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선거 그 후, 670일... MB ‘2차 위기’ 원인될 수도

[분석] 엘리트 학교 설립과 경쟁제일주의 곳곳에 ‘폭발성’ 내포

  공정택 당선자 선거 사이트에 올라있는 선거 유세 사진

'670일 남았다.’
오는 8월 26일, 일을 시작해 2010년 6월 30일까지 마감하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임기를 놓고 하는 말이다.

공 당선자 덜미 잡는 대표성과 도덕성

지난 30일 서울시교육감 첫 직선에서 당선 샴페인을 터뜨린 현직 교육감이자 새 당선자인 공정택(74). 그는 남아 있는 이 1년 10개월의 기간 동안 과연 어떤 행보를 할까.

일단 그의 뒷덜미를 잡는 문제들이 놓여 있다. 우선 대표성 논란이다. 서울유권자 808만 명 가운데 공 당선자를 뽑아 준 사람은 겨우 6.2%인 49만9254명뿐이다. 더구나 2만2000여 표라는 근소한 차로 주경복 후보를 따돌린 공 당선자는 서초, 강남, 송파 등 이른바 ‘강남패밀리’ 지역에서 몰표를 받았다. 그 편차는 전체 표차보다 3배나 많은 6만8000여 표나 된다. 이것이 그가 전체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17개 구에서 패하고도 승리한 요인이다. 따라서 ‘강부자’(강남부자)가 밀어준 교육대통령이란 꼬리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성 논란도 그의 앞길을 순탄치 않게 만드는 돌부리다. 유명인사의 이름을 도용해 허위 고문단을 발표한 일, 특수목적고 대비 학원장을 선거총괄본부장에 임명한 일, 수업을 받아야 할 초중고생을 동원해 사진을 찍은 뒤 선거공보에 게재한 일, 석연치 않은 상패를 받은 뒤 'UN 산하기구가 준 교육노벨상’이라고 거짓 홍보한 일 등이 그것이다.

일부 교육단체는 ‘UN상 허위 공표’ 고발 준비

특히 ‘UN 상’ 관련 허위 수상경력은 일부 교육시민단체가 검찰에 정식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법은 허위사실 공표에 대해 무척 엄한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 선거와 교육의 극명한 대척점은 바로 ‘과정’과 ‘결과’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느냐는 것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과 달리, 선거는 결과가 과정까지 모두 흡수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단 일부 보수신문의 말풍선이 가능한 까닭이다.

“서울시민들 ‘평등’ 대신 ‘경쟁’을 선택했다”(조선일보 31일치 A4면)
“전교조 교육감은 안 된다는 서울 유권자의 뜻”(조선일보 31일치 사설)
“반전교조의 승리…MB 교육정책 ‘날개’”(문화일보 31일치 6면)

공 당선자의 선거 뒤 발언 또한 위 제목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3~4년 뒤 초등학교에서 영어로 과학이나 수학 수업을 할 수 있게끔 준비하겠다”(국민일보 1일치 7면 재인용)
“이제 고교 경쟁에 불을 빨리 붙여야 할 때가 왔다.”(세계일보 1일치 9면 재인용)
“선호하지 않는 고교는 학급 감축이나 제재를 가할 것이다.”(서울신문 1일치 1면 재인용)

공 당선자가 내놓은 청사진은 ‘경쟁우선주의’, ‘학력제일주의’, ‘엘리트교육주의’와 맞닿아 있다. 이는 곧 이명박 교육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31일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자인하기도 했다.

엘리트 명문학교 설립 붐과 0교시 등은 폭발성 문제

공 당선자 임기 동안 자율형사립고교(자사고)와 국제중학교, 기숙형공립고, 특수목적고 확대 등 이른바 엘리트 명문학교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공약이기도 한 자사고와 기숙형공립고 설립은 국회가 올해 안에 법을 고칠 경우 당장 내년부터 신설 붐이 일어날 것이다.

이를 통해 공 당선자는 엘리트교육을 선호하는 일부 계층의 지지를 등에 업을 가능성이 크다. 사교육 학원과 부동산 자본뿐만 아니라 ‘학원 사업’에 뛰어든 일부 신문의 환영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명문학교 설립이 ‘엘리트학교 설립 대신, 학교 안 수월성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세계추세’를 거스른 또 다른 귀족학교 등장이란 비판도 거세게 일 것이다. 반대운동에 총대를 멜 이들은 교육시민단체들과 일부 교육학자들이다.

일제고사(학력평가, 성취도평가)와 영어몰입교육(영어공교육강화), 0교시.우열반 확대(학교자율화) 드라이브 또한 강하게 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중고생 생활과 직접 맞닿은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선 ‘제2의 촛불시위’로까지 번질 수 있는 폭발성을 띠고 있다.

공 당선자가 공언한 학교선택제 확대와 학교별성적공개 등은 고교평준화 ‘보완 책이냐’, ‘폐지 책이냐’를 놓고 교육계 보혁세력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문제들은 이명박 정권을 ‘제2의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올 초 ‘영어몰입교육’과 ‘자사고 확대’ 등에 의욕을 나타낸 공 교육감을 놓고 교과부에서조차 “너무 앞서 나간다”는 볼멘소리를 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공 당선자가 공약한 교원평가제 추진 또한 교원단체의 반발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를 반대한 전교조는 물론 그를 지지한 한국교총도 반대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탓이다.

현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교원평가제 방안은 시도교육감이 평가의 방식과 내용을 선택하는 형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 당선자는 학부모들의 ‘부적격교사 퇴출’ 요구를 교원평가제와 연결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강공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

소싸움 내몰릴 아이들, 영원한 상처 될 수도…

“공 교육감은 큰 형님과 같이 덕이 많으신 분이다. 인사 문제만큼은 그 어느 교육감보다도 깨끗하신 분이다.”

공 당선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핵심 측근(서울시교육청 중견 관리)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초중고 학생들의 ‘큰 형님’이 되기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 당선자의 석사학위 지도교수이며 전직 서울시교육감이었던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전 고려대교육대학원장)는 최근 다음처럼 말했다.

“아이들을 운동장에 몰아넣고 소싸움 시키면서 어른들은 즐긴 ‘아동 학대교육’에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 위주 학력신장몰입교육은 반드시 원 위치로 돌아올 것이다.”

공 당선자의 임기는 1년 10개월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한국교육에 ‘웃음’을 줄 것인가, ‘울음’을 줄 것인가?

유 교수의 지적대로 서울교육은 공 당선자 임기가 끝나는 670일 뒤,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소싸움’에 내몰린 아이들의 고통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영원히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취재수첩] 사교육 잡는 고양이가 공교육 강화라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은 공교육의 활성화, 학교교육의 정상화만이 답이다. 강남 방과후학교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한국경제 1일치 A10면 재인용)

지난 31일, 이처럼 당선 ‘1성’을 토해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말이 맞으려면 해방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 공교육이 오히려 퇴보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사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남 방과후학교가 사교육비 절감의 모범’이라니. 이 또한 최근 4년 동안 강남지역이 강북지역보다 사교육비가 덜 들어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다 아시듯, 공 교육감의 사교육 절감 비법은 ‘공교육 강화’다. 공교육이 강화되면 학교 교육에 실망해 학원으로 떠난 학생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울 수 있다는 발상이다. 따라서 수준 높은 공교육을 위해서는 자립형사립고(자율형사립고), 특수목적고, 국제중과 같은 다양한 학교가 필요하다는 레퍼토리다.

이 말이 맞으려면 사교육 ‘몰빵’ 투자로 ‘길러진’ 엘리트에게 수준 높은 엘리트교육을 해온 기존 자립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 재학생의 사교육 참여 비율이 높지 않아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이 또한 정반대다.

2006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 6개 외고 1학년생의 사교육 참여비율은 86.4%였다. 이는 서울 고교생의 사교육 비율 72%(2003년 한국교육개발원)보다도 크게 높은 것이다. 자사고 학생들의 학원과외 비율이 높은 것도 이미 교과부 자료에서 확인됐다.

이처럼 학교 다양화를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사교육을 잡겠다는 공 교육감의 공약은 빈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럴까? 사교육비의 원인 자체가 곧 엘리트 명문중고이고, 명문대학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더구나 학벌주의가 세계 유례없이 판치는 우리나라 사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엘리트학교를 통해 엘리트계층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끊지 않는 한,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장 교육학자들의 말에 공 당선자도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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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감 , 엘리트 명문학교 , 자율형사립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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