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구성원들 '독재-반독재' 프레임 넘어설까

KBS 방송장악 저지 싸움의 실천적 함의

“6월 11일 처음 KBS 앞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했는데, 정연주가 좋은 게 아니다, 정연주가 잘 했다는 게 아니었다. 5년 동안 노무현 다음으로 씹은 게 정연주였다. 국민들은 정연주가 왜 안 나가나 의아스러워 하는데, 촛불집회 시민들과 이야기해보니 정연주가 이뻐서가 아니라 저쪽이 너무 나빠서라고 한다.” (김현석. 6월 23일. 토론회)

지난 6월 23일 공공미디어연구소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이 한 말이다. 김현석 기자협회장은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며 촛불을 든 네티즌의 생각을 비교적 정확히 읽었다. 정연주 사장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으나, 정연주 사장이 이끌었던 참여정부 당시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신뢰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경찰의 보호 아래 이사회가 열렸다. [출처: 언론노조]

감사원의 감사 결과 내용을 요약한 8월 8일 KBS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 결의안. 이사회는 해임 결의의 근거로 경영수지의 적자 구조화 등 6가지를 들었다. 사실 논란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해임 결의안의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닌 듯 하다. 6가지는 내용으로 보나 절차로 보나 정황으로 보나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과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서명을 두고 강명욱 KBS강릉 PD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정연주 사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정사장은 먼지가 안 났다. 대통령이 ‘전과자’인 나라, 내각 전체가 부도덕으로 지탄받는 나라,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계속 터지는 나라에서 그래도 깨끗한 사장 모셨다는 건 누가 뭐래도 자랑스럽다. 정연주 사장이 끝까지 용기있게 버텨주면서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명욱. 8월 11일 20:00. KBS사원행동 문화제)

정연주 사장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부정부패가 없었고, 이사회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두 가지 싸움’의 의지를 밝힌 데 대한 호의의 평가였다.

이처럼 ‘정연주 사장 지키기’ = ‘공영방송 사수’의 국면이 만들어졌고, 8일 이사회의 해임 제청 결의, 경찰 투입,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안 서명으로 이어지는 방송 장악 수순은 ‘독재 망령’을 부르는 일로 간주되었다.

KBS사원행동 출범식에 연대사를 한 성유보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행위가 7-80년대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명박 정권이 하는 행위는 독재의 초대이다. 언론자유 주어졌을 때 목소리 내다가 권력이 바뀌면 순응해 알아서 기겠는가. 70∼80년대, 당시 정권이 언론장악과 동시에 우리 국민들을 뭘로 탄압했는가. 긴급조치, 유언비어라며 탄압했어. 현 정권은 국민들의 비판을 괴담이라 하고 있다. 반대 진영 목소리를 짓밟고, 자기들 목소리만 키우고 있다.” (성유보. 8월 11일 12시 KBS사원행동 출범식)

성유보 상임운영위원장은 20여년 전 독재로의 초대는 “성숙한 시민들의 총 단결에 의해 제2의 6월항쟁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KBS 구성원을 향해 “여러분들이 70∼80년대 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민주운동의 주역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범국민행동 기자회견

범국민행동은 오후 7시 기자회견을 갖고 ‘독재정권의 불법적 KBS 사장 해임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범국민행동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법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를 그냥 보고만 있을 국민은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KBS 사장 해임권이 없음이 분명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억지로 쥐어짜듯이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실정을 언론의 탓으로 돌리며, 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으면 모두 잘 해결될 거라고 최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8월 11일 19:00. 범국민행동 기자회견)

11일 KBS사원행동 발족식에서 양승동 KBS PD협회장은 이사회 개최과정에서 벌어진 경찰 난입에 대해 “1990년 벌어진 민주광장 난입사건보다 더 악질적인 행태”이고, 경찰 난입이 있었던 지난 8일을 ‘칼이 펜을 꺾은 날’로 규정했다.

양승동 PD협회장은 계속해서 “지금의 싸움은 결코 정 사장 개인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 대항하는 싸움”이라며 “이번 경찰 난입에 대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언론탄압 정권의 퇴진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협회장은 유재천 이사장을 끌어내리고 이사회 해체 투쟁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유재천은) 수준 낮은 이사장이다. 직권남용이고 월권이다. 공영방송 언론사 심장부에 경찰을 불러들이는가. 법률 검토 작업을 거치는 대로 검찰에 고발하고 끝까지 응징할 것이다. 나머지 이사도 사퇴시킬 것이다. 이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사회는 방송의 독립성을 이해 노력하라고 만든 거다. 독립성을 지키라고 만든 이사들이 정권의 시나리오에 놀아나고 있다. ... 오늘로서 KBS 촛불집회 두 달째다. KBS 공영성을 지키겠다는 사원들이 참석했고 시민도 함께 했다. 두 달 만에 드디어 KBS 계단에서 하나가 되었다.” (김현석. 8월 11일 KBS사원행동 문화제)

한편 이성규 한국독립PD협회 방송장악저지비대위원장은 9일 ‘새장을 박차고 나오자’는 글을 통해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장악 저지는 방송인의 양심”임을 호소했다. 스스로 “쉽게 말해 하청직원”이라고 밝힌 이성규 비대위원장은 KBS 내부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불평등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들(KBS) 내부에 의해 자행되는 노동의 불평등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외주제작의 불공정 관행입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 KBS란 조직 내부에서 다소 진보적인 경향을 보이는 인사건 수꼴이건 아니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중도파건 이들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외주 제작인력의 인권이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착취자의 입장이 됩니다” (이성규. 8월 9일 블로그)

이성규 비대위원장은 반정연주 사장의 최전선에 서야 할 집단이 독립PD이지만,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정연주 일병 구하기’를 감수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정연주 사장은 적자 경영의 압박 속에서 내부의 경영문제나 정규직 인건비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만만해 보이는 외주제작사의 제작비를 30에서 40%를 삭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권리와 의무는 ‘갑’인 방송사가 가져가고 모든 책임은 ‘을’인 외주제작사에게 떠넘기는 불공정 관행은 너무도 당연한 듯 자행됩니다. 이것은 불공정 거래의 최악입니다. 그러기에 이른바 '반 정연주'의 최전선에 서야 할 집단은 바로 독립PD입니다.” (이성규. 8월 9일 블로그)

유재천 이사장의 경찰 투입 요청이 사실로 확인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서명이 이루어지면서 ‘정연주 사장 지키기’ = ‘공영방송 사수’ = ‘촛불 민심’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 여기에 KBS사원행동이 언론 탄압 분쇄를 위해 힘을 모으면서 KBS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연주 사장에 줄곧 반대 입장을 취해왔던 KBS노조도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비켜나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사장 공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형편이다.

13일 KBS 임시이사회가 열리고, 정연주 사장이 가처분 등 법적 소송을 거치면서 ‘방송 장악’ 대 ‘공영방송 사수’의 대립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태도로 본다면 속전속결할 것으로 보인다. 광우병 쇠고기 정국에 이은 방송 장악 정국은 말하자면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의 부활의 성격을 띤다. 그만큼 대립의 성격이 선명하다.

방송 장악 저지가 급한 불임에 틀림 없고, KBS사원행동이, 범국민행동이 ‘장악 저지, 탄압 분쇄’로 힘을 쏟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러나 빈 곳이 많아 보인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정부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공영방송의 실체는 무엇인지, 미디어운동 진영이 올해 초 미디어운동 전망을 고민하며 던진 미디어공공성의 실현은 무엇인지, 미디어를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사유화 공세에 대응하는 운동진영의 전략은 무엇인지 따위이다.

가령 KBS 구성원들이 공영방송 장악 기도에 분노하는만큼, 같은 날 발표된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사회구성원에게 미칠 영향을 놓고, 60일이 넘는 기륭전자 노동자의 단식투쟁을 놓고 ‘공영’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은 ‘정연주 사장 지키기’를 싱거운 소리로 일갈했다. 9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정연주’라는 글에서 “착한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고작 정연주 같은 자를 지켜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라며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것이 공영방송이라고 정의했다.

“개인 정연주가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정연주?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겐 KBS가 공영방송인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인민의 처지에서 KBS는 공영방송인 적이 없다. 이를테면, KBS가 FTA나 비정규노동자 문제를 반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공영방송이란 ‘사장과 대통령이 사이가 안 좋은 방송’이 아니라, 힘없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서 자본/지배계급과 긴장을 이루는, 그래서 세상이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돕는 방송이다.” (김규항. 8월 10일. 블로그)

이에 대해 이성규 비대위원장이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하고, 신기섭 언론인이 “이런 논리는 냉소로 비칠 수도 있고 패배주의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무엇보다 과정과 사태의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 그것도 눈에 보이는 결과만 논하는 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기섭 언론인이 관심을 둔 것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질적으로 변화시켜내는 노력과 방안이 무엇인지에 있다. 신기섭 언론인은 10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과정, 원인을 무시하는 결과론자들’에서 좌파의 능력, 의지, 전략을 물었다.

“고민할 것은, 공영방송이 더 나빠지는 걸 막는 싸움의 과정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의 의미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서 싸움을 질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른바 '좌파들'이 싸움의 본질을 바꿀 능력, 의지, 전략이 있느냐지, 이 싸움의 본질이 아니다.” (신기섭. 8월 10일. 블로그)

‘인민의 방송’을 지향으로 놓고, 질적 싸움을 잘 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경로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자고 한다면 억지 봉합 같지만, 한 논객의 ‘정의’에 대한 한 언론인의 ‘트집’은 조금 더 말다툼을 할 필요가 있겠다.

KBS사원행동이 KBS 담 밖 일에 대한 KBS 구성원의 첫 행보라는 점을 상기하되, 미디어구성원들이 ‘방송장악 저지’ 실천에 머무르지 않도록 연대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일수록 ‘공영방송’의 제 역할과 미디어공공성 과제에 대한 안팎의 폭넒은 사유의 조건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담 밖 첫 행보에 나선 KBS사원행동이 이 싸움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에 담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영’의 그릇에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참여정부 당시 파병, 황우석과 의료선진화, 한미FTA, 비정규법 개악 등신자유주의 정책에 수수방관하며 나 몰라라 했다는 평가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지금 가령 기륭전자 노동자의 싸움을, 공공부문 사유화저지공동행동의 실천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점을 충족할 수 있어야 방송 장악의 '작은 패배' 속에서도 곧은 공영방송의 심지를 심는 '큰 승리'의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일을 텐데.

KBS를 둘러싸고 형성된 '독재 대 반독재'라는 일시적 전선의 질적 변화를 추동하는 과정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