장이 모여 소송으로 가고 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반대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일단 분리직군제에 대해 문제가 있고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야겠다.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는 이제 잘못됐다는 인식을 먼저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뭔가 여론이 만들어져야 법도 고칠 수 있는 게 아니겠냐.
여성 할당제로 여성 정치세력화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가. 아니라면 향후 어떤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는지
제가 몸담은 법조계만 보더라도 여성들의 진출이 많아졌다. 여성 판사 비율이 50%가 넘고 신규 판사 중에서도 50% 이상이 여성인 실정이다. 그런데 수적으로 늘어난 여성 판사들이 여성주의적인 의식을 가졌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여성 검사, 판사 중에서도 여성 관련 사건에서 여성주의적 입장이 아닌 사람들이 꽤 있다. 여성이 처한 조건과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한데, 같은 여성이라 편향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이 두려워 애써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 되려고 폭탄주 마시는 연습을 많이 했다는 말을 자랑삼아 떠들고 다니는 여성 동료도 봤다. 이런 여성들이 남성보다 훨씬 더 남성중심적 조직에 휘둘릴 수 있다고 본다.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니까, 여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본은 갖추고 있다고 본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성과를 남길 수 있도록 하는 끝마무리와 세세한 차별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신경을 못 썼다. 이는 나름대로의 연구가 필요하고 피해자들과의 소통과 관계가 필요한 문제다. 민주노동당이 잘 갖춰진 기본 토대 위에서 이같은 과제들을 더욱 확실히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민주노동당이 주부들에게 좀 더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고 좋은 거 먹이고 싶고 안 아프게 해주고 싶은 어머니 마음은 다 똑같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해왔던 일들은 사실 부족했다. 조금만 더 품을 들이고 교류를 넓힌다면 아이를 생각하는 주부들을 지지층으로 포괄할 수 있다.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 세력이 조금 더 폭넓고 여유 있게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