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생활세계로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 맙시다

[현장기자] ‘전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자는 한재각의 글(레디앙) 코멘트

8월 14일 레디앙에 한재각님이 <'전진'이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자>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재각님의 좋은 글과 생각에 많이 동의합니다.

최근 진보신당의 당 지지율이 0.9%. 그리고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아고리언 등 집단지성들에 의한 네트워크적 힘의 폭발력 등을 인정해야한다면, 정치적 수요자인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정당의 존립방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당과 유권자의 관계에서, 유권자가 ‘독립변수’이고 정당은 ‘종속변수’라고 생각됩니다.

즉, 정당은 유권자들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면서 그 속에서 기능하면서 살아가야 목숨을 부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진’은 거꾸로 유권자에게 사회주의를 공급하려고 합니다. 이게 민주적인 사고일까요. ‘이념정치’에서 ‘생활정치’로 내려와야 한다고 봅니다.

전진이 이념세계에서 생활세계로 내려오지 않고(즉, 공부하지 않고, 생활인들과 언어와 눈높이로 소통하지 않고,) 너무나 쉬운 방식으로 너무나 매너리즘적으로 사회(사민)주의든 특정이념에 기대어 풍부한 현실을 재단하고 겉으로는 진보를 주장한다면, 아무래도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올 수 도 없으며, 매력없고 한심한 집단으로 보이겠지요.

최근 진보신당 지지율 0.9%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유권자들의 냉정한 시각이고 평가일 것입니다. 이런 조건하에서 사회주의를 전면화한다는 것은 이른바, '정당정치'를 안하고 ‘집권의지’가 없고, 만년 찌질이로 살겠다는 일종의 진보정치 포기선언과 같다고 봅니다. 따라서 오늘날 바람직한 대중정당의 모습은 정파들이 판치는 ‘전위정당’보다 철저하게 ‘유권자 중심정당’이 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80년대만 해도 사회주의를 보급해야 하는 사회주의 전도사들이 나름대로 인정받기도 하고 인기도 있었지만, 2000년대 정보화에 따른 소통과 네크워크를 통한 집단지성이 화두가 되는 시대상황하에서 과거와 같은 전도사 역할들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한만큼, 이제 무거운 전도사의 역할과 기능 줄이고, 누구나 집단지성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열린 마음으로 함께 배우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작은 ‘전진’이 절대 진리의 ‘이념세계’에서 생활인들이 시행착오하며, 희노애락하며, 살고 있는 ‘생활세계’로 내려오는 것일 겁니다. ‘전진’이 생활세계로 내려와서 생활인들의 언어와 습관을 익히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과 함께 그들이 바라는 ‘공감하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일 겁니다. 더 이상 생활세계로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