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생중계하는 전자여권 '리콜'해야"

41개 인권단체들 '전자여권 리콜', '지문날인제 폐지' 촉구

새로 도입된 전자여권의 보안상 취약점이 드러난 가운데 인권.사회단체들이 발급된 전자여권의 리콜과 지문날인 제도 폐지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국민 지문날인 검사 요청하는 정부 어디 있나"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전국 41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는 30일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전자여권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너무 쉽게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그동안 발급한 전자여권을 모두 리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단체들은 전자여권이 "개인정보를 생중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중계하고 있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며 "실제로 전자여권의 전자칩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처럼 특정 주파수를 끊임없이 발생시키고 있고, 우리는 그 주파수를 통해 개인정보를 읽어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9일 단체들은 시중에서 구입한 RFID 리더기를 통해 전자여권에서 개인정보를 빼내는 과정을 시연해보였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해외에선 불필요한 주민등록번호를 전자여권에 수록하고, 2010년부터는 지문정보까지 담기로 한 것에 대해 "이제 한국의 개인정보 유출문제는 한국 내에서 통제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그래서 통제가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지문 유출도 문제지만, 한국의 여행자들만이 수시로 지문날인검사를 받게 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며 "'여행자들 여권에 지문찍어서 보내니, 특별히 따로 줄 세워서 지문날인검사 좀 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에 있나"라고 개탄했다.

"비자면제프로그램이 비자 면제? 심사제도 오히려 강화"

한편, 단체들은 전자여권 도입이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Visa Waiver Program) 가입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고 주장하며, 외통부에 비자면제프로그램과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비자면제프로그램이란 미국 지정한 국가의 국민이 관광 및 상용 목적으로 최대 90일 동안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로, 정부는 이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로 강조한 해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마이클 처토프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25일 비자면제프로그램 협정 문안에 합의했고, 미 의회의 비준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은 단순히 현재의 비자제도 중 일부를 전자여행허가제라는 새로운 심사제도로 대체할 뿐인데, 이것이 어떻게 비자면제프로그램인가"라고 반문하며 "같은 제도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반발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만 나서서 굽신거리고 있다"고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나마 새로 도입되는 비자제도도 여행자정보 공유협정 등을 통해 오히려 심사제도가 강화되고 있다"며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은 한국 내에서 어떤 공공기관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법기록에 대한 조회권한을 미 정보기관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내의 어떤 정부부처에도 그런 조회권한이 없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며 "그것을 미국 정보기관에게 주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