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강변 천막의 발꼬랑내 부처님

[작가들 운하를 말하다] (14)

서울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생명의 강을 모시며 봄 마중 나선 순례자들

영하 15도의 북풍한설쯤이야

차라리 살가운 회초리였다

강변 천막 속의 서릿발 경전이었다



한강 남한강 문경새재 낙동강

50일간 1,500리 길을 걸어

시꺼먼 폐수의 지친 몸으로

마침내 춘래불사춘의 봄을 맞이했으니

영산강 새만금 금강을 지나 다시

남한강 한강 봄의 아픈 어깨춤으로 북상하는

풍찬노숙 참회 기도의 머나먼 길



강변 칼바람 속에 천막을 치고

침낭 속 애벌레의 잠을 자다보면

어디선가 무척 낯이 익은 얼굴

늦은 밤 슬그머니 천막 속에 들어와

옆자리 곤한 잠을 자고 있다



너무 오래 병든 강물을 바라보다

쿨럭쿨럭 뒤척이는 박남준 시인 옆에

어느새 아우 형님 사이가 된

스님 목사 신부 교무 바로 그 옆에

천막이 찢어질 듯 코를 고는 예수님

꼬랑내 발꼬랑내 맨발의 부처님

새벽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누대에 걸쳐 흐를 죽음의 장례행렬

한반도 대운구(大運柩)

그 재앙의 길을 미리 지우고 또 지우며

허위허위 걷다가 돌아보면

밀짚모자를 눌러쓴 소태산 종사님

강변 갈대밭에 쪼그려 앉아 훌쩍훌쩍

가녀린 어깨 들썩이는 성모마리아님



먼길 떠나던 겨울 철새들도

다시 오체투지의 자세로 내려앉고 있다
덧붙이는 말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옛애인의 집』『돌아보면 그가 있다』『강물도 목이 마르다』등.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현재,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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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 한반도대운하 ,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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