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모두에게 얘기해야 하는 애매함"

[진보후보 돋보기] (4) - 빈민 부문 유의선 진보신당 비례후보

민중언론참세상은 4.9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각 부문 운동을 대표해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돋보기를 비춰봤다. 이 가운데 정당과 대중운동의 건강한 관계,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의 상호 발전적 결합 방식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진보후보 돋보기’는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빈민, 성소수자 후보들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 기획으로 총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주

'괜찮은' 취재원 그리고 활동가, 유의선

'기자질'을 하면서, 간혹 꽤 '괜찮은' 취재원들을 만난다. 특히 사회부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영역 등의 취재를 하다보면, 직접 표현한 적은 없지만 존경심을 갖게 될 정도의 훌륭한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듣거나, 그들의 활동을 볼 때면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반면, 정치부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런 '훌륭한' 이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이는 단순히 정치인들의 '재수없음'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의심은 기본이고,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는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취재에 임하는 내 자신의 선입견도 한 몫을 한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5번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한 유의선 후보는 분류하자면, 전자에 해당되는 취재원이었다. 특히나 그녀는 내가 이곳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만난 취재원이었다. 처음 만난 취재원이 그리도 '훌륭해' 보였으니, 그때는 활동가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세상을 향한 열정에 가슴은 뜨겁고, 게다가 똑똑하고, 나 같은 초보기자에게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물론 매우 불친절한 두 번째 취재원을 만났을 때부터, 모두가 유의선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녀는 나의 기억 속에 굉장히 특별하게 각인된 첫 취재원이자, 활동가였다.

그녀가 정당의 후보로 총선에 나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주변 지인들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렸다고 했는데, 나는 국회에 있으면서도 진보신당에서 공식 발표를 한 후에야 그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수행비서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 후보와 인터뷰 날짜를 잡은 후 고민이 앞섰다. '재수없는 정치인과 훌륭한 활동가 중 누구로 접근해야 할까'.

"즐거우세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답을 못 내리고 일단 그녀를 지난 2일 참세상 사무실에서 별 준비 없이 만났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어떤 질문을 먼저 할까 고민을 하다 "요즘 즐겁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너무 즐겁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의선 진보신당 후보/김용욱 기자
유 후보는 "유세를 나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동의해주고 호응해 줄 때는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즐겁다"며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선거 공간을 얘기하는 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정치가 유의미하다고 얘기하는 근거가 '과연 선거인가'라는 스스로의 기준에 걸리면,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굉장히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 후보는 "(투쟁 현장에서 유세를 할 때) 대중투쟁과 정치가 맞물려야 한다는 점을 딱히 함께 설명해내기가 어렵다"며 "잘못하면 투쟁 따로 정치 따로 이분법이 되어 버리고, 한꺼번에 설명하면 결국 정당과 총선 얘기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인 유의선과 활동가 유의선 사이에 스스로 메우지 못한 간극이 아직은 존재하는 듯 했다. 유 후보는 "너나할 것 없이 민생을 얘기하는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자기의 관점을 정확히 견지하고 얘기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이전에 운동했을 때와 다르게 자꾸 희미해지는 것 같다"며 "모두에게 얘기해야 하는 애매함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10의 8은 운동의 성과를 가져다 바치는 듯한 빈정상함"

후보 출마에 대한 주변 반응도 궁금했다. "8대 2 정도"라고 했다. 8이 부정, 2가 긍정이었다. 주변의 7에서 8은 "왜"라는 반응부터 보였다고 한다. 부정적 반응의 정체는 뭐였을까?

그녀는 "뭐랄까요, 그간 해왔던 운동의 성과를 가져다 바치는 듯한 기분나쁨, 빈정상함이랄까요. 가까운 데 일수록 걱정이 많았어요"고 설명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녀 지인들의 반응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출마 제안을 받고, 고민을 하던 유 후보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비판만으로 정치라는 큰 공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냐"며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면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유 후보는 "나에게는 10년의 사회운동이고, 하나의 전환점이 대중조직과의 결합이었다"며 "여기에서 선거라는 공간과 진보정당 운동도 정면으로 대면해야 하는 문제구나라는 생각으로 일단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 나중에 조금 후회는 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세부 정책은 큰 차이 없어.. 반빈곤 과제 총론 필요"

빈곤부문에서 10년 활동을 해 온 유 후보, 그리고 진보신당이 내세우는 반빈곤 정책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을까? 진보신당과 그녀만의 정책적 차별성에 대해 물어봤다. 유 후보는 "사실 세부적인 복지정책에 있어서 정당 간 차이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세부적인 복지정책이 아니라 복지총론으로서 반빈곤 과제 총론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얘기하는 권리적 복지, 필요의 복지의 총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제기하고, 그것에 근거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대응하는 복지총론의 구성을 강조했다.

  유의선 진보신당 후보/ 김용욱 기자
유 후보는 '사회적 가계부', '빈곤 경계령'이라는 표현으로 반빈곤 정책에 대한 구상을 요약했다. 그녀는 '사회적 가계부'에 대해 "적절한 빈곤선 그리고 어느 수준 이상의 지출이 드는 비용에 대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 그간 사회공공성이라고 얘기했던 부분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복지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빈곤 경계령'과 관련해 "수해만 재난이 아니다. 빈곤도 재난이기 때문에 민방위 훈련하면 싸이렌 울리는 것처럼 빈곤율이 어느 이상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이것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망이 발동이 되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빈곤선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상위 몇 프로의 조세를 확대해서 그것이 안전망으로 기능해 그 이상은 빈곤율이 넘어가지 않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 후보는 "투쟁하는 공간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실현가능한 정치권의 발언들 속에서 투쟁하는 이들의 요구는 그냥 원칙적인 것으로만 부차화 되었기 때문"이라며 원칙과 실현가능한 요구 사이를 메울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진보신당만의 '강점'을 설명키도 했다.

이어 유 후보는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경비업법 개정, 비공식 부문 노동을 보호하는 법안 마련을 제시했다.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완전히 부정할 수 없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활동해 온 그녀가 생각하는 정당과 대중운동과의 발전적인 연대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 전빈련이 민주노동당을 떠나 진보신당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과 관련해 물었다. 유 후보는 "더 이상 민주노동당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며 "'우리가 필요에 따라 선택될 수는 있어도 우리가 권리의 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겠다'라는 인식이 전빈련 내부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후보는 정당과 대중운동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함께 갈 수 있는 연대의 방안을 "지역운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지역에서 정치인과 정당만 있었지, 지역운동은 없었다"며 "진보신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한국사회당이건 누가 끝까지 지역에서 살아남느냐가 최후의 운동으로 남는 근거가 되고,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후보는 민주노동당 평가와 관련해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고, 단기간에 그것을 뛰어넘거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고,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그 성과와 토대와 정책과 진보의 고민들을 어떻게 이어지게 할 것인가가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활동가와 정치인 사이에서 길 찾기

인터뷰 내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유 후보는 거침없이 질문에 대한 답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전과 느낌은 조금 달랐다. 뭐랄까. 정치인과 활동가 사이에서, 그리고 훈훈한 덕담과 걱정 어린 시선 사이에서 스스로의 길에 대해 재차 자문하고 있는 듯 했다.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예를 들며, "비례대표 후보 한 명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을 하던 그녀는 "한나라당 비례1번 강명순 목사가 빈곤아동에 대해 지난 20년 동안 쌓아왔던 것을 한나라당이 덧씌운 것이지.."라고 말을 이어가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빈곤사회연대 한 것도 마찬가지네. 우려했던 사람들 말이 맞네"라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스레 까칠한 질문을 던졌다고 내심 걱정이 됐지만,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대중에게 얘기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며 "정당만으로도 안 되고, 대중운동만으로도 안 되는 부분들로서의 정치를 같이 고민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는 대목에선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아 가고 있는 정치인 유의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 후보는 "다양한 고민들이 선거가 되니 정치로 포장되어 버리고, 또 '배타적 지지냐, 철회냐'의 논란에서 보여지듯 또 다시 우리 안의 패권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며 "운동사회 안에서 다양한 상처들이 있지만, 지금 총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진보신당의 활동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첫 취재원이었던 그녀가, '괜찮은' 정치인으로도 여전히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유의선 후보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처음으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선거를 치르고 있는데, 즐거운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유세를 나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동의해주고, 호응해 줄 때는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유의미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즐겁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선거 공간을 얘기하는 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좀 힘든 점은 일반 대중들은 너무나 정치에 대해 회의적이고, 허무감과 패배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정치가 유의하다고 얘기하는 근거가 '과연 선거인가', '선거를 통한 그 가능성이 얼마만큼 일까'라는 스스로의 기준에 걸리면,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굉장히 어렵다. 주로 내가 노점상.철거민 투쟁 현장을 다니는데, 그 분들이 ‘아무리 투쟁을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재반복이다’라는 얘기를 한다. ‘투쟁은 기본적으로 가야하지만, 이것을 한 단계 상승시켜 내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을 전환시키지 않으면, 노점상의 투쟁도 계속 반복되는 것일 뿐이고, 우리가 철거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대중투쟁이고, 정치가 거기에 맞물릴 수 있는데, 이 점을 딱히 함께 설명해내기가 어렵다. 잘못하면 투쟁 따로 정치 따로 이분법이 되어 버리고, 한꺼번에 설명하면 결국 정당과 총선 얘기는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남들 다하는 질문은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후보로서 홍보 멘트 부탁한다

IMF 이후 실업자 운동을 시작했고, 상담부터 시작해 전체 실업자 운동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면서, 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에서 활동을 했다. 그런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실업자 운동 내에서 수급자 운동과 일용직 노조에 대한 고민으로 분화가 생겼다. 그 때 수급자 운동 관련해서 최옥란 열사 투쟁을 거치면서, 민중복지연대와 기초법연석회의에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빈곤사회연대 준비위 건설 이후 계속 활동을 해오다 지난 해 말 전국빈민연합에 옮겨갔고, 현재는 전국빈민연합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 후보께서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나온다는 것을 진보신당이 공식 발표를 하고서야 알았다. 약간 놀란 면도 없지 않았다.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후보로 나왔을 때 주변 반응은 어떠했는지

사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여러 번 거절을 했다. 전빈련은 이번 총선에서 후보 전술 중심으로 결합하는 것이 방침으로 결정이 났는데, 할 사람이 없었다. 의장님들은 다 수배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이 남아있었고, 나 보고 하라고 했는데 안 한다고 했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사회운동을 작년까지 딱 10년을 했고, 전빈련으로 오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대중에게 있어서 반빈곤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전빈련 활동이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면, 뭔가 여기에 걸맞는 활동이 요구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고민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 '모든 사람들이 다 정치가 썩었다고 얘기하는데, 특히 사회를 바꾸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비판만 하고 있을 수 있느냐. 네가 대중조직에 있다면, 대중에게 비판만으로 정치라는 큰 공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냐.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면 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시더라. 나에게는 이제는 10년의 사회운동이고, 하나의 전환점이 대중조직과의 결합이었고, 여기에서 ‘선거라는 공간과 진보정당 운동도 정면으로 대면해야 하는 문제구나’라는 생각으로 ‘일단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다. 사실 나중에 조금 후회는 했다.(웃음)

왜 후회 했나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더라. 정책 또는 개인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 문제가 있더라. 그래도 어쨌든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요구하는 부분이었고, 나도 후보전술이 우리 조직에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를 했고, 나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결심을 했다.

주변 반응은 한 8대2 정도인데, 2는 '너는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 한번도 비껴나가지 않고 하는구나, 언젠가는 나갈 줄 알았다.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이었다. 7에서 8은 '왜..'라는, ‘하려면 진작 하던가..’라는 반응이었다. 뭐랄까, 그간 해왔던 운동의 성과를 가져다 바치는 듯한 느낌의 기분나쁨, 빈정상함이랄까... 이런 분들이 있었는데, 내가 걱정돼서 지인들에게 전화를 다 돌렸다. 그런데 의외로 가까운 단위 빼놓고는 ‘잘하면 좋겠다’는 반응이었고, 가까운 데 일수록 걱정이 많으시더라.

정치인 유의선으로 유세를 다니는 것과 그 이전에 활동가로 현장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많이 다르다. 일단 정치라고 하는 것에 몸담는 순간, 기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신뢰가 없다. 예를 들어 ‘진보신당’ 어깨띠를 메는데, 당을 알리는 데 유의미할 수 있겠지만, 투쟁하는 공간에 가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정치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뢰 없음이 그대로 반영되더라. 그러다 보니 뭔가 동지적 관계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게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정확히 어떤 대상에게 얘기하느냐에 대한 불분명함이 있다. 너나할 것 없이 민생이라고 얘기를 한다. 우리에게는 민중인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자기의 관점을 정확히 견지하고 얘기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이전에 운동했을 때와 다르게 자꾸 희미해지는 것 같다. 모두에게 얘기해야 하는 애매함이 존재한다.

또 예전에는 주로 요구하고, ‘이렇게 가야한다’라는 것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그 상황을 알려줘야 하는 부분들도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다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느끼는 것은 진보정치를 포함해 정치가 나쁘게 말하면 대중추수, 포퓰리즘적으로 자꾸 경향성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운동은 절대평가일 수 있겠지만, 선거라는 공간 자체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적이고, 여기서 계속 흔들리는 측면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 같다.

한 정당의 비례대표, 그것도 빈민부문을 대표하는 후보가 되셨다. 포부랄까, 만약 당선되면 뭐뭐 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얘기해달라. 달리 표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반빈곤 과제에 대해 얘기해줘도 좋겠다

사실 세부적인 복지정책에 있어서 지금 정당 간 차이가 별로 없다. 물론 한나라당과의 복지와는 분명히 다르다. 한나라당의 복지는 철저하게 워크페어형, 그리고 시장형이다. 복지비용도 경제성장으로 따라오는 자연증가분으로 하고, 복지를 일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형태로 임금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복지에는 결정적으로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하나도 없다. 빈곤아동, 수급자, 4대 보험 사각지대, 일하는 여성, 노인 등 할 것 없이 빈곤층 사각지대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없고, 대신 ‘실종아동 찾기’, ‘유류세 감면’식의 복지를 보편적 복지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것과는 대별될 수 있는데, 저희가 제기하는 것은 세부적인 복지정책이 아니라 이에 맞대응하는 복지총론으로서 반빈곤 과제 총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는데, 이제 ‘사회적 가계부’를 써야 한다. 지금 빈곤이 사회적 빈곤이라면, ‘사회적 가계부’란 적절한 빈곤선 그리고 어느 수준 이상의 지출이 드는 비용에 대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 그간 사회공공성이라고 얘기했던 부분들이다. 그것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복지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런 총론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적인 복지정책의 편차는 크게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도 기초법 개정 얘기하고, 이명박 정부도 상대적 빈곤선 마련도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는 권리적 복지, 필요의 복지의 총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제기하고, 그것에 근거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빈곤의 경계령을 내려야 한다. 수해만 재난이 아니다. 빈곤도 재난이기 때문에 민방위 훈련하면 싸이렌 울리는 것처럼 빈곤율이 어느 이상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이것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망이 발동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처럼 빈곤선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상위 몇 프로의 조세를 확대해서 그것이 안전망으로 기능해 그 이상은 빈곤율이 넘어가지 않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시급한 정책 과제를 몇 개만 뽑는다면

첫 번째는 계속 제기해 온 최저생계비, 즉 빈곤선 현실화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사각지대도 제대로 밝혀진다. 그리고 절대빈곤층을 넘어서는 4대 보험 사각지대 해소 방안, 진보신당의 경우 ‘힘내라 실업급여’ 형태가 있는데, 이런 부분이 더 확대되고, 공격적 정책으로 나아가야 된다.

그리고 내가 노점상, 철거민 쪽 빈민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당장 빠르게 하고 싶은 것은 용역깡패 해체하는 경비업법 개정이다. 지금 너무 심각한 상황이다. 노점상, 철거민, 비정규직 다 마찬가지다. 법이 있음에도 제대로 적용이 안 되고 있다. 때문에 경비업법 개정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또 노점상 문제가 그렇듯이 비공식 부문 노동의 보호, 관련 법안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합법과 불법 기준만 있었는데, 사실 존재하는 노점상이나 다양한 빈곤층을 보호할 수 있고, 또 이들을 지역의 경제주체로 함께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제일 하고 싶은 부분이다.

당선되면, 말씀하신 세 가지 정책만큼은 임기 내 반드시 실현된다고 생각해도 되겠는가

(웃음)

진보신당 당적을 가지고 후보로 뛰고 있다. 진보신당이 다른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혹은 한국사회당 등 여타 정당들에 비해 ‘빈민들의 지지를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혹은 ‘빈곤문제 해결에 관해서라면 자신있다’라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달리 표현해 여타 진보정당과 다른 진보신당만의 정책적 차별성, 혹은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진보신당은 노점상, 철거민 조직인 전빈련이 함께 만드는 정당이다.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 이후 과정 속에서 우리의 요구들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얘기될 수 있는 공간으로 진보신당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 내용들을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책에 있어서의 각 당의 차별성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앞서 얘기한대로 사회적 빈곤을 바라보는 정확한 자기 원칙과 총론이 있고, 이 속에서 공공성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등이 함께 배치되고, 구체적 정책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복지정책에 있어 내용적으로 하나의 자기총론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강점은 실제 구체적으로 투쟁하는 이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일 것 같다. 끊임없이 투쟁하는 공간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실현가능한 정치권의 발언들 속에서 투쟁하는 이들의 요구는 그냥 원칙적인 것으로만 부차화 되었다. 그 사이를 메울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노점상 현장 투쟁은 노점상들이 하는 것이고, 사실 정치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경비업법 개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 사이의 간극을 비공식노동 보호법안 혹은 다른 정책들로 메우자라는 것이고, 그러한 차이를 메우는 정책들을 드러내고 있는 정당이 진보신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운동할 때 노동.농민.빈민.학생, 줄여서 노농빈학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운동사회 내에서 노.농 그리고 학 정도를 바라봤지, 빈민 대중은 사회운동적으로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준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비닐하우스촌 주민, 노숙인 등 투쟁하는 주체들의 요구와 우리들의 정책적 요구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이것을 만들어내는 정당이 진보신당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분당 과정에서 전빈련이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왔다. 사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이 그간 빈곤 문제를 어떻게 받아안고 왔냐, 혹은 전빈련이 민주노동당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위상과 별개로, 민주노동당은 빈민대중을 포괄하고 있다는 하나의 표상을 잃게 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반면, 진보신당은 그 표상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간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빈곤부문에 대한 관심이랄까, 혹은 민주노동당의 빈곤부문 관련 활동이랄까, 이를 좀 평가해본다면 어떠한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질문하면, 전빈련은 왜 민주노동당을 떠나 진보신당을 택했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은 대중조직이 인식하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전빈련 내부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지난 과정에서의 논란을 엄밀하게 종북주의나 패권주의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일단 민주노동당을 나오는 과정에서 저희는 더 이상 민주노동당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은 선별될 뿐이었다는, 우리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되거나 혹은 안 되거나라는 얘기다. 누가 얘기했던데, 100개를 얘기해도 하나로 귀결된다는 부분이 컸던 것 같다.

전빈련 지도부가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에 대한 적극적 지지 입장을 냈었다. 혁신이 필요하고, 냉철한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대중조직으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발언이었다. 왜냐하면 배타적지지를 선언했던 조직이 그 지지를 철회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더욱 심각한 정치적 허무주의로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게 마음에 안 든다고 철회하고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워낙 과정들이 극단적이고, 숨가쁘게 진행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선택될 수는 있어도 우리가 권리의 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겠다’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저희는 어쨌든 배타적지지를 철회하고, 이번 총선에 진보신당과 적극적으로 함께하자 했지만, 우리 내부에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분들이 많이 있고, 8년 동안 민주노동당과 지역에서 연대했던 부분들이 있어서 딱 잘라 맺고 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점도 있다.

2004년 총선에서 과거 열린우리당이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장애인 후보를 배정했다. 한나라당도 8번에 배정했었다.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비례대표로 장애인 후보가 나왔다고 해서 당장 장애인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느냐, 혹은 각 정당의 장애인 관련 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는가, 혹은 그들의 원내 진입이 한국사회 장애인들의 권리 향상에 크게 기여를 했는가, 라는 점에서 의문이 든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보면,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레대표 후보 한 명 나왔다고 해서 이것이 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냐는 고민도 드는데

한 명이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얼마큼 클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전빈련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한 명이 가고, 열 명이 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영역의 확대, 즉 우리가 뭔가 시도하고, 다양한 부분들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전빈련을 중심으로 얘기하면, 뭔가 그늘지고, 지하의 구조에서 소통될 수 있는 통로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회원분들은 굉장히 좋아하신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그 가능성의 측면에서 빈민부문 비례대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저희 조직에는 있다.

그리고 정당 차원에서 보면, 비례대표가 가지는 의미는 그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 정책을 크게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실은 그 당이 어떻게 보여지냐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비례1번 강명순 목사가 빈곤아동에 대해서 지난 20여 년 동안 쌓아왔던 것을 한나라당이 덧씌운 것이지...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빈곤사회연대 한 것도 마찬가지네. (웃음) 우려했던 사람들 말이 맞네. (웃음)

불편한 질문을 드린 이유는, 지적하신 것과 똑같은 우려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싶기도 하다

네. 이어서 얘기를 하면 덧씌우는 것뿐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러면 ‘진보신당에서 비례1번이 뭐가 다르냐’는 부분은 분명한 평가가 있어야 된다. 예를 들면 양쪽이 다 비판받는 것처럼 진보신당에 걸맞는 분들이냐 아니냐의 평가뿐만 아니라, 전략공천 형태로 진행된 부분들도 있는데, 조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긴 한다. 그런데 목적의식적인 고려들, 특히 투쟁하는 단위들, 장애여성, 이랜드노조, 그리고 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운동하고 있는 대중단위의 요구와 고민들을 반영해서 나간 측면이 크고, 그것은 그 개인들이 나가서 얼만큼 바뀌냐 아니냐하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이고, 당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앞서 ‘필요에 따라 선택됐다’라는 얘기를 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정치적.도구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마도 전빈련이 이번 분당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을 떠나지 않았다면, 민주노동당이 전빈련이나 여타 조직에서 빈민후보로 누군가를 내세웠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빈민부문 후보를 내지 못했다. 전빈련이 나가자 내세울 후보도 함께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에 대중조직은 있었지만, 자기 대중도 없고, 스스로 빈곤의제를 체화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할 것 같다. 이를테면 민주노총 없이는 당의 노동 정책도 없다는 식의 등식이 성립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볼 때 단순히 대중조직과 정당이 함께 한다고 해서, 정당이 운동을 포괄하고 끌어안고 가냐는 고민도 든다. 정당과 대중운동이 함께 상승효과를 내면서 갈 수 있는 연대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그것은 지역운동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크게 중앙당과 중앙단위의 정책적 연계뿐만 아니라,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전선을 만드는 형태로써의 연대와 네트워크망을 당이라는 구조 속에서 가질 수 있겠다. 사실 대중조직이 가지고 있는 자지조직력과 정당이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조직적 또는 대중적으로 귀결되거나, 혹은 정당운동의 성과로 귀결되는 상호 소통될 수 있는 구조들이 만들어져야한다. 이것은 지역에서의 운동, 지역정치가 기본일 것이고, 그 속에서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해왔던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안 되었던 것이다.

지역에서 정치인과 정당만 있었지, 지역운동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진 상황에서는 더욱 열악하고, 기반 없고, 더욱 더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어쨌든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지역운동으로서 역으로 풀지 않으면, 결국 정당과 정치의 불편함으로 정당은 지역 내에서 못 살아남고, 대중운동도 정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예전에는 민주노동당이 대중조직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대중조직들이 정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냐. 진보신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한국사회당이건, 누가 끝까지 지역에서 살아남느냐가 최후의 운동으로 남는 근거가 되고,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말씀하신대로, 민주노동당이 그 노력을 게을리 한건 맞지만, 안 했다고 쉽게 평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지난 10년간 대중운동과 소통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사를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죠.(웃음)

진보신당이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탈당에서 창당 그리고 총선에 뛰어 들었는데, 민주노동당이 지난 10년의 과정 속에서 실패해왔다고 평가되는 점을 되풀이 하지 않고, 이 짧은 시간 안에 그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나

당연히 못하는 거 맞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함께 했던 분들이 진보신당에 가니 다 있더라. 나는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고, 평가와 비판을 통해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그것을 뛰어넘거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어떻게 이어지게 할 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그 성과와 토대와 정책과 진보의 고민들을 어떻게 이어지게 할 것인가가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냐, 진보신당이냐가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진보신당은 새롭게 진보정치운동을 구성해보자는 것이고, 그것의 가장 구체적인 예가 저희 빈민단위가 같이 결합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이 되지 않는 한 결국 하나의 단체로 전락할 것이고, 민주노동당도 그 이전에 평가들을 제대로 받아 안지 않으면 단체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사하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은 그동안의 성과를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지만 비어있고, 진보신당은 성과를 몸 안에 가지고 있지만, 외화되지는 않았다. 다만, 진보정치에 대해 희망을 꿈꾸는 것처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진보정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풀어보자라는 측면에서 진보신당은 힘과 뜨거움이 있다고 본다.

정책과 정치는 다른데,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나

학생운동 때부터 언제나 마이너였다. 입장도 그렇고, 조직적으로도 마이너였다. 운동하는 사람도 정치를 한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기조는 솔직함의 정치다. 운동은 상식이 통해야 한다. 그것은 지난 17년 동안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내가 전노련에 올 때도 사람들이 ‘상처받지 마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이전의 사회운동과는 굉장히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전노련 활동을 하면서, 사실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거기서 버티기를 할 거냐’, ‘부딪쳐 보고 안 되면 말거냐’는 판단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지금 걱정할 문제는 전혀 아닌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전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주어진 것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면하기 위한 우리 운동의 과제들이 있고, 전빈련 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조직 안에서 다양한 고민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선거가 되니 정치로 포장되어 버리고, 또 ‘배타적 지지냐, 철회냐’의 논란에서 보여지 듯 또 다시 우리안의 패권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다. 운동 사회 안에 다양한 상처들이 있지만, 지금 총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진보신당의 활동을 봐줬으면 좋겠다.

굉장히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대중에게 얘기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좀 더 선거공간을 대중운동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햇다. 정당만으로도 안 되고, 대중운동만으로도 안 되는 부분들로서의 정치를 같이 고민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비례1번 후보들에게 똑같이 보낸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리는 것으로 마치겠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보수정치권을 '개미떼'에 빗대며, 정치권이 내놓는 장애인 공약을 "한 표를 더 얻기 위한 공허한 약속"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장연의 비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아실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만약 당선되면 '개미떼'가 안 될 자신 있는가

우연히 드라마 이산을 봤는데, 거기에서 ‘권력이라는 게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버리고 싶어도 그것을 버리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밀려나는 문제이다. 그래서 권력의 본성이란 거기서 살아남지 않으면, 결국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는 식의 비슷한 대사가 나오더라. 좀 더 멋있는 대사였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개인의 것이 아니라, 조직의 것으로, 그리고 운동의 것으로 하느냐가 가장 핵심일 것 같다. 나는 뭔가 대중운동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제도권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그 역으로 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거기에 굉장히 회의를 느꼈던 것 아닌가. 예를 들면 우리가 요구하는 정책을 내지만, 그것은 정치인의 이름을 살려주기 위한 것으로 귀결되는 구조, 반대로 대중조직도 마찬가지다. 대중조직도 아쉬울 때만 정치인 불러 발언시키고 하는 것, 사실 서로 신뢰 없음에 근거하고 있고, 관계와 소통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자기역할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 안에서 운동의 성과를 조금 더 물질화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조직의 결정에 밀려서 나간 측면이 있기 때문에 되고 나서도 물어봐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