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읽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현장기자석]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 3일차 - 2008년 9월 4일 목요일

하늘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처럼 매끄럽고 고왔다. 초가을 햇살로 흥건히 젖은 온 세상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데 시야에 이랜드 월드컵 노조의 천막 농성장이 들어왔다. 나는 월드컵경기장역 전동계단을 벗어나 천막 쪽으로 갔다.

천막 옆에서 펄럭이는 깃발과 그 곁에 놓인 스피커와 천막 주변 이곳저곳에 놓여 있는 피켓들이 보였다. 역 입구를 따라 세워진 철제 난간에는 이랜드 자본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조합원들은 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피켓들을 정리하고 있는 이경옥 부위원장에게 인사를 했다.

홈에버 상암점 입구 옆에 우중충한 전경 버스들이 보였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경비 업체 직원인지 용역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은 무전기를 하나씩 든 채 표정 없는 얼굴로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매장 앞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전경 버스는 매장 입구 근처에 다 합쳐 세 대가 있었고 무장을 하지 않은 전경들이 무전기를 들고 두셋씩 짝을 지어 돌아다녔다. 다른 매장 입구에도 우람한 용역들이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험상궂은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무엇이 무서워서 저런 한창때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매장을 지키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조합원들이 쇠파이프라도 들고 덤빈단 말인가? 화염병이라도 던진단 말인가? 일터로 가게 해달라는 것이 전부인 홈에버 아주머니들은 박성수 회장에게는 누구를 동원하든 맞서 싸워야 하는 적수일 뿐,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대는 될 수 없단 말인가? 공권력의 졸개가 되어, 혹은 용역 업체의 하수인이 되어 자기 젊음을 콸콸콸 낭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나는 안타까웠다.

노란 티셔츠가 눈에 확 들어왔다. KTX 노동자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노란색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좋아라고 풍선을 받아 들어 깔깔거리며 매장 주변을 뛰어 다녔다. 나는 아이들 곁에 다가가 풍선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어 보았다. 샛노란 풍선에는 ‘이랜드는 나쁜 기업 사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곧 월드컵 분회 조합원들과 사회진보연대 사람들도 풍선을 들고 나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풍선을 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드르륵거리며 쇼핑 수레를 밀고 다녔다.

매장 입구 주변에 놓인 피켓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소비자의 힘! 불매 운동 참여! 이랜드 사태 해결의 지름길!’
‘이랜드의 불법, 탈법 행위를 엄정하게 처벌하라!’

아무렇지도 않게 매장 쪽으로 돌아서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저께 이대 후아유 매장 안에서도 보고 어제 홈에버 시흥점 앞에서도 본 그 덩치 큰 사람이 오늘도 홈에버 월드컵점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용역 업체 간부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눈살을 한 가득 찌푸리고는, 몹시 더위를 타는지 손으로 연방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네 시가 되자 선전전이 끝나고 집회가 열렸다.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이 모여 앉으니 오십여 명 정도 되었다. 홍윤경 사무국장이 사회를 보았고 이경옥 부위원장이 나와서 첫 발언을 했다.

“여러분 저 식상하시죠? 저도 이제부터 사회를 봐야겠어요. 발언만 너무 많이 했어. (웃음) 오늘은 풍선으로 어린 아이들을 조직해서 부모님들이 이랜드에 가지 않도록 했는데 그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매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죠? 아이들이 엄마들 못 가게 했겠죠? (웃음) ......우리 위원장이 출정식 때 발언하면서 민주노총이랑 서비스연맹한테 한 마디 했더니만 민주노총과 서비스 연맹이 6일과 10일 투쟁을 받아 안아 우리와 함께 투쟁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보겠습니다. (웃음) (9월 6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관으로 홈에버 상암점에서, 10일에는 서비스연맹 주관으로 역시 홈에버 상암점에서 집회와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 글쓴이) ......뉴코아 동지들은 우리가 방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뉴코아 동지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투쟁합시다.”

이어 KTX 노동자가 나와 발언을 했다.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저희가 투쟁하면서 느꼈던 공포심이나 희망, 눈물 같은 것들을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이 느껴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로 정말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저희는 920여 일째, 3년째 투쟁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제 그 정도면 됐다고, 그만하라고 하지만 저희는 KTX가 개통할 때 함께 일을 시작한 승무원들이라 저희가 KTX의 진정한 조강지처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3년간 투쟁하면서 안 해 본 투쟁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안 해 본 투쟁을 해 보기로 하고 지금 서울역에서 고공 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투쟁을 하면서 연행됐을 때보다, 철탑 밑에서 위에 있는 동지들을 올려다보는 지금이 더 힘듭니다. 서울역 조명탑은 굉장히 오래된 철탑입니다. 전철 지나가면 진동도 심합니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린다고 합니다. 위에 올라가 있는 다섯 동지들의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용변 문제가 가장 심각해서 지금 그 동지들은 먹는 것도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저희는 고공 농성이 안되면 다른 계획을 세워서라도 KTX로 돌아가서 일을 할 것입니다. 저희가 천 일 가까이 싸우고 기륭이 천 일을 넘겼다고 해서 이랜드도 그만큼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이랜드도 하루빨리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TX 노동자가 발언을 하고 있는 사이 홍윤경 사무국장이 대오 뒤쪽에 앉아 있는 내게로 와서 연대 단위 발언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서울 서부 비정규직 센터 준비 모임’의 회원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거듭 사양했지만 옆에 있던 센터 동료가 아무래도 한 번도 발언한 적이 없는 내가 덜 식상할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근 오륙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언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순식간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이어 사회진보연대 사람이 나와서 발언을 했는데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생각들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고 있는데 홍윤경 사무국장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성수 회장이 이랜드 중역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2000년까지는 노동조합이 뭔지 몰라서 당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절대로 당하지 않겠다. 그때 노조 간부들을 다 해고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 간부는 아마 저를 말하는 거겠죠? (웃음)”

잠시 후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서울 서부 비정규직 센터에서 연대하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어제도 보니까 뒤쪽에서 수첩에 계속 뭔가를 적고 계시던데 저는 처음엔 기자신줄 알았습니다. 발언 들어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적고 계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홍 사무국장은 아마도 발언을 잘 못한다는 내 말을 듣고는 화젯거리를 미리 만들어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운을 띄워 주었을 것이었다. 나는 그 배려가 고마웠다. 일어서서 나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 제가 원래 세 사람 이상 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합니다. (웃음) 지금도 가슴이 콩닥콩닥 하는데, 제가 큼직큼직한 얘기를 잘 못하기도 해서, 그냥 나오는 대로 편하게 이야기할게요. 저는 밥 먹고 잠자고 밥벌이하는 시간을 빼면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글 쓰는 거랑 담배 피우는 일입니다. (웃음) 제가 글은 잘 못 쓰지만 글 쓰는 걸 참 좋아해서요. 그래서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을 1일차부터 쫓아다니면서 취재를 했고 그걸로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써도 실어주는 곳이 없는 거에요. (웃음)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이리저리 보내 보기도 했는데 제 글이 저질인지 다 거절당하고...... 집중 투쟁이 끝나면 글이 한 오십여 장은 나올 것 같은데 그것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이 끝날 때까지 하루하루를 글로 써 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나는 되는 대로 무언가를 더 지껄였던 것 같다. 내 얘기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발언을 끝낸 후 멋쩍어하며 다시 대오 뒤쪽으로 돌아갔고 사람들은 다시 구호를 외쳤다.

“홈에버에 가지 마요!”
“비정규직 철폐하라!”

다섯 시 십오 분 쯤에 집회가 끝났다.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은 다시 선전전을 하기 위해 유인물과 풍선을 챙겨 들었다. 천막 옆쪽에서는 진보신당 은평구 당원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카레라이스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소변이 보고 싶어져 홈에버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분홍색 웃옷을 입은 시커멓게 생긴 용역이 나를 가로막았다.

“어디 가려구요?”
“화장실 좀 가려는데요.”
“화장실 이용 못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세요.”

뭐지? 나는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등을 돌렸다. 비정규직 센터 동료에게 방금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저도 이제 얼굴이 팔려서 그런지 화장실도 못 가게 하네요.”

“미친놈들. 왜 사람이 들어가는 걸 막아? 왜 막느냐고 좀 싸우지 그랬어요. 오늘 집회 때문에 애들이 민감해졌나? 아니면 쟤들 경비업체 직원이 아니고 그냥 체대에서 알바 뛰러 온 애들일 수도 있어서 그럴 거에요. 그런 애들은 개념이 없으니까.”

나는 슬그머니 다른 쪽 입구로 갔다. 역시 용역이 서 있었지만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유유히 들어가 볼일을 보고 아까 그 분홍색 웃옷을 입은 용역이 서 있던 입구 쪽으로 나왔다. 일부러 그 용역 옆으로 지나가자 그는 못마땅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았다.

선전전을 하기 위해 조합원들과 연대 단위들은 풍선과 유인물을 들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나는 센터 동료와 유인물 한 뭉치를 들고 홈에버 매장 입구 쪽으로 갔다.

조합원들과 함께 매장 입구 바로 앞에서 유인물을 나누어 주려고 하자 용역들이 거칠게 몸으로 막아서면서 “인도 바깥에 나가서 하세요”라고 윽박질렀다. “우리가 뿌리겠다는데 왜 그래? 니네가 뭔데?” 조합원들이 항의하자 한 용역은 마구 삿대질을 하면서 “아, 그럼 집회 신고서 내고 해요. 여기 집회 신고 하고 오시라구요” 숫제 시비조였다. 나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몇 장 쥐어주고 있는데 용역들이 오더니 인도 밖으로 나가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못 들은 체했다. 다른 조합원들은 피켓을 들고 매장 입구 앞에 말없이 서 있었다.

용역들은 계속 우리 주위를 얼쩡거리며 유인물을 못 나누어주게 방해했다. “나가서 하라구요. 나가서.” 센터 동료가 “인도 밖으로 나가면 누구한테 어떻게 나눠 줘요?”라고 항의해도 쇠귀에 경 읽기였다. 기어이 센터 동료가 용역의 말을 무시하고 유인물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쥐어주려고 하자 용역은 센터 동료를 통나무 같은 팔뚝으로 밀치며 대놓고 싸움을 걸었다. 그러고는 히물히물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쪽이랑 싸우기 싫거든요?”

아무래도 매장 입구 쪽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 테니 그쪽에서 유인물 나누어 주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든 저지하라고 용역들도 교육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들은 돈 받고 몸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배운 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킬킬대고 있는 거대하고 어두운 힘이 멋대로 용역들과 우리들을 싸움 붙이고 있다는, 그 지긋지긋하고 진부한 구도를 떠올렸다. 저 사람들도 분명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어렸을 적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할 것이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것이고 슬플 때는 울음을 쏟고 그럴 텐데...... 이렇게 험악한 얼굴을 들이대는 모습 말고, 나는 용역들이 친구와 술 한 잔 먹거나 애인과 팔짱을 끼고 걷거나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용역들을 차마 미워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유인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고 그들은 그런 우리를 방해해야 했다.

소심한 나는 용역들에게 잘 안 보이는 구석으로 가서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띄엄띄엄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한 장씩 쥐어 주고 있는데 문득 위를 쳐다보니 축구장으로 들어가는 저 위쪽 계단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어차피 용역 아니면 경찰이었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아서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매장 기둥에 붙어 있는 한 광고지가 눈에 띄었다.

인원 모집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함께 근무할 사원을 모집합니다
모집부문 : 계산원
인원 : ○○명
지원방법 : 당사 1층 고객만족센타 방문객
급여 : 당사 급여규정에 준함
지참서류 : 사진부착란 자필 이력서 또는 사진 1매를 지참 후 1층 고객만족센타에 내사하여 당사 양식에 작성
기타사항 : 보훈대상자 우대 / 근무 시간 조정 가능

누군가가 내 등에 대고 얼음을 문지르는 듯 나는 섬뜩했다. 말 안 들으면 무조건 해고하고 징계하는 무시무시한 홈에버로 누구를 초대하겠다고? 아무 감정 없는 듯한 사무적인 말로 쓰여 있었지만 글자 뒤에서는 노동이라는 단물만 쏙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음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범의 아가리 같은 곳으로 걸어 들어갈 새로운 사람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여섯 시가 되고 선전전이 끝났다. 카레 향기가 솔솔 풍겼다. 사람들은 일회용 용기에 밥과 카레를 담아 김치와 단무지를 곁들여 가며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감자가 왜 이리 안 익었어?”
“그냥 먹어 임마.”
“어, 진짜 안 익었어요?”
“뭘 그리 심각하게 물어봐?”
“맛 보다는 동지애로 먹겠습니다!”

사람들은 하하 호호 웃으며 둘러앉아 오순도순 밥을 먹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멀찍이 다른 곳에 앉아 혼자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줄곧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겨울 눈송이 같은 구름들.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들의 투쟁 일수가 하루 더 늘어나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천막 앞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괜한 감상에 젖어 버렸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문득 매장 안을 한 번 두루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는 밝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은 판매원이 추석 선물 세트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니 판매원은 내 쪽을 향해 간드러지는, 혹은 충분히 훈련 받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고객님, 어머님 아버님께 해드리면 좋은 선물입니다.” 시식 코너에서 버섯을 열심히 볶는, 멸치 선물 세트 앞에 서서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반사적으로 “고객님”을 부르는, 산더미 같은 상품들을 허리를 굽히고 정리하고 있는, 계산대에서 돈과 기계와 손님들과 상품들에 부대끼고 있는, 그 외에도 밥벌이를 위해 땀 흘려 가며 일하고 있는 매장 안 모든 여성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의자 없이 서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만 할까? 앉아 있으면 고객님들이 불쾌하게 생각할까? 몸이 편해지면 정신이 느슨해지기라도 할까? 고객님들은 서서 다니는데 감히 노동자인 주제에 앉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주제넘은 행동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많고 많은 상품에 눈이 지쳐 나는 매장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졌고 어느새 천막 앞에서는 투쟁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퇴근한 직장인들과 수업이 끝난 대학생들이 계속 오고 있는지 사람들이 아까보다 늘어난 것 같았다.

이랜드 월드컵 분회 몸짓패 ‘신화’가 첫 공연을 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촛불을 밝혀 자기 자리 앞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이어 서울 노원구에서 왔다는 한 시민이 ‘오카리나’라는 악기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음악이다 싶더니 백지영의 ‘사랑 안 해’였다. 그 시민은 그 뒤로 몇 곡을 더 연주하고는 환호성을 받으며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진보신당 은평구 위원회에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라기보다는 할머니에 조금 더 가까운 분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저는 데모라고 하는 건 무조건 나쁜 건 줄 알았어요. 데모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고, 정말 그렇게 데모만 하다 보면 북한에서 쳐들어와서 전쟁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문제 때문에 촛불 집회에 나가 보고 나서야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저도 물대포 맞아서 입원하고 그랬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다가 진보신당에 가입하게 됐어요. 근데 가입하고 나니 또 제가 모르고 있던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은 거에요. 난 쇠고기 안 먹겠다고 집회 갔는데 다른 곳에서는 밥을 먹겠다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어요. 제가 예수를 믿거든요. 그래서 기도를 드렸어요. 하느님, 왜 가난한 사람들만 힘들고, 잘 사는 사람들은 왜 점점 더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는 것입니까...... 저도 이랜드 동지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까 카레 만들 때 장도 봐 오고 그랬어요. (웃음)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자리 있으면 꼭 참여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민중가요 가수 견명인 씨의 공연이 있었고 이어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서부지회 지회장 이부덕 선생님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제가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쳐요. 처음에 저보고 도덕을 가르치라고 했을 때 솔직히 많이 당황했는데 수업을 하다 보니까 교과서 밖에 있는 도덕을 가르치게 돼서 오히려 더 좋았어요. 아이들이랑 이랜드 투쟁 동영상 보면서 토론도 하고, 너희들 어머니 같으신 분들이 왜 저렇게 고생을 하고 계실까 하는 이야기도 같이 나누고 그랬어요. 아이들도 막 화를 내고 흥분을 하죠.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고. 어느 날은 한 아이가 오더니 저한테 얘기를 해 주는데, 엄마가 옷 사준다며 2001 아울렛 데리고 간다는 걸 말려서 결국 시장에서 옷을 샀다고 자랑을 하는 거에요. 그래도 아직은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투쟁하면서 가장 힘든 게 바로 외로운 것입니다. 여러분들 외롭지 않도록 저희 전교조 초등지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발언을 마친 이부덕 지회장은 이경옥 부위원장에게 투쟁지원금 백만 원을 전달했다. 박수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아까보다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대강 헤아려 보니 백여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랜드 조합원들의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기) 공연이 있다고 했다. 밤을 새워가며 가사를 지었다는 조합원 셋이 나와서, 가사를 써놓은 종이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내게 오랜 친구 같은
사랑스런 동지가 있어
투쟁할수록 함께 투쟁할수록
내게 항상 힘이 돼 준 동지
투쟁이 힘들어 외로워할 때면
친구처럼 내게 다가와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언제나 힘을 주는 동지
우리 투쟁에 함께 하는 동지들을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모르는 노래여서 원곡이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사는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첫 곡을 끝내고 바로 넘어간 두 번째 곡은 다행히도 내가 아는 ‘소양강 처녀’였다.

까르푸 홈에버로 바뀐 지 2년
이제는 홈플러스에 매각하고 떠난다네
비정규 노동자들 불법 해고
카드깡 세금포탈 불법으로 하다가
아아 나 모른다 팔아 버리면 끝난 건줄 아냐
까르푸 홈에버로 바뀐 지 2년
이제는 홈플러스에 매각하고 떠난다네
직원들 앞세워서 불법 저지르고
모른다 발뺌하면 안 걸릴 줄 알았니
아아 나 모른다 팔아 버리면 다 된 건 줄 아냐

사람들은 웃으며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이대 몸짓패 ‘투혼’의 공연이 있었고 다음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아, 지겹습니다. (웃음) 이젠 천막도 파업도 박성수도 지겨워요. 근데 나중에 승리해서 우리가 현장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날씨 좋은 밤에 문화제 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습니다. 물론 생계비 받은 거 다음으로. (웃음) ......우리는 지금 추석 집중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이랜드 자본을 끝장내기 위한 투쟁이고 많은 연대 동지들과 함께 하고 있는 투쟁입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민주노총 주관으로 집중 투쟁이 있습니다. 동시다발 1인 시위도 준비되고 있구요. 기륭 전자, KTX, 이랜드...... 정말 9월엔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요새 자주 생각합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달이 9월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구호 외쳐 볼까요?

이랜드에 가지 마세요!
홈에버에 가지 마세요!
아울렛에 가지 마세요!
뉴코아에 가지 마세요!
아이쇼핑만 하세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마지막 구호를 따라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이어 김성만 씨의 공연이 있었고 그 공연을 끝으로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 3일차 일정은 모두 끝났다.

연대 단위와 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뒤풀이가 천막 앞에서 있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데 홍윤경 사무국장이 내게로 와서 오도엽 시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내가 이랜드 투쟁을 쫓아다니며 쓰는 글을 어딘가에 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도엽 시인에게 연락처를 주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어디에 실리게 되든 말든 혼자서라도 글을 쓸 작정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어야 이랜드 노동자들에게도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뒤풀이에서 술을 들이키는 순간순간, 나는 내가 써야 하는 글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시선으로 이 투쟁을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시점으로 글을 써야 할까? 노동자들의 싸움에 구경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글을 써서는 안되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만 이어 붙이는 기행문 같이 써서도 안되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쓰는 글은 이랜드 투쟁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어야 했다.

내가 글 따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술만 마셨다. 무엇이 되어 나오든 일단 써 보는 수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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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곳곳이 눈물나는 투쟁의 현장입니다. 성신여대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이 투쟁을 시작했어요. 매일 함께 있느라 홈에버에 못갔는데..이 기사를 보니 집회 분위기나 함께한 동지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10일날은 성신투쟁하는 동지들 손잡고 꼭 가서 이랜드 동지들도 ktx동지들도 만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