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에 가지 마십시오! 홈에버에 가지 마십시오!”

이랜드 추석 집중 투쟁 5일차 - 2008년 9월 6일 토요일

집중 투쟁 4일차 원고를 쓰다가 또 집에서 늦게 나오고 말았다. 오늘은 민주노총에서 주관하는 집회가 낮 세 시에 홈에버 상암점에서 있다고 했지만 나는 서울 서부 비정규직 센터 준비모임(줄여서 서비센터)이 명동 후아유 매장에서 진행하는 선전전에 가기로 미리 약속했었다. 명동뿐만 아니라 불광동과 종로, 신촌에서도 이랜드 계열사 매장 앞에서 다양한 연대 단위들이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집회 신고서도 내지 않고 쳐들어가는 기습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한몫 단단히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이랜드 자본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작정이었다.

두 시까지 명동 후아유 매장에 모이기로 했지만 나는 허둥지둥 늦게 나온 탓에 세 시가 넘어서야 명동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와 보니 늦여름 햇살은 사정없이 아스팔트를 달구어 대고 있었고 명동 거리는 한여름 해수욕장처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눈부신 햇빛 덕분에 눈을 반쯤 내려감은 채, 나는 정신을 얼른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명동 후아유 매장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인터넷에서 본 약도를 떠올리며 궁리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 신세계 백화점이 보였다. 지난 8월 15일, 100차 촛불 집회 때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시퍼런 물대포를 맞으며 전경들과 맞서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찰의 모습을 한 인간 사냥꾼들에게 이리저리 쫓기며 달음질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지금은 경적 소리만 요란할 뿐 어디에서도 그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우가 암탉을 채 가듯 사람들을 잡아가던 무시무시한 공권력은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도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적당히 분주했고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헤치며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후아유 매장을 찾았다. 명동 성당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어귀에 벌써 서비센터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곳곳에 서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다. 나도 ‘추석 선물은 이랜드에서 사지 맙시다’가 적힌 선전물을 등에 붙이고 피켓 하나를 건네받아 매장 근처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서는 서비센터를 오며가며 얼굴을 익힌 여자 회원 둘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편하게 입은 옷차림이 아니라 마치 공작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화려한 깃을 달고 다니는 것처럼 사람들은 뭔가 지나치게 꾸며 놓은 듯한 옷을 입고 거리를 누볐다. 지금 이 곳을 이런 차림으로 지나가는 것이 몹시 행복하다는 듯 사람들은 자꾸만 웃었고 서로서로 얼굴을 보며 깔깔거렸다. 나는 ‘WHO.A.U 넌 누구냐? 비정규직 탄압 악질 기업!’이라 쓰인 피켓을 들고 서서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예수사랑 선교회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다녔다. 넓게 보면 동업자요 좁게 보면 경쟁자 인가? 저런 선전전 없이는 이제 예수도 안 믿는 세상이 됐나?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후아유 매장 입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서비센터 회원이 웬 경찰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장에서 민원을 넣었든지 아니면 근처를 순찰하고 있던 경찰이 괜한 시비를 걸어오는 것일 게 뻔했다. 그쪽으로 가 보니 경찰은 금세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자꾸 우리가 법을 어기고 있다고 하면서 시비 거는 거죠 뭐. 어차피 집회 신고서도 안 냈으니까. 일단 계속 진행하다가 용역이나 경찰이 더 와서 제지를 하면 그때 가서 철수하도록 합시다.”

1인 시위는 법률상 시위가 아니어서 집시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피켓을 들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결국 제각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하지만 후아유 매장 앞이 넓으면 얼마나 넓을까. 서비센터가 1인 시위라는 명목으로 집단 선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은 경찰도 알고 우리도 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피켓에 적힌 내용을 알리고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지 시시껄렁한 집시법 따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악질 기업을 흉보고 꼬집고 물어뜯는 것이 중요했지 1인 시위를 어떻게 해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나 하는 것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다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경찰들은 끊임없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계속 선전전을 진행하니 머리가 훌렁 벗겨진 정보과 형사가 왔다. 1인 시위가 아니라고 신고가 계속 들어온다고 했다. 형사와 얼마 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두 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그런데 그 때가 선전전을 마치기 5분 전이었다.

“아까 왔던 경찰은 이 업체가 무슨 잘못이 있냐고 반문을 하더라구요. 우리가 어차피 이랜드 기업이라는 큰 틀을 규탄해야 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거에요. 솔직히 이 매장 주인도 알고 보면 기독교 신자가 아닐까요? 이랜드의 경영 방침에 동조를 하고 있으니까 매장 주인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경찰들한테는 그런 거 교육 안 하나?”

“군바리들은 무조건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하잖아요. 권력 쥔 놈들 편에 서는 게 중립이고 다른 건 다 무시하라고 교육하겠죠. 경찰이 무슨 힘이 있나요. 그냥 윗대가리들 말이나 잘 듣는 거지.”

우리는 네 시가 조금 넘어 선전전을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는 을지로입구역까지 피켓을 들고 행진해 갔다. 맨 앞에 선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면 피켓 들고 따라가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우리는 바로 월드컵경기장역으로 향했다.

상암에 도착하니 다섯 시였다. 이미 천막농성장 앞에서는 30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었다. 사회자가 발언을 하고 있는 곳에는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비정규직 철폐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홈에버 상암점 입구에는 아예 전경 버스를 갖다 대 놓았다. 나는 매장 주변을 도대체 얼마나 꽁꽁 둘러싸 놓았는지 궁금해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전경들은 방패를 앞에 세우고 매장 주변 곳곳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고 무전기를 들고 심상찮은 눈초리로 서성이는 경찰 간부들도 눈에 띄었다. 용역들은 가관이었다. 평소에 상암점을 지키고 있던 용역들 보다 훨씬 뚱뚱하고 키가 큰 용역들이 그것도 떼 지어 나와 매장 입구마다 버티고 서 있었다. 경찰과 용역 업체와 이랜드 기업이 손발이 착착 맞아 돌아가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시 대오 쪽으로 왔다. 깃발들이 많았다. 민주노총, 공공노조, 서총련, 여성노조, 이주노조, 전국학생행진......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뒤늦게 이랜드 투쟁을 받아 안아 오늘 집회를 조직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오늘이 토요일이고 장소가 상암이라서 그런지 추석 집중 투쟁을 시작하고 난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집회는 곧 끝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더니 들고 있던 바람개비를 지하철역 입구에 쳐진 철망에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소망을 적어 놓은 듯 바람개비들마다 조그만 글씨가 쓰여 있었다.

‘투쟁 승리’
‘현장으로 가자’
‘박성수 회장 박살내자’
‘이랜드 노동자들 현장으로 복귀를’
‘이랜드 악덕 기업 각성하라’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져 선전전을 시작했다. 피켓과 유인물을 든 사람들이 매장 쪽으로 가자 경찰과 돼지 용역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전경들은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공간만을 남겨두고 매장 입구를 방패로 겹겹이 둘러싸 버렸다. 용역들은 무전기를 들고 괜히 사람들을 흘겨보며 어슬렁거렸다.

조합원들은 피켓을 들고 전경들 방패 앞에 가서 섰다.

“이랜드는 미국산 소고기를 국내산이라 속여 팔고 유통기한 지난 생선을 신선하다고 속여 판 악덕 악질 기업입니다! 지금은 또 어떤 비리를 저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랜드에 가지 마십시오! 홈에버에 가지 마십시오! 악질 기업, 시민 여러분들께서 불매로 심판해 주십시오!”

조합원들은 방패 바로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나는 피켓을 하나 들고 매장 입구 쪽에 서 있다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전전에 가 보기로 하고선 걸음을 옮겼다.

상암 CGV 쪽으로 갔다. 그쪽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도 피켓들이 놓여 있었다. 피켓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생음악이었다. CGV 쪽에 도착하자 무대 하나가 보였고 그 위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느 직장인 밴드의 무료 야외 공연이었다. 노래는 TOTO의 ‘Georgy Porgy’,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었다. 무대와 좀 떨어진 곳에서는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지나가는 이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길이가 20미터는 돼 보이는 기다란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수막에는 두 줄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파렴치한 이랜드 자본 박성수 회장 구속하라’
‘용역 파견 확산 비정규직 대량 해고 홈에버 뉴코아에 가지 맙시다’

한쪽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함께하고 있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나는 어쩌면 비슷한 취향을 지녔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쪽으로 가지 못했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분리해 내는 것처럼 내 속에서 음악 취향만을 분리해 뚝 떼어 놓은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때 나는 좀 멍청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저쪽 사람들과 이쪽 사람들을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아니, 먼저 내 속에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하나로 만들 수는 없을까.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투쟁에도 연대하고,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수 있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저 사람들은 우리들이 외치는 구호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것일까.

나는 한동안 무대 쪽과 현수막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겨 수산시장 쪽으로 향했다.

그쪽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피켓을 든 사람들이 인도 곳곳에 서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다시 매장 입구 쪽으로 갔다.

거기서 서비센터 회원들을 만나 피켓을 들고 월드컵경기장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선전전을 했다. 우리가 경기장 입구를 하나하나 지나칠 때마다 입구 안쪽에 있던 양복쟁이 용역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여긴 얼씬도 말라는 듯 우리에게 눈을 부라렸다. 나는 들고 있던 피켓을 흔들어 주며 반갑다고 인사했다.

여섯 시에 선전전이 끝났다. 조합원들은 천막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입맛도 없고 해서 지하철역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오늘 저녁 때 축구 경기라도 있는지 경기장 안쪽은 벌써부터 시끄러웠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요란한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누군가가 마이크에 대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 대고 있었다. 축구 유니폼을 갖춰 입고 경기장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 와중에 홈에버에서 물건을 사겠다고 쇼핑 수레를 드르륵드르륵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석을 깔고 하하 호호 노닥거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오늘 투쟁에 함께 하러 온 대학생들인가 했는데 얘기하는 걸 옆에서 들어 보니 그냥 축구 구경 온 사람들이었다.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기장 안쪽이 점점 더 요란해질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에서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토요일 오후였다. 사람들은 퍽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숨길 수 없는 활기가 온몸에서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인이랑, 친구랑, 가족들이랑, 사실 누구랑 와도 상관은 없었다. 단순히 토요일 오후를 즐길 만한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끼리 두셋씩 뭉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자기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쓴다는 기쁨이 사람들을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누가 무언가를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뒤가 안 맞는 어정쩡한 것을 앞에 두고 있는 느낌, 본질이 거꾸로 시궁창에 처박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못? 잘못은 축구에게 있을까? 이랜드 자본에게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을까? 아니면 내가 사회과학 서적을 덜 읽어 문제를 명쾌하게 분석할 줄 모르는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시간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활기가 이랜드 노동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나는 당혹스러웠다.

핫도그를 물고 시시덕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김밥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조합원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 새로운 활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즐기고 소비하려는 활기가 아니라 살기 위한 활기였다. 가족들과 동료들을 위한 활기였다. 나는 연달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꾸 줄담배를 피우는 내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한 조합원이 내게 김밥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은박지를 뜯어 김밥을 우걱우걱 베어 먹었다.

여섯 시 오십 분에 투쟁 문화제가 열렸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이 사회를 보았다. 맨 처음으로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이어 이랜드 월드컵 분회 지원대책위원회에서 이랜드 노조에 투쟁기금을 전달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대위 집행위원장이 나와서 투쟁기금을 김경욱 위원장에게 전달하고는 오늘 서울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진행했던 1인 시위들을 조합원들에게 보고했다.

연영석 씨가 통기타를 들고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조합원들은 하나 둘 촛불을 켜 들고 있었다. 연영석 씨의 꾸밈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맑은 초가을 밤이었다.

연영석 씨가 들어가고 서울 일반노조 공동위원장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이어 견명인 씨가 울림 좋은 푸근한 목소리로 공연을 했다.

홈에버 면목점에서 왔다는 한 조합원이 나왔다. (이름을 몰라서 죄송해요!)

“제가 사실 처음에 투쟁할 때는 좀 뚱뚱했었는데요. 투쟁이 계속 이어지니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져서, 마침 집 근처에 용마산이 있어서 매일 등산을 했어요. 그런데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 산행도 길어지더라구요. 매일 산을 올라가면서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늘상 생각하면서 지금껏 견뎌왔습니다. 이곳에 계신 동지들, 민주노총 동지들, 그리고 연대 동지들 모두 지금까지 이랜드 투쟁을 가열차게 해 온 것 같습니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저희들의 정당한 요구사항, 소박한 아줌마들의 투쟁은 꼭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절대로 용두사미가 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엄호와 지지를 해 주셨듯이 앞으로도 승리할 수 있도록 힘찬 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구호 하나 외치겠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파업투쟁 승리하자!
우리는 반드시 뒷심을 발휘해서 박성수를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도록 투쟁했습니다.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구호 하나만 더 외치겠습니다.
뒷심을 발휘하여 파업투쟁 승리하자!”

아, 나는 구호를 같이 외치면서 조합원의 말이 유리조각처럼 가슴속에 날아와 박히는 것을 느꼈다. 살기 위해 죽도록 투쟁했다니. 100일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는 기륭 노동자들과 45미터 위에서 생명을 걸고 농성을 하고 있는 KTX 노동자들이 순간 떠올랐다. 모든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딱 하나였다.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나는 돈 있고 권력 가진 놈들의 멱살을 틀어쥐고 묻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월드컵 분회에도 드디어 노래패가 생겼다고 했다. 황선영 직대와 진보신당 당원 조혜원 씨가 나왔다. 월드컵 분회 노래패를 준비 중인데 일단은 듀엣으로 나왔다고 했다. 조혜원 씨가 통기타를 치고 황선영 직대가 노래를 불렀다.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꼭 캠핑 온 젊은이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흥겨운 분위기는 이경옥 부위원장과 홍윤경 사무국장을 비롯한 여섯 조합원이 노래에 맞춰 몸짓을 하려고 나왔을 때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고 웃음소리는 맑은 초가을 밤 한가운데를 휘돌아 노래에 실려 저 멀리 밤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노래와 몸짓이 끝나자 사람들은 있는 힘껏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나 외로울 때, 힘이 되어 줄 만한 기억을 나도 모르게 되짚어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오늘 밤 이랜드 노조 천막농성장 앞에서 함께 나누었던 자리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서늘한 밤바람과, 작은 주홍빛 등잔 같던 촛불과, 손뼉을 치며 웃던 모습들과, 노랫소리들과, 앉아 있던 방석의 촉감과, 핫도그를 팔던 노점상 아줌마와, 끝까지 험상궂은 표정을 풀지 않던 용역들과, 천막농성장을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과, 잉크가 자꾸 번지던 내 수첩과, 눈앞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던 담배 연기와, 그 외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가끔씩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을까, 나는 새 담배를 피워 물며 생각했다.

이랜드 조합원들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받은 것만큼 나도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화제가 끝났다.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내일 투쟁을 기약하며 흩어져 갔다. 노랫소리가 멎은 밤하늘에는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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