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아주 오랜 이야기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21일 밤, 기륭전자 앞에서

어제 기륭 전자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막 새로 쓴 원고를 참세상에 넘기려고 하는 중이었다. 월요일 밤을 기륭에서 보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글이었다. 전자우편에 원고와 사진들을 담아 놓고 이제 전송만 하면 되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어이 경찰들이 김소연 기륭 분회장과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잡아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채워지기만 했다. 음, 그랬구나. 그랬나보다. 그랬겠지. 그럴 수밖에. 그렇지 뭐. 그런가 보지. 선배에게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글 끄트머리에 살짝 덧붙이고는 참세상에 원고를 보냈다.

원고를 보내고는 잠깐 눈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월요일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에서는 연방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무언가를 입에 넣으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니 김소연 분회장이 끌려 내려오는 영상과 사진들이 어느새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최 회장 집에 가서 불을 싸지르고 오자. 나도 모르게 흉흉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다섯 시쯤에 늦은 끼니를 먹었다. 저녁 때 어디를 가든 나가야 해서 억지로라도 밥을 입 속에 우겨넣었다. 오늘은 학원 수업이 없었다. 콜트/콜텍 촛불문화제에 갈까 아니면 강남 성모병원 화요 집중 문화제에 갈까 그것도 아니면 일곱 시에 있을 기륭 문화제에 갈까 밥 먹으면서 가늠해 보았다.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동전이라도 던져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어디를 가든 나는 가슴 아픈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고,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버텨내는 데에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를 가야 하나.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화요 문화제를 취소하고 기륭으로 간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진짜 동전이라도 던져서 어디로 갈지 정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기륭에 가기로 했고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옷장에서 정장을 꺼내 입었다.

일곱 시 조금 넘어 기륭에 다다랐다. 전경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기륭전자 정문 앞에 이백여 명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앉아 있었다. 용역 깡패들이 철거하려고 했다던 컨테이너 박스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기륭전자 정문쯤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는 조합원들의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다.) 공장 안과 밖을 차갑게 가로막고 있는 시퍼런 색의, 나무판자인지 철판인지 시멘트인지 알 수 없는 장벽에는 ‘기륭 산성’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기륭전자 정문 앞에 이백여 명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여 앉아 있었다.

그제와 어제 오후까지 그 힘든 전쟁을 치러 냈으면서도 기륭 조합원들은 문화제 내내 즐겁게 웃었다. 대학생들 이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재미난 몸짓 공연을 보여주었을 때, 맨 앞자리에 앉은 기륭 조합원들은 정말로 환하게 웃었다. 마스크를 쓰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당돌한’ 10대 청소년들이 나와서 몸짓 공연을 했을 때, 기륭 조합원들은 손뼉까지 치면서 즐거워했다.

나는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밝게 웃는 조합원들의 모습을 보니 내 속에서도 새로운 힘이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이딴 식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륭 전자 조합원들이 어떤 시간들을 거쳐 왔는지 알지 못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제 오후부터 어제 오후까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더 낫다. 하지만 나는 기륭 조합원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분회장을 잡아간 전경들도, 밉살스런 구사대들도, 험상궂은 용역 깡패들도 조합원들의 저 웃음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누구의 권력도 누구의 주먹도 저 웃음만큼은 손대지 못했다. 누가 내 가슴을 갈라 그 속에 식초를 들이붓는 듯 가슴이 시렸다.

한 기륭 조합원이 나와서는 이런 말을 했다.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퇴근하는 직원들을 미워하지 말자 생각했었다고. 투쟁이 끝나고 일터로 돌아가면 다시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인데 미워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고. 하지만 철제 구조물 위에서 김소연 분회장이 위태롭게 서 있을 때 그 밑에서 “죽어봐!” “어디 한 번 떨어져 봐!” “어차피 죽을 거면서 떨어지지도 못하냐?” 이렇게 외치는 구사대들을 보면서, 이제는 일터에 돌아가게 될 지라도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분회장에게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멀쩡한 얼굴로 퇴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그들과 좋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고. 이젠 정말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다른 기륭 조합원은 발언 끝자락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으로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그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고. 언제 구로 지역 노동운동이 힘들지 않았을 때가 있었느냐고. 1100일이 넘도록 안 해 본 것 없이 싸워 온 노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책으로 읽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 떠올랐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 시절부터 지금껏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결같이 말해 왔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그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고. 그 방법밖엔...... 그리고 서로 다른 전경들과 서로 다른 구사대들과 서로 다른 용역 깡패들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결같이 말해 왔을 것이다. 불법 집회 해산하라. 집시법 위반이다. 죽을 테면 죽어봐라. 너희들 죽여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일도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저녁에 기륭전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 문화제였지만, 내가 손으로 건드릴 수도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생생한 현재였지만, 그것은 또한 아주 오랜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너무 오래돼서 많은 이들에게 잊혀져 버린 이야기. 하지만 아직도 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 언젠가 어디선가 마이크를 붙들고 목 놓아 삶과 권리와 희망을 부르짖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 땅에 공장이 세워진 이후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온 이야기. 자본과 공권력이 단짝을 이루어 인간을 기계처럼, 짐승처럼 다루던 이야기.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 슬프지만 앞으로도 다른 누군가가 눈물로 웃음으로 계속 이어가게 될 이야기. 옛날 옛날에 왕자와 공주가 살았는데 그 둘은 서로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 주는 동화책처럼, 꼭 그런 내용처럼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끝났으면 하는 이야기. 눈물 대신 웃음으로만 채워졌으면 하는 그런 이야기!

청계에서는 콜텍/콜트 노동자들이, 또 다른 곳에서는 다른 노동자들이,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 어디에선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지금은 이미 늙어 버린 노동자들이,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노동자들이, 사람들이, 자기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세상과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지나가 버렸든 아직 오지 않았든 늘 생생한 현재였다.

여덟 시쯤부터 저쪽 구석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던 전경들은 문화제가 끝나자 얌전히 물러갔다. 기륭 공장 안에는 용역 깡패들이 여전히 숨어있다고 했다. 어디다 쓰려는지 아무도 모르는 프로판 가스 두 통을 아까 가지고 들어갔다고 했다.

어젯밤까지의 상황―연행자 열두 명, 병원으로 실려 갔던 김소연 분회장은 경찰이 멋대로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가 변호사가 항의해 다시 병원으로 갔고, 아까 저녁 여섯 시 반쯤 금천 경찰서 앞에서 연행자 면회하러 갔던 연대 단위 세 명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또 다시 연행됐고(내가 알기론 기자회견은 집회 신고서 없이도 할 수 있다), 기륭 전자는 10월 25일에 공장을 이전한다 하고, 마침 25일엔 전국 비정규 노동자 대회 전야제가 기륭에서 열리고, 끌려 내려오는 김소연 분회장의 사진은 인터넷 뉴스 사이트들을 뒤덮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삼성과 두산이 겨루는 야구 경기에 더 관심이 많고......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너무나 새삼스럽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오랜 이야기인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륭전자라는 이름으로 불쑥 튀어 나온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인간답게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소설가가 되어 시인이 되어 몸으로 쓰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글로 쓴 이야기는 읽다가 가슴이 아프면 덮어 두거나 나중에 읽을 수 있지만 사람이 몸으로 쓰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현장으로 가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지금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알고 나서는? 보고 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제가 끝나고 아는 후배와 술을 마시면서 나는 조세희 작가가 쓴 <우리는 모두 몰랐다>라는 짧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은강 방직의 여근로자들이 단식 농성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알았고 모르는 사람은 몰랐다.

안 사람들 중의 얼마는 그들을 도울 수 없어 안타까워했고, 안 사람들 중의 얼마는 그냥 알고만 있었다. 모른 사람은 계속 몰랐기 때문에 계속 모르고만 있었다. 모른 사람이 알았더라도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 사람들 중의 얼마가 속을 태운 것과 상관없이 은강 방직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안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는 그냥 알고만 있었으니까.

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과 똑같이 의미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다 몰랐다.

은강 방직은 괴물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다.
은강 방직은 통뼈다.
우리는 모두 몰랐다.


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기륭 전자 조합원의 말이 자꾸만 귓속에서 맴돌았다. 계속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그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고. 그 방법밖엔......
덧붙이는 말

박병학 님은 서울 서부비정규직센터(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