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 아닌데 살 처분이라니

서울메트로 설비용역, 늙은 노동자의 밥줄

4월 24일 아침,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노동자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도 아닌데 살 처분 당하게 생겼다. 취재 좀 와라.”

이랜드노동조합 홍콩증시 상장저지 원정투쟁 취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참이라, 간다 만다, 답은 하지 않고 보도자료를 우선 보내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도통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노동자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도 아닌데 살 처분 당하게 생겼다"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 내려서 앞을 바라보니 서울메트로라고 적힌 빌딩이 보인다. 전화가 온 곳은, 국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을 무시한 채 무리한 감원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고 농성 중인 서울지하철노조 노동자가 아니다. 오륙십 대의 가장들이 한 달에 백사십만 원 남짓 벌어 가정의 생계를 꾸리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설비용역 비정규 노동자다. 취재 수첩을 챙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서울메트로 정문 앞에 도착하니 담장 아래 설비용역 노동자들과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은박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인도 아래 쌩쌩 차가 다니는 차도에는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앉은 곳에는 그늘이 깊게 져있다. 그곳에 앉은 노동자의 얼굴에는 더욱 어두운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있다.

서울메트로 설비용역 노동자들은 지하철의 보일러, 폐수처리, 배관과 같은 궂은 일을 도맡아한다. 용역업체는 매년 입찰을 통하여 선정이 된다. 해마다 5월 1일자로 낙찰을 받은 업체가 기존의 노동자들과 함께 설비 업무를 한다.

최저 금액을 써낸 업체가 낙찰이 된다. 용역업체는 말 그대로 노동력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얼마에 낙찰이 되었는가에 따라 설비용역 노동자의 처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 년 단위로 계약이 되는 노동자들은 어느 업체가 얼마에 낙찰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오락가락하게 된다.

  오륙십 대의 가장들이 한 달에 백사십만 원 남짓 벌어 가정의 생계를 꾸리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설비용역 비정규 노동자다.

“이게 웬 날벼락 입니까. 공시 금액에 48.2 퍼센트를 적어낸 업체가 선정이 됐어요. 낙찰 금액으로 운영을 하려면 지금 우리가 받는 급여보다 40만 원이 줄어야 가능해요.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죠.”

조영주 씨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말을 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다음 순위가 써낸 금액은 58%라고 한다. 무려 10%나 차이가 난다.

“용역업체가 남기는 것은 인건비인데 그 피해가 어디로 가겠어요. 공시금액의 10%를 쓰든 5%를 쓰든 상관없이 최저가 업체에 공사를 주는 게 문제에요. 서울메트로는 용역업체 노동자가 어찌되든 자신들의 비용만 줄이면 그만이라는 거죠. 복사용지나 볼펜 같은 사무용품이 아닌 사람의 밥줄이 담긴 용역업체 입찰에서 말이죠.”

더욱 노동자를 불안에 떨게 한 이유는 낙찰을 받은 (주)태광실업이 보인 모습 때문이다.

“어제(23일) 낙찰자가 결정이 되었는데, 태광실업은 이미 4월 18일부터 국내에 손가락에 꼽히는 취업알선업체에 설비용역 노동자 구인광고를 냈어요. 업체가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고용승계가 되었던 게 관례였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싼 노동자들을 끌어다 운영하겠다는 거잖아요.”

조영주 씨는 (주)태광실업이 구인광고를 시작한 것은 “노동자를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처럼 살 처분하겠다는 경고”라고 주장을 한다. 서울메트로 앞에 모인 까닭은 “노동자의 생존과 고용을 위협하는 최저가 낙찰제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써서 공사를 따낸 태광실업과 서울메트로는 계약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숟가락과 노란 냄비를 두들기며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는 설비용역 노동자의 노랫소리에는 끓어오르는 설움이 가득 배어 있다.

조영주 씨와 서울메트로 설비용역노동자는 서울메트로에서 일을 하지만 서울메트로 본사에는 들어갈 수 없다.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 본사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메트로의 노동자인데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서자’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집회를 하는 노동자들은 억울해 한다. 준비해 온 숟가락과 노란 냄비를 두들기며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는 설비용역 노동자의 노랫소리에는 끓어오르는 설움이 가득 배어 있다.

그 흔한 노동조합의 조끼조차 입지 않은 늙은 노동자들. 담장 아래 그늘은 더욱 길게 늘어나기만 한다. 지난주만 해도 수은주가 삼십도 가까이 솟구치더니, 오늘 따라 날은 차갑고 바람은 거세다. 추운지 연신 옷깃을 여민다.

백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던 서울메트로 비정규직 설비노동자들은 지금 그나마의 밥그릇마저 찌그러져 있다.

기자 한 명 찾지 않은 그늘진 땅에서 집회를 하는 늙은 노동자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쇠사슬 묶인 듯 끄렁끄렁 쇳소리가 난다.
덧붙이는 말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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