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실명제 무력화 되나.. 총선 시기 골격 깨져

선관위, 익명의 덧글게시판 선거실명제 위반 아닌 것으로 해석

민중언론참세상, 노동넷방송국 등이 공직선거법상의 실명확인시스템을 설치하지 않고 익명의 덧글 쓰기가 가능하도록 한 기술적 조치(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를 한 데 대해 중앙선관위가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사례만으로 본다면 실명제폐지공대위의 총선 시기 실명제 폐지 대응으로 선거실명제(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의 골격이 무너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3월 28일 민중언론참세상의 현장기자석 등 게시판 운영에 대해서는 실명제 조치 이행명령을 내렸지만 덧글게시판 운영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공동대응을 한 노동넷방송국, 미디어충청, 울산노동뉴스에 대해서도 이행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 시기 공직선거법 제82의6을 위반해 과태료 적용을 받는 인터넷언론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목표는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폐지, 향후 개정 불투명

지금까지 실명제폐지공대위 등은 선거실명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가의 감시.통제의 강화로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킨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여론의 다양성과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인터넷언론의 활동을 제약해 공직선거법의 3대 독소조항으로 거론해왔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대상으로 설정한 인터넷언론이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실명확인시스템을 설치하고, 주민번호가 확인되는 사람 만이 게시판과 대화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 따라서 선거실명제에 대한 궁극적인 조치는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을 폐기하는 법 개정이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2004년 2월 국회 정개특위가 인터넷실명제를 입법한 이후 2006년 지자체 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시기 등 세 번에 걸쳐 선거실명제가 시행되었고, 지금까지 인터넷언론 당사자와 언론,인권단체가 반대와 거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17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선거법 개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도 31개 시민사회단체가 3대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입법청원과 정치관계법 특위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선거법 개정 입법로비 활동을 벌였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번 총선 이후 구성될 18대 국회에서도 선거실명제 개정이 이루어질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이번 실명제폐지공대위 소속 인터넷언론의 실천은 선거실명제의 맹점을 드러내며 상당한 성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실명확인시스템을 깔지 않고 익명의 글쓰기가 가능하게 되면 현행 공직선거법 상의 선거실명제는 사실상 실효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주민번호를 남기고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도록 한 입법 취지가 깨뜨려지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운영하는 덧글게시판 공동대응 전술은 이를 관통했다.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으로 선거실명제를 거부하는 울산노동뉴스의 안내문. '덧글쓰기'를 누르면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운영하는 덧글게시판으로 이동한다.(아래 그림)


공대위 소속 언론들은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게시판 폐쇄, 익명 덧글 기사화,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 사이트 파업 등의 실천을 통해 선거실명제를 거부했다. 게시판 폐쇄는 독자와의 소통 단절을 감내하면서도 실명확인시스템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익명 덧글 기사화는 제한된 방식의 한계는 있지만 독자의 익명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고, 사이트 파업은 사이트 운영에 손을 놓는 방식으로의 거부이고,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은 실명인증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으면서 익명의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한 대응이었다.

총선 시기 선거실명제 거부 인터넷언론

덧글게시판 폐쇄
대자보 www.jabo.co.kr
레디앙 www.redian.org
부안21 www.buan21.com
에큐메니안 www.ecumenian.com
이주노동자방송국 www.migrantsinkorea.net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인천뉴스 www.incheonnews.com
참소리 www.cham-sori.net
코카뉴스 www.cocanews.com
프로메테우스 www.prometheus.co.kr
함께걸음 www.cowalknews.co.kr
PD저널 www.pdjournal.com

덧글게시판 비공개 운영과 기사화.메일 발송
미디어스 www.mediaus.co.kr
일다 www.ildaro.com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
미디어충청 www.cmedia.or.kr
민중언론참세상 www.newscham.net
울산노동뉴스 wwww.nodongnews.or.kr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 사이트 파업
노동넷 방송국 nodong.net

김용권 중앙선관위 사이버조사과 사무관은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에 대해 "덧글을 당해 사이트에 게시하지 않고 별도의 팝업 링크로 이용자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선거법 상의 당해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운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민중언론참세상이 과태료 처분을 받은데 대해 김용권 사무관은 "당시에는 운영 주체와 관계없이 해당 홈페이지에 덧글이 남아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차이가 없기 때문에 위반으로 보았다"며 이번 진보넷의 팝업을 통한 덧글게시판 운영과 다르게 해석했다. 중앙선관위가 엄격한 법 집행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대선 당시 덧글게시판 운영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 부당하다는 입장으로, 지난 4월 4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같은 원리의 게시판 운영에 대해 대선 때는 위반으로 해석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위반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 데 대해 법률적 심판을 받겠다는 취지이다.

중앙선관위의 이번 판단은 집행기관으로서의 선거실명제 반대 여론을 의식한 고충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실명제는 정보통신망법에서도 다루는 만큼 공직선거법에서까지 적용할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도 많다”고 말해 선관위의 법 집행상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추후 진보넷이 운영하는 덧글게시판도 인터넷언론의 대상으로 확대 적용하게 되면 이 역시 현행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실명제 무력화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이르다. 추후 공직선거법이 유지되고 인터넷언론이 이 방식으로 확대해 대응할 경우 중선관위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넷, 빈틈 공략한 기술 조치 아이디어의 전술적 승리

덧글게시판 운영 주체 변경 대응은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긴급한 제안으로 성사되었다. 선거운동기간을 이틀 앞둔 25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진보넷이 덧글게시판을 운영하고, 선거실명제를 반대하는 인터넷언론은 기술 조치를 취해 익명의 덧글 쓰기가 가능하도록 대응하자는 제안을 했다. 여기에 노동넷방송국, 미디어충청, 민중언론참세상, 울산노동뉴스 등이 동참하면서 공동대응 전술이 이루어지게 된 것.

이들 인터넷언론은 오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과반 이상이 예상돼 향후 선거법 개정도 불투명할 것으로 판단, 선거실명제에 대한 독자들의 공분을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현재 선거실명제를 거부하는 인터넷언론들이 규모가 작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독자들의 호응 여론이 높아지고, 미디어행동, 언론개혁시민연대, 인권단체 등 연대 단위 활동이 활성화되는 분위기여서, 이번 대응으로 과태료 부담을 안게 되더라도 공동대응을 통해 헤쳐가자는 의지를 모으게 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제안을 받은 네 개의 언론은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당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겠다는 ‘기발한 고육지책’"이란 점에 공감하고, 중앙선관위가 현행 공직선거법 상 위반 해석을 내리게 되면 추후 법정 대응에서도 만전을 기하기로 의중을 모았다.

  3월 25일 열린 언론사유화 반대와 미디어공공성 쟁취 사회행동(미디어행동)과 선거실명제폐지공대위의 선거실명제 폐지 기자회견 장면

결과적으로 중앙선관위가 위반이 아닌 것으로 해석한데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선거실명제를 꾸준히 반대해온 인터넷언론 당사자가 있었고, 언론단체, 인권단체의 연대가 이루어낸 의미있는 성과”라고 말하고 “그동안 민중의소리, 민중언론참세상 등 두 차례 과태료를 맞는 가운데 이같은 대응 아이디어가 마련돼 공직선거법의 빈틈을 파고들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20여 개의 인터넷언론 당사자의 노력에 독자들의 호응, 그리고 미디어행동, 인권단체 등 연대단체의 목소리가 힘을 더하는 상황에서, 안팎의 현실을 고려한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맞물려, 최소한 이번 총선 국면에서만큼은 실명제가 온전한 제 기능을 못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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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 진보넷 , 선거실명제 , 과태료 , 감시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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