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소장, “연구소 좀 살려주시오”

통일문제연구소 위치한 명륜동 일대 재개발정비구역 지정

통일문제연구소를 운영하는 백기완 소장이 이리 저리 편지를 쓰고 있다. 통일문제연구소가 위치한 명륜동 4가 일대가 주택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빠르면 내년, 아파트 단지로 변할 예정이기 때문.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오는 18일에 명륜동 4가 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조합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백기완 소장은 각계에 띄운 편지에서 “1967년께니까 우리 통일문제연구소가 첫발을 내딛은 지가 어느덧 마흔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퍽이나 오래 되었지요”라며 “그런 연구소를 그냥 내버려두진 못할망정 연구소 집을 헐어 없애버리려는 때결(시간)이 몰아닥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백기완 소장은 “통일문제연구소는 무엇이겠습니까. 5백 원이 아니라 단돈 백 원씩을 모아 일으킨 맨 처음의 통일 집 아니겠습니까. 815 해방이자 꺾인 허리라는 반역과 싸워 온 피눈물, 빛나는 횃불이 아닐까요”라면서 “이런 연구소가 ‘어기지 힘’과 그야말로 불법인 ‘재개발 법’이라는 이름으로 밑두리를 갉아 먹히고 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백기완 소장의 “우리 연구소 좀 살려주시오”라는 호소에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나서서 ‘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를 제안했다.

이수호 최고위원은 통일문제연구소에 대해 “나 같은 미련한 놈이 답답하고 힘들 때면 찾아가 응석도 부리고, 호되게 종아리를 맞고도 즐거워하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통일문제연구소를 재개발이라는 핑계로, 불도저로 밀어버릴 음모를 꾸미고 있다. 박정희 군사독재 이후 어떤 부도덕한 정권도 감히 못한 짓을, 이명박 정권이 치사하고 간악하게 짓밟으려 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서 세운 이 ‘통일마당집’을 지키는 일은, 백기완 선생님을 지키는 일이요, 우리 운동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에 함께 할 사람은 18일까지 통일문제연구소 (02-762-0017)로 연락하면 된다.

[편지 전문] 통일문제연구소가 죽게 되었다는 이 글 좀 읽어주사이다

이 글은 땅불쑥한(특별한) 어느 누구한테 띄우자는 게 아닙니다. 이 벗나래(세상)에 던져보는 것입니다. 그것도 쓸까말까 몇 술이고 망설이다가 씁니다.

이야기는 딴 게 아닙니다. 그것이 1967년께니까 우리 통일문제연구소가 첫발을 내딛은 지가 어느덧 마흔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퍽이나 오래 되었지요. 그런 연구소를 그냥 내버려두진 못할망정 연구소 집을 헐어 없애버리려는 때결(시간)이 몰아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재개발’인가 무언가를 한다면서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있고, 기둥뿌리는 뽑아내고, 대들보, 서까래는 짓모으고 마침내 ‘법’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옹근채로 들어낼 끔찍한 날이 다가오고 있어 우리 ‘통일문제연구소 좀 살려주십사’ 그겁니다.

나이테는 굵어도 우리 연구소가 한 일은 크질 않습니다.

다만 1960년대 그때는 ‘통일’이라는 말도 꺼낼 수가 없을 때가 아닙니까?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고 ‘초전박살’이란 전쟁도발적 막심(폭력)이 국가권력일 때 ‘통일연구소’란 이름도 쓸 수가 없고 그러니 어디든 이름을 걸 수가 없었습니다. ‘연구소 준비모임’ 그렇게 우리 집 큰들락(대문)에 붙여도 한밤에 누군가가 떼서 불을 지르고.
그래서 내 등때기에 매고 다닌다고 해서 연구소가 아니라 ‘백통일’, 그런 말을 들어가면서도 한 일이 좀 있었습죠. ‘통일’이란 ‘통’자를 여러 사람들 입에 올리게 한 것이요.

또 하나는 통일은 한낱 바램이 아니라 일구어야 할 하제(희망)라는 것을 일깨우는데 조금은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백범사상연구소’로 갈아달고 통일은 분단억압을 깨트리는 해방, 그 해방은 자유, 인권, 민주, 평등, 평화라는 것을 널리 알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때(감옥)엘 갔다 나오니 사무실이 없어져 중학 다니는 딸애의 월부로 들여놓은 지 석 달밖에 안된 피아노를 몰래 팔아 사무실을 얻기도 하다가, 1978년이든가 책을 몇 권 냈는데 가져가면 돈이 안 걷히고 할 일은 많고 그래서 빚으로 휘청일 적입니다.

시인 김지하 어머니가 돈 2백만 원을 내놓고 낙찰계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자는 없으니 다섯 달 안에 갚으라고 해서 반가운 진땀을 흘리기도 하고.

장준하 선생이 어느 춤꾼의 춤을 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져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게 무슨 춤이오?”
“문둥이 춤 그러지요. 통영, 고성, 오광대놀이에 있는….”
“저건 어디서 추는 거지요?”
“마당판이지요, 무대가 아니라.”
“그렇습니까. 그 마당판이 곧 분단 억압을 제끼고 일어나는 통일마당판 이겠네요.”
“바로 그거지요, 그래서 ‘통일마당집’을 하나 지어야 합니다.”
“그거 좋겠군요”

그러다가 장선생은 뻔뻔스러운 암살에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잡혀가 매를 맞고 돌아오니 연구소가 또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 큰들락에 ‘통일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달았더니 떼 내고선 우리 집 안방을 점령, ‘통일’이란 ‘통’자만 쓰면 잡아넣겠다고 새벽까지 웅크르거나 말거나 최열군한테 신문에 알리라고 했습니다. (1984년, 동아일보)

불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며 통일은 껍데기 통일이 아니다, 분단 독재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랑이(민중)의 해방, 세계해방의 첫걸음이 곧 우리 통일인데 그 알짜(실체)는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거라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실이 없어 허덕이다가 1988년 봄, ‘통일마당집 벽돌쌓기(100만돌, 한돌에 5백원)운동’의 첫발로 민족미술인협회 주최로 두술에 걸쳐 ‘통일그림전’을 열어 몇 푼의 돈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학교나 거리모임이 있을 적마다 ‘통일마당집 만들기 한돌 쌓기’에 나서달라고 외치면 어떤 학생은 담배 한 꼬치, 어떤 애는 백원짜리 하나, 미국동포, 독일동포까지 십여만이 넘게 8천만 원을 모으고 이어서 백범선생의 붓글씨 가운데 하나는 미국 사시는 이만영선생이, 또 하나는 변박장교수가(중앙일보) 사주기도 해 땅 서른두 평짜리 이층집, 오늘의 ‘통일문제연구소’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저는 여기저기서 피돋힌 말을 하고나면 그렇게도 개고기가 먹고 싶었으나 한돌이라도 더 쌓아야하는데 한 그릇 삼천 원밖에 안하는 것이지만 안 된다고 비지 백반만 먹고 다니다가 탈이나 병원 값이 8백만 원이 들고나자 젊은이들이 “이제 한돌쌓기는 접어두자,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돌아가신다”고 해서 주저앉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통일문제연구소는 무엇이겠습니까. 5백원이 아니라 단돈 백원씩을 모아 일으킨 맨 처음의 통일 집 아니겠습니까. 815 해방이자 꺾인 허리라는 반역과 싸워온 피눈물, 그 빛나는 횃불이 아닐까요.
우리 연구소는 어떤 정권, 어떤 돈 많은 이의 도움 같은 건 단 한 푼도 받은바 없고 한해 예산, 한해계획, 해가 가고와도 해보내기, 해맞이의 술 한 모금을 못 나누어먹고 헌날(매일) 도시락이 아니면 라면을 끓여먹으며 그저 우리는 ‘아름다운 벗나래(세상) 만들기가 통일이다’ 그러면서 요 쪼매난 집을 깃발처럼 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것을 헐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이참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우체부가 던지고 갑니다. (2008년10월13일 늦은1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총회를 2008년10월18일 늦은3시에 연다고.>

이제 우리 연구소는 ‘어거지 힘’과 그야말로 불법인 ‘재개발 법’이라는 이름으로 밑두리를 갉아먹히고 있습니다.

한살매(한평생)를 무지무지한 한 골수로 살아온 우리, 통일밖에 모르는 우리 연구소를 군사깡패들보다 더 치사하고 더 간악하게 짓밟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만 저는 벌써 늙었나 봅니다. 어쩌질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어야 하겠습니까. 마흔 해를 이어와 이제 막 봉우리라도 맺히려는 우리 연구소가 이렇게 숨을 거두는 수밖에 없을까요?

늙은 몸과 마음엔 비상이 걸렸는데 딴 사람들은 그런 걸 비상한 일이라고 아니 보시는지, (가칭)‘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라도 만들면 안 될까요? 그저 안타까워 글을 띄는 것입니다. “우리 연구소 좀 살려주시오!”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133번지
전화 : (02) 762-0017


2008년 10월 13일

[전문] (가칭)‘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를 제안합니다.

(가칭)‘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를 제안합니다.

지하철 혜화역 3번 출구로 나와, 돌아서서 몇 발자국 걸으면 2층 학림다방이 있고, 그 다방을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서 막힌 곳까지 와서 오른쪽을 보면, 거기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담장과 통일문제연구소라는 작은 간판이 보입니다.

여기가 백기완 선생님이 매일 아홉시면 출근하여, 찾아오는 많은 분들과 말씀도 나누시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쩌렁쩌렁 야단도 치시고, 또 혼자 깊이 명상하시며 글도 쓰시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나 같은 미련한 놈이 답답하고 힘들 때면 찾아가 응석도 부리고, 호되게 종아리를 맞고도 즐거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백 선생님께서 통일문제연구소를 처음 연 것이 1967년이라니 벌써 마흔 해가 넘었습니다. 서슬 푸른 박정희 독재 시대에 ‘통일’을 내걸었으니 그 탄압이 오죽했겠습니까? 87년 민중대항쟁 이후 1988년 봄에 비로소 ‘통일마당집 벽돌쌓기 운동’이 벌어지고, 학생, 노동자 등 수많은 민중이 벽돌 하나에 5백 원을 쌓고 또 쌓아 지금의 이 집을 마련했으니, 이 집이 갖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 또한 큽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백 선생님께서 흩트림 없이 꼿꼿이 지켜주시고, 후원회원들의 갸륵한 정성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통일문제연구소를 재개발이라는 핑계로, 불도저로 밀어버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이후 어떤 부도덕한 정권도 감히 못한 짓을, 이명박 정권이 치사하고 간악하게 짓밟으려 하고 있습니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살려야 합니다.

우리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서 세운 이 ‘통일마당집’을 지키는 일은, 백기완 선생님을 지키는 일이요, 우리 운동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상황을 비상하게 받아들이고, 우선 좀 더 책임 있는 분들 중심으로 (가칭)‘통일문제연구소 살리기 비상대책회의’를 꾸립시다. 그리고 이 모임을 중심으로 민중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를 지킵시다.

나아가서 통일문제연구소가 활짝 꽃피게 합시다. 그래서 ‘진정한 통일은 분단억압을 깨뜨리는 해방’임을 깨닫고 그 실천에 앞장서도록 합시다.

2008년 10월 14일 밤
제안자를 대표하여 이 수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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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 백기완 , 이수호 , 통일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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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희

    개고기 먹으면 벌받는대요...

  • 문제가 뭐냐면..

    죄송합니다. 아무게라고 밝히지 않고 술먹고 글을 올려서.. 물론 제가 아무겝니다.. 라고 말씀드려도 전혀 모르시겠지만요.
    제가 선생님 강의를 들은 건.. 그럭저럭 조용한 대학시절을 다니던.,. 1996년 즈음으로 기억나는데요.. 선생님 강의를 들은건.. 제가 꼬신 모범생 동기놈이였는데요.. 대딩때 나붙었던 선생님 강의 제목는 아마.. ???얘기 속시원한 얘기 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는 운동권도 아니었고요.. 제가 꼬신 친구는 더더욱 아니었지요. 근데 강의를 듣고 누가 먼저랄것이 없이 나온 얘기는요.. '나도 나이들면.. 저런 기개, 저런 호연지기?를 얘기할 수 있을까...'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추상같은 호통소리를 ㄱ이ㅣ억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하더래도요.. 잘 몰라도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문제는요.. 계좌번호가 빠져버린거예요. 그나마 한달 백만원 월급쟁이로 살고있지만요.. 만원 보내드릴 방법이 이 기사를 눈씻고 찾아봐도 찾질 못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요. 물론 제가 누구라면 전혀 알수없으시겠지만요. 그리 붉어지는 활동을 안하신다치더라도 우리사회 침반 원로로서 지켜봐주시며.. 천년만세 건강하시길.. 취중 기원하겠습니다. 이 기사 쓴 기자님은.. 어려우시더라도 CMS다 후원계좌다.. 추가해주실거죠?

  • 고민

    함께해야겠지요. 당연히 함께할 것입니다. 다만, 이수호는 아니지요. 이수호같은 작자가 어찌 감히... 전 그런 쓰레기랑은 같이 고민할 수 없습니다.

  • 이꽃맘

    http://busimi.com/로 가시면 다양한 후원 방법이 있습니다.

  • 아정말

    이수호씨라면 민노총 말아먹은 그 이씨? 이명박정권이 재개발방법으로 연구소를 없애려 한다는 말이 가당한 거요? 지역주민들과 돈에 눈이 멀어버린 지금의 세상이 재개발과 연관되는 건데... 민주노총 말아먹은 부류들이 재개발의 세상을 만든 것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