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천 일, 이제 와서 미안해요”

금속노조 기륭분회, 투쟁 천 일 맞아 사회공동투쟁 진행

어떤 연인이 연애 1,000일을 맞이하면 주변인들은 보통 기나긴 연애를 기특히 여기며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19일, 기쁜 마음만을 전하기 어려운 1,000일을 맞은 이들이 있다. 기륭전자의 문자해고와 불법파견에 맞서 투쟁한 지 1,000일이 된 금속노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다.


기륭분회는 투쟁 1,000일을 맞아 기륭투쟁지지 1,000인 선언을 비롯한 사회공동투쟁 주간을 진행하고 있다.

구로공단에 위치한 기륭분회를 찾은 17일, 오후 개관식이 예정된 천막미술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찾아가는 내내 천 일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승환의 노래 ‘천일동안’이 떠올랐는데 한 조합원이 그 노래를 작게 읊조리고 있었다. 몇 소절을 부르다 멋쩍은 듯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세 시에 예정된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선언자대회’ 준비를 위해 조합원들이 굳게 닫힌 기륭전자 정문에 피켓과 선전물을 부착하기 시작한다. 기륭분회 조합원의 ‘난입’을 막기 위한 철문이 투쟁의 선전대로 ‘활용’되는 것이다.

선언자대회 시작에 20명 남짓이었던 대오가 끝날 무렵에는 50명이 조금 모자라는 숫자로 늘었다. 선언자대회 중간중간 기륭분회 조합원과 함께 선언자대회를 준비한 단체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하철역 내려서 마을버스타시고요... 아직 진행하고 있어요” 같은 선언자대회 안내 통화였다.

선언자대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륭전자 정문 앞에 노상식당이 준비됐다. 꾸준히 연대해 온 지역주민이 준비한 김치와, 주변 식당에서 날라 온 반찬으로 차려진 저녁상이다. 주변에서 딴청을 피우고 있던 사람들에게 “빨리 와서 식사해요”라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손짓을 한다.


해가 떨어질 무렵 ‘기륭갤러리’ 개관식이 열렸다. 민중의 삶을 그려온 미술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하나씩 모아 마련해 기륭전자 정문 앞에 설치한 ‘천막’ 미술관이다. 미술인 100명은 기륭의 천일 투쟁을 담은 걸개그림과 조각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미술관 설립을 위해 손을 보탠 미술인들이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한 마디씩 건네는데, 대부분 “그 동안 거의 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왔다”는 반성문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들 뒤로 숨어버렸다. 낮에 열렸던 선언자대회에서도 이런 종류의 발언들이 있던 터였다.

김소연 분회장은 “사측이 ‘비정규직 투쟁의 중심이 되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고 할 때 아니라고 했지만 한 편으로 기분이 좋았다”며 “투쟁 천일이 되니 안 보이던 얼굴을 보여줘 고맙다”고 반성문을 제출한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개막식이 끝나고 시인들과 민중가수들의 시낭송과 노래공연으로 문화제가 진행됐다. 공장 점거농성을 담은 동영상이 나올 때 조합원들은 “또 그 영상이냐”고 말했지만, 상영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화제를 마친 후에도 참여자들은 자리에 남아 술과 음식을 나누며 연대의 밤을 보내고 투쟁 천 일의 또 다른 하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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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금속노조 , 기륭전자 , 기륭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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